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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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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강 [apple308] 쪽지 캡슐

2000-04-12 ㅣ No.896

네 명의 아내를 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째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나께나 늘 곁에 두고 살았다. 둘째는 아주 힘겹게 얻은 아내였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쟁취한 아내이니만치 사랑 또한

 

 

 

극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둘째는 든든하기 그지없는

 

 

 

성과도 같았다. 셋째와 그는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넷째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늘 하녀 취급을 받았으며 온갖 궂은 일은 도맡아 했지만 싫은 내색

 

 

 

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의 뜻에 순종하기만 했다.

 

 

 

어느때 그가 머나먼 나라로 떠나게 되어 첫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나 첫째는 냉정히 거절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둘째

 

 

 

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둘째 역시 거절했다. 첫째도 안 따라가

 

 

 

는데 자기가 왜 가느냐는 것이였다. 그는 셋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셋째는 말했다. "성문 밖까지 배웅해 줄 수는 있지만 같이

 

 

 

갈 순 없습니다." 그는 넷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넷째는 말했다.

 

 

 

"당신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넷째

 

 

 

부인만을 데리고 머나먼 나라로 떠나갔다.

 

 

 

이 이야기의 머나먼 길은 저승길을 말한다. 그리고 아내들은 살면서

 

 

 

아내처럼 버릴 수 없는 네 가지를 비유하는 것이다. 첫째 아내는

 

 

 

육체를 비유한다. 육체가 곧 나라고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지만 죽게

 

 

 

되면 우리는 이 육신을 데리고 갈 수 없다. 사람들과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얻은 둘째아내는 재물을 의미한다. 든든하기가 성과

 

 

 

같았던 재물도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한다. 셋째 아내는 일가 친척,

 

 

 

친구들이다. 마음이 맞아 늘 같이 어울려 다니던 이들도 문 밖까

 

 

 

지는 따라와 주지만 끝까지 함께 가 줄 수는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잊어버릴 것이다.

 

 

 

넷째 아내는 바로 마음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별 관심도 보여 주지

 

 

 

않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하게 했지만 죽을 때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나서는 것은 마음뿐이다. 어두운 땅 속 밑이든 서방정토든 지옥의

 

 

 

끓는 불 속이든 마음이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살아

 

 

 

생전에 마음이 자주 다니던 길이 음습하고 추잡한 악행의 자갈길이

 

 

 

었으면 늘 다니던 그 자갈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고, 선과 덕을

 

 

 

쌓으며 걸어다니던 밝고 환한 길이면 늘 다니던 그 환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동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짓느냐가 죽고 난 뒤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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