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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성 발렌티노(발렌타인)사제순교자축일♬Panis Angeli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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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2-13 ㅣ No.957

 

St Valentine Baptizing St Lucilla-BASSANO, Jacopo

c. 1575, Oil on canvas Museo Civico, Bassano del Grappa

 

축일 : 2월14일

성 발렌티노 (발렌타인)

Valentino.Valentinus . 순교.로마. 269년

 

로마의 사제이자 의사이던 성 발렌티노는 끌라우디우스 황제의 크리스챤 박해 때, 로마에서 참수치명하였고, 비아 플라미니안에 묻혔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같은 날(2월 14일)에 또다른 발렌티노 축일을 지낸다. 이 발렌티노는 로마에서 60마일 가량 떨어진 떼르니의 주교로서, 집정관 플라치도의 명에 따라 고문을 받다가 참수 치명하신 분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두분의 성인은 동일 인물이며, 로마의 사제이던 발렌티노가 떼르니의 주교로서 순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위 "발렌타인 데이" 즉, 2월 14일에 젊은 남여가 상대자를 고르고 애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풍습은 사실 이 축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새들이 이 시기에 짝짓기 시작한다는 이교인들의 관습과 이 축일이 혼합된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한다.

 

성 발렌타인 데이라는 연인들의 명절은, 로마의 풍요의식을 없애기 위해, 곤봉에 맞고 목잘려 죽은 한 신부를 천주교가 수호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초 부터 로마인들은 매년 루페르쿠스 신 앞에서 젊은 남자들의 통과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은 상자에 담겨있는 십대 소녀들의 이름을 임의로 뽑았다. 제비뽑기에 뽑힌 소녀의 동반자가 되어 일년동안 서로 즐기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게 하였으며,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제비를 뽑았다.

 

그로부터 8백년이 지난 후 이 관습을 종식시키고자 마음먹은 초대 교부들은 루페르쿠스 신을 대신할 "연인의 성자"를 찾았다. 그들은 약 200년 전에 순교당한 주교 발렌타인이 그럴듯한 후보자라고 생각했다.

 

서기 269년, 로마의 클로디우스 황제는 금혼령을 내렸다.그는 남자가 결혼을 하면 집을 떠나 전쟁에 나가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형편없는 군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제국에는 군인들이 필요했고, 사람들의 평판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던 클로디우스 황제는 결혼제도를 폐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인테람나의 주교였던 발렌타인은 젊은 연인들을 몰래 찾아오게 해서 결혼식을 올려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황제는 진노하여 연인들의 친구인 주교 발렌타인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런데 황제는 젊은 주교의 위엄과 확신에 감명을 받아 로마신을 믿도록 개종시켜 처형 당하는 불행으로 부터 구해 주려고 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천주교를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왕을 개종시키려 했다.

 

269년 2월 14일 발렌타인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돌팔매를 당한 후 효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발렌타인은 옥에서 처형을 기다리고 있을 때 간수 아르테리우스의 눈먼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그녀의 시력을 기적적으로 회복시켰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그녀에게 "당신의 발렌타인으로 부터"라는 작별인사를 서명했고, 그 작별 인사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남게 되었다.

 

교회의 입장에서 볼때 발렌타인은 루페르쿠스의 인기를 대신 할 이상적인 후보로 보였다. 그래서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는 2월 중순에 거행하는 루페르쿠스 축제를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교황은 로마인들이 운수에 자신을 맡기는 제비뽑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존속시켰다.

 

제비뽑기 상자에는 자원한 독신 여자들의 이름 대신에 성인들의 이름이 담겨졌다. 남녀 모두 종이 쪽지를 뽑았고, 자기들이 뽑은 성인의 삶을 모방해서 다음 해를 살도록 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이전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게임이었다. 여자를 기대했다가 성자의 이름을 뽑는 것은 많은 로마 젊은이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전체 행사의 영적인 주관자는 수호 성인 발렌타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많은 로마인들이 기존의 축제를 버리고 교회의 명절로 그것을 대치했다.

발렌띠노(로마)St.Valentine of Rome 2월14일 순교자 269년

발렌띠노(떼르니)St.Valentine of Terni 2월14일 순교자,주교,269년

발렌티노(St.Valentinus, Presbyter et M )성 발렌티노 사제 순교자, 2월14일 270년

 

성 발렌티노 사제는 같은 이름의 성인 여러 명 중에서 가장 세상에 알려진 분이시다.

발렌티노는 3세기 중엽 로마 교회에서 가장 인망이 높고 덕행으로도 출중했으므로, 그 당시 교회를 박해하고 있던 클라우디오 황제는 일찍부터 그를 주목하고 그를 불러 배교를 명했다. 그러나 본래 열렬한 신앙을 가진 발렌티노는 배교할 리 만무했다. 그는 어떠한 위협에도 교회를 버리지 않자 황제는 적당한 처치를 하기 위해 그를 로마 시장(市長)에게 보냈고, 시장은 또한 그를 법관 아스데리오에게 인도했다.

 

발렌티노는 아스데리오의 저택에 들어가자 찬미가를 소리 높이 부르며 "주 예수 그리스도여, 청하오니 이집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천상에서 빛을 내려 주시어 저들을 신앙으로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햇다.

 

아스데리오는 2년 전부터 소경이 된 딸이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성인의 기도 중에 빛이라는 말을 듣고 이를 특별한 의미로 해석해 딸의 눈을 고쳐주는 줄로 생각하고 딸을 성인 앞에 데리고 와서 시험적으로 딸의 치료를 의뢰했다.

 

발렌티노는 이때야말로 교회가 하느님께로 부터 발생되었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절호(絶好)의 기회라 생각하고 기적을 이루어 줄 것을 정성껏 하느님께 기도한 후 그 딸의 눈에 손을 대며 "영원한 빛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시력(視力)을 회복해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기도하자 딸의 눈은 즉시 완치되었다.

 

이런 신기한 일을 친히 목격한 법관 아스데리오는 하느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놀라 즉시 개종할 것을 결심하고 일가족 40인이 모두 성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견진 성사를 주기위해 교황 갈리스도가 친히 아스데리오의 저택을 방문했다고 전해진다.

 

황제 클라우디오는 발렌티노가 신앙을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힘으로 자기가 신임하고 있던 법관의 집안까지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대단히 분노하여 즉시 병졸들을 파견해 그들을 체포하도록 하고 아스데리오 등은 오스티아로 끌고가서 참살(斬殺)했고 발렌티노는 가장 미운자로 취급하여 플라미니노의 회당에서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이 날이 270년 2월 14일이었다.

 

 

♬Panis Angelicus - 안소니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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