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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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2000-12-13 ㅣ No.1935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늘 복음의 말씀입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사실 고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들이 팔자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스스로는 짐을 지고 있다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은 초대하십니다. 다 나에게 오너라.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가면 뭐가 달라지나? 예수님 자신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돌면서 힘들게 사셨지 않은가? 가난한 집에 태어나 가난하게 살고, 자신의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반대의 표적이 되고, 결국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런 삶을 사셨던 예수님 자신도 많은 고생을 하셨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 다가가면 우리의 그 많은 멍에가 없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낮아져서 고통을 선택하신 분입니다. ?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기에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신 분이기에.

예수님은 많은 고통을 당하신 분이지만 결코 슬프게 사셨으리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고통의 목적은 새 생명을 낳게하려는 것임을 철저히 아셨고, 또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입니다.  사실 아기를 임신한 임산부가 아기가 태어날 날을 기다리며 자신의 고통보다 아기가 태어날 날을 기다리며 기뻐하는 것처럼 고통은 새 생명을 낳게 하려는 것에 목적을 둘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하느님과 철저하게 일치했기에 언제나 당신의 멍에를 가볍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느님과 철저하게 일치했듯이 우리도 예수님과 철저하게 일치할때 우리 멍에와 우리 고통은 새 생명을 낳게 할 것이고 새 생명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기쁨을 줄 것 입니다.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신앙생활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고통은 기쁨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고통중에도 우리는 근원적인 기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고통중에도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라는 것에 대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면에서 만약 우리가 우울한 신앙생활을, 짐과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제대로 믿지못하고, 체험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신앙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고통을 안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큰 아픔을 체험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을 위해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신 예수님과 일치할 때 우리는 참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기쁨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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