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첫눈 오는날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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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11-21 ㅣ No.551

첫눈 오는날 만나자 -정호승-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늘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첫눈 오는날 만날 사람들 있으십니까? 아래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보니 첫눈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는 시인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부럽기는하군요. 첫눈이 탐스럽게 내리기라도 한다면 이동통신은 장애를 일으키고 시내 교통은 마비되고 전망좋은 식당의 자리들은 연인들로 채워지겠죠... 하지만 그런 연인이 없어도 첫눈은 괜시리 기다려지고 혼자서 커피도 마시고 싶습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계속되는 이 두통과 미열은 용케도 사무실에서만 계속되는 것을 보니 오랜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생겨난 꾀병인 모양입니다. 지금 하늘은 너무도 푸르러 눈물 겨운데 훌훌 털고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는 이 신세도 못지않게 눈물 겹습니다. 기차의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 받으며 무작정 달리고 싶구요, 비릿한 내음 풍기는 겨울바다도 보고싶네요. 그렇게 바다와 마주하고 서 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바닷물 위로 떨어지는 풍경이 되어준다면 더 좋을테지요. 생각해보니 겨울바다 비슷한 것을 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눈 내리는 겨울바다는 한 번도 보지 못했네요. 가을의 절정인 단풍이 화려한 10월과 성탄절이며 연말의 분위기로 흥청대는 12월에 끼어 초라해 보이는 11월을 삼분의 이나 보내놓고 초겨울을 탑니다. 오늘같은 날은 뜻밖의 반가운 전화로 위안을 받고, 위안을 주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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