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자료실

사도신경 해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18 ㅣ No.40

[사도신경 해설 43]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1) 교회에 대한 믿음

최영철 알폰소 신부


신경에는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 다음에 즉시 “교회를 믿는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성삼위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대해서도 “저는 믿나이다.”라 고백한다. 교회도 믿음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교회를 하느님처럼 믿을 수는 없다. 교회는 어디까지나 피조물이다. 교회는 전지전능하지도 영원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교회가 믿음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는 차원에 있어서 다르다.

신앙 고백문에서도 교회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 하느님과 그 외아드님과 성령에 대한 믿음의 고백과 서로 다르다. 그 구별을 표현하자면, 교회‘를 믿는다.’와 하느님‘께로 믿는다.’로 구분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은 성령에 대한 고백에 포함된 것이다. 신경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세례 예식 중에 영세 지망자는 “당신은 성령을 거룩한 교회 안에서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스도교인이 믿는 대상은 하느님이고 성령이며, 또 교회는 성령이 활동하시는 장소라는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교회에 대한 신앙 고백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가 되게 하시는 ‘성령을 저는 믿나이다.’라는 내용이다. 우리가 믿어야 할 진리들에는 서열이 있다. 본질적이며 근본적인 믿음의 진리가 있는가 하면, 이 진리로부터 연유되는 부수적이지만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가 있다. 하느님에 관한 진리가 본질적인 것이라면 교회에 대한 진리는 부수적이고 연역적인 진리이다. 부수적이라 해서 믿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목적 자체’로 하느님을 믿는 것과 ‘하느님을 근거로 해서’ 교회를 믿는 것처럼 구분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믿을 때 ‘목적 자체로’ 믿지만, 교회를 믿는다고 할 때는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근거로 하여’ 교회를 믿는 것이다. 교회에 이어져 나오는 믿음의 대상들 ‘성인들의 통공’, ‘죄의 용서’, ‘육신의 부활’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교회가 믿음의 대상인 것은 하느님이 구원을 위하여 세우신 신앙 공동체 곧 구원의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 구원사업의 결실로 세상에 태어났고 구원의 기관으로 구원을 위하여 봉사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이 세상 한가운데 역사 안에서 구원을 펼치시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결실이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몸소 사람들을 ‘불러 모으신’ 신앙 공동체이기에 우리가 믿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가 구원의 공동체로서, 믿음의 대상이므로 교회에 능동적으로 소속되어야 한다.

교회가 믿음의 대상이므로 교회는 건물이나 단체처럼 ‘어떤 것’이 아니라 생명체나 인격체와 같은 것이다. 교회에 대해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교회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교회는 단순히 신도들이 모여 이루는 집단이나, 그 안에 모여 함께 찬양과 기도를 바치는 성당 건물이나, 가시적인 조직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인간 존재에 비유될 수 있다. 가시적 부분들(성당, 신도, 예식, 제도, 규범)과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총, 말씀, 생명, 사랑, 친교)로 구성되어 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께서 가시적인 인성과 불가시적인 신성 두 가지 본성을 지니신 것과 같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 그리고 하느님과의 친교 및 신도들 간의 통교이다. 이런 불가시적이고 본질적 요소들로 인해 교회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믿음의 대상이 된다. 예수님이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 그 어머니와 친지들이 찾아왔다. 도착 전갈을 듣고 그분은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느님의 뜻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어머니다.”(마르 3,35)고 선언하셨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또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 혈연 공동체’다. [2009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가톨릭마산 9면]


[사도신경 해설 44]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2) 교회의 설립


“누가 언제 교회를 세웠느냐?”는 질문에 대해 쉽사리 “예수님이 생전에 교회를 설립하셨다”고 간단히 대답한다. 그 근거로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그에게 새 이름을 주고 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시는 성경 대목(마태 16,13-20)을 내세운다. 생전의 예수님이 교회를 설립하셨다는 이 대답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성자 그리스도에 국한하여 응답한 대답이라 정확히 맞는 답이 아니다.

교회는 예수 승천 후 제자들이 뜻을 모아 사명수행의 편의상 한 순간에 창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긴 역사 안에서 준비되어 왔으며, 마침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작품만은 아니다. 그분의 삶 및 사명수행과 더불어 출현한 것도 아니다. 전 구원 역사에 걸쳐 계획, 준비되고 창립되었고 또 완성을 향해 성장 발전하고 있다. 계획부터 완성까지 다섯 단계를 거쳐 설립되고 성장한다. 그 단계들은 삼위일체 하느님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첫째, 교회는 세계 창조의 계획 때 이미 하느님의 마음속에 있었다. 하느님은 창조 때부터 모든 피조물이 가족처럼 당신을 중심으로 하나 되기를 바라셨다. 아담과 하와의 창조, 노아의 가족들의 구원 등은 가족을 구성하여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염원이었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세상 안에 죄가 들어와 하느님의 대 가족을 분열시키고 파괴하였으므로 하느님은 한 개인과 한 민족을 뽑으셨다.

둘째,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부르고 뽑으셔서 당신의 구원계획을 점차 나타내시고 약속과 그 성취를 통해 그 계획을 구체화하셨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구출하시고 약속의 땅을 향해 인도하시면서 그 도중에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집트 탈출과 옛 계약의 체결이 교회창립의 기초준비였다.

셋째, 하느님의 약속대로 아드님이 세상에 와서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복음 선포를 하시면서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주변에 모으셨다. “나를 따라라”는 명령에 복종하는 이들을 가까이 두시면서 무리를 형성하셨다. 열두 제자들을 주축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작은 무리’를 이루시고(루카 12,32) 또 이 공동체에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셨다. 생전의 예수님은 이 ‘메시아 공동체’를 위해 일정 조직과 질서의 규범 뼈대를 만드셨다. 제자들을 훈련시켜 선교현장에 파견하기도 하셨으나 아직은 ‘선교 공동체’가 되지 못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야 했다.

넷째, 성령강림은 교회가 태어나게 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약속하면서 세상을 떠난 예수님의 ‘빈자리’를 메우러 성령께서 오셔서 제자들을 사도로 변모시키자 비로소 교회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성령과 더불어 태어난 교회가 세상 안으로 들어가 선교활동을 펼침으로써 교회의 시대가 열렸다. 이제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도구로서 역사 안에서 성장을 개시하였다.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교회는 수고하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다섯째, 종말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 교회도 완성된다. 그 나라의 표징 및 도구인 교회는 완성된 하느님 나라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그날을 향해 교회는 순례자로 성부의 말씀과 성자의 성체와 성령의 은사로부터 활력을 얻으며 전진한다. 교회는 성부께서 계획하고 준비하셨으며, 성자께서 그 기초를 놓으셨고 성령께서 탄생시켰으므로 성삼위의 공동작품이다. [2009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마산 9면]


[사도신경 해설 45]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3) 교회의 본질


‘교회’란 말은 ‘하느님이 불러 모으신 집회’라는 뜻이다. 이 교회의 본질은 그것을 설립한 분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성부에 의해 계획, 준비되어온 것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이고, 성자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에 의해 태어난 것으로서 ‘성령의 성전’이다. 교회는 창조 때 하느님의 마음속에 품어져 있었고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점차로 준비되어 왔으므로 성부의 작품 곧 하느님의 백성이다.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던 도중에 시나이 계약을 체결하고 율법을 선사하셨다.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탈출 19,5)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하느님께서 인류와 새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태어난 선택된 민족, 왕다운 사제, 거룩한 백성이다. 이 백성의 구성원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었으며, 성령에 의해 거룩해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교회 안의 모든 이가 동등하다. 교회는 계약 체결로써 하느님과 생명 관계를 맺고, 하느님께 속한 백성이므로 하느님의 모든 선물을 얻어 누리는 상속자가 되고 또 하느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다. 한편 계약의 선물인 율법과 복음의 법을 지킴으로써 계약의 준수에 충성을 다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예수님이 세상 안에서 말씀과 행동, 곧 생애 동안 구원사업을 펼치는 중에 차츰 체계화되었고, 파스카 사건을 거쳐 형성되었으므로 성자의 작품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 예수님은 자신과 제자들의, 또한 공동체와의 관계를 ‘일치’ 또는 ‘한 몸’으로 표현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 “나는 착한 목자이며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10,14)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듯 제자들과도 하나라고 단언하셨다. 교회는 십자가 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로 인해 태어났다(요한 19,34). 하느님이 잠든 아담의 옆구리 갈빗대로 그의 짝 하와를 태어나게 하셨듯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의 잠을 자던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교회를 만드셨다. 흘러나온 피와 물은 교회의 두 가지 기둥인 성체와 세례를 상징한다. 교회는 세례에 의해 시작되고 성체에 의해 양육되고 성장하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다.”(에페 1,23)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그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분 홀로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의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온다. 주님의 만찬은 교회와 그 여러 가지 예배의 중심이다. 교회는 온전히 주님과 함께 있으며, 온전히 주님 것이다. 교회는 함께 모여 식사함으로써 친교에 이르며, 또 이 친교로 세상 안에서 봉사할 힘을 얻는다. 교회는 감사하며, 기념하는 ‘성찬 공동체’다.

교회는 성령강림으로써 마침내 그 모습을 뚜렷이 드러냈으므로 성령의 작품 곧 ‘성령의 성전’이다. “여러분이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모릅니까?”(1코린 3,16) 성령은 신앙인들 안에 계셔 그들을 하느님께로 들어 높히고 거룩하게 한다. 성령으로 인해 거룩해진 신도들 안에 그분이 계시므로 교회는 성령의 거룩한 거처다. 성령은 여러 면에서 교회의 존립 기초, 생명 원리, 활동 능력이다. 교회는 성령에 의해 생활하며 유지되고 인도된다. 교회의 모든 원천과 존재, 유지가 성령 덕택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이지만 몸에는 여러 지체들이 있으며 각 고유 역할이 있듯이, 성령은 각 신도에게 고유한 역할과 은사를 부여하면서 다양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신다. 성령께서 신도들 각자에게 봉사에 필요한 은사들을 주시므로 교회는 은사로써 섬기는 ‘은사의 공동체’이다. [2009년 3월 29일 사순 제5주일 가톨릭마산 9면]


[사도신경 해설 46]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4) 교회의 특징 (1)


사도신경에는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나이다.”고 고백하지만 ‘니체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에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고 고백한다. 교회의 특성은 단일성, 성성, 보편성, 사도성 등 네 가지이다. 이 특성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교회에 주어진 은혜이면서 아울러 교회의 직무수행을 통하여 구현해야 하는 중대한 과업이기도 하다.

첫째, 교회는 하나이다. 그리스도교는 동방 정교회, 개신교, 천주교 등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교회가 단일하다고 할 수 있는가? 단일성은 무엇보다도 영적 현상이지 구성원 상호간의 단일성이 아니다. 교회의 단일성은 단순히 자연적 현상도, 윤리적 일치나 조화도 아니고 더구나 사회적 균일성도 아니다. 그것은 교회법이나 규범 또는 행정과 같은 외적 현상으로서의 단일성이 아니다. 단일성의 근거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활동하시는 하느님 자신의 단일성에 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 성령도 한분, 믿음도 하나,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시다.”(에페 4,3-6) 하느님께서 온 세상 곳곳에 흩어진 만인을 하나의 하느님 백성으로 모으신다. 한 분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만인을 모아 성경을 통하여 친교를 이루신다. 같은 세례로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 동일한 성찬 식탁에서 모든 이가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서로의 일치를 도모한다. 한분 주님 그리스도에 대한 동일한 신앙고백, 유일한 하느님 자신을 향한 동일한 희망, 모든 이들을 한마음이 되게 하는 동일한 사랑, 세상을 위한 동일한 봉사 때문에 교회는 하나다.

교회는 하느님 가족의 시작이다. 모든 이가 서로 다른 고유성을 지닌 채 이 단일성에 불리웠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다. 일치와 단일성은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삼위일체 하느님이 교회의 단일성의 근본 바탕이므로 그 단일성은 삼위일체적 단일성 곧 다수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단일성이다. 교회의 하나 됨은 다양성을 무시하고 말살하는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단일성이다. 진정한 단일성은 다수성과 단일성의 근거가 되시는 삼위일체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하나 됨이다. 교회는 하나이며, 또한 따라서 하나라야 한다.

둘째로, 교회는 거룩하다. 그 구성원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까닭은 교회가 하느님에게서 받아 누리고 있는 것들 자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곧 말씀, 성사, 은총, 생명이 거룩하다. 성성은 그 구성원들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신도들의 종교 윤리적 행위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교회에 대해 ‘순결한 창녀’라는 전통적 표현이 있는데 이는 교회의 양면인 거룩함과 죄스러움을 동시에 나타낸다. 교회는 죄인들의 공동체이다. 믿는 인간들의 공동체이므로 죄 많은 교회다. 그렇지만 교회는 인간들로 구성된 공동체이자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진 하느님의 교회이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는 은총이 충만히 내렸다.”(로마 5,20) 죄가 많으면서도 동시에 거룩하고, 거룩하면서도 동시에 죄 많은 공동체다. ‘의인 겸 죄인’인 교회다. ‘죄인 공동체’가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에 의하여 ‘성인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2009년 4월 5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 가톨릭마산 9면]


[사도신경 해설 47]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5) 교회의 특징 (2)


교회의 둘째 특성인 거룩함으로부터 그 ‘불후성’(썩어 없어지지 아니함), ‘영속성’(오래 지속함), ‘무류성’(그르침 없음) 등 세 가지 속성이 파생된다.

교회가 거룩하기 때문에 죄악의 세력에 굴복 당하지 않을 것이다. “저승의 세력도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교회는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없다. 교회에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하여 항구한 불후성이 주어져 있다. 온갖 죄악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느님에 의하여 은총 속에 보호되고 보존될 것이다. 교회의 거룩함 덕분에 그 생명력이 끈질기다. 교회에는 하느님의 신의에 의하여 끈질긴 연속성이 주어져 있다. 온갖 실수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하느님에 의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교회가 거룩한 덕택에 거짓의 세력에 굴복당하지 않을 것이다. 거짓에 속을 수 없고 거짓을 절대 가르칠 수 없다. 하느님의 약속과 성령의 감도에 힘입어 무류성이 주어져 있다. 무류성은 교황이 진리를 사도좌에서 그리고 주교단과 일치하여 진리를 선포할 때 누리는 무류성 곧 거룩한 교회 전체의 그르칠 수 없는 특성을 가리킨다. 교회의 무류성, 영속성, 불후성은 거룩하기 때문에 누리는 특성들이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죄인임에도,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말씀과 성사와 은총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 그래서 신도들은 ‘성도(거룩한 무리)’라 불린다. 교회는 거룩한 특성을 지닐 뿐 아니라 거룩하게 하는 성화의 사명을 지닌다. 자신을 성화하는 말씀, 성사, 은총 등을 통해 교회는 세상을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교회의 세 번째 특성은 ‘보편성’이다. 천주교의 세계적 명칭인 ‘가톨릭’이 이 특성에서 나왔다. 이 용어는 ‘보편적’, ‘세계적’, ‘포괄적’, ‘통합적’ 따위를 뜻한다. 그리고 ‘온전성’ 또는 ‘동일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회가 시대와 양식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를 겪고 온갖 약점과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교회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교회이다. ‘보편적 동일성’은 가톨릭성의 기초이다. 교회는 결코 자신만을 위해 있지 않다. 처음부터 남을 위한, 인류를 위한, 세계를 위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계적이고 보편적이다. 교회는 본래 그 기원에서부터 세계적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지역적으로 전 세계에 교회가 퍼져있고 그 교인들이 수적으로 많아서 가톨릭인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이’가 구원되기를 원하시고 그 보편적 원의에 따라 예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기에 가톨릭적이다.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따라 교회가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보편적이다. 교회는 인종, 문화, 지역을 초월해 있으며, 어느 특정 민족이나 지역에 매여 있지 않다. 온 세계, 온 인류를 대상으로 사명을 수행하고 봉사한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시어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셨고 성령을 통하여 어디서나 현존하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그분의 교회는 보편적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진리를 온전하게 보존하고 이 진리를 모든 세대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기 때문에 보편적이다. 만인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온 세상 곳곳에 파견되므로 가톨릭적이다. 그러기 위해 가톨릭 교회는 모든 지역의 모든 문화에 전승하고 그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 [2009년 4월 19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마산 8면]


[사도신경 해설 48]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6) 교회의 특징 (3)


넷째로,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온다. 교회는 사도들과 관련되어 있다. 사도성’은 사도유래성, 사도전승, 사도적 직무 및 봉사, 사도적 계승 등을 뜻한다. 사도유래성은 교회가 사도들을 주초로 하여 세워졌고 사도들로부터 나왔으며, 그들의 가르침 위에 굳건히 서있고 사도처럼 세상에 파견되었음을 뜻한다. “복음은 내가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준 것입니다.”(1코린 15,3) 복음은 사도들이 교회 안에서 주님으로부터 전해 받아 사람들에게 전해준 교회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교회 내의 전승은 사도로부터 시작되어 계승되고 있다. 교회는 그 안에 계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고유한 유산 그리고 사도들로부터 전해들은 말씀을 보존하고 전한다. 이 전승을 교회가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고 말로써 전하기도 하여 성경과 성전(거룩한 전통)이 생겨난 것이다.

주님을 직접 만나 함께 생활하였던 사도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과업과 직분은 남아 있다. 사도는 사라졌지만 사도적 직분은 사라지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사도적 직분이 남아 있으므로 사도적 봉사도 남아 있다. 사도적 직분과 봉사를 통하여 사도 유래성과 사도적 계승이 이루어진다.

신경은 교회의 사도성과, 그리고 사도직의 계승을 재확인하는 기회이다. 사도신경을 외움으로써 교회는 사도적 계승을 공적으로 고백한다.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선교에 의하여 모인 새 하느님 백성이다. 온 교회가 사도들의 기초 작업에 의해 지어진 성령의 성전이다. 온 교회가 사도들의 봉사에 의하여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다. 온 교회가 예수님이 승천하기 전 사도들에게 넘겨준 ‘하늘과 땅의 권한’을 넘겨받았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 모든 구성원들을 통해서 사도들이 증언과 지속적으로 일치되어 있을 때, 아울러 사도들의 봉사와 지속적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사도를 계승하는 사도적 교회가 된다.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로 불린 자로서 가톨릭 교회의 사도 유래성과 사도적 직무 등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고 구현하는 봉사자들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사도’는 ‘파견된 자’이다. 주님으로부터 직접 들은 바를 증언하기 위해 파견된 자이다. 파견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근본 특징이다. 성부로부터 파견되신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는 분이 되셨다. 파견에 의해 제자들은 사도로 변신하였다. 그들은 복음선포와 구원을 위하여 주님으로부터 권한과 사명을 부여 받았다. 교회는 사도들이 주님에게서 전해 받고 전해 주는 바와 그들이 가르친 바 그리고 그들이 부여 받은 선교사명 위에 세워졌으므로 사도직처럼 권한과 사명을 갖고 파견되었다. 교회가 사도들을 거치지 않고 주님께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사도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주님을 알고 만날 수 있다. 사도들의 기본적 증언은 온 시대, 모든 장소에서 선포하며, 믿고 행동하는 교회 존재의 근원이며 규범이다. 사도들의 생생한 증언은 구약성경과 연결된 신약성경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원천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사도유래성은 또한 성경 말씀에 대한 충실을 뜻한다.

단일성, 성성, 보편성, 사도성 등 네 가지 특성들은 그리스도의 참 교회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척도나 기준이 된다. 그 특성들이 가톨릭 교회 안에 충만하게 존재하므로 천주교는 참되고 ‘온전한’ 그리스도교라 자부하고 있다. [2009년 4월 26일 부활 제3주일 가톨릭마산 8면]


[사도신경 해설 49]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7) 교회의 사명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고 뽑으시는 것은 우리를 믿고 바라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믿음과 바람과 사랑 때문에 우리가 선택되었다. 이 선택은 우리를 위한 특권만이 아니다. 선택의 주된 목적은 파견이다. 사명을 위하여 하느님은 당신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뽑으신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신 다음,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셨다”(마르 3,13) ‘사도’로 선택하셨는데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파견은 곧 사명이다. 교회가 태어난 것은 파견되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사명 수행이다. 그 사명은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의 사명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왕과 사제 및 예언자를 뽑으셨다. 이들은 하느님의 특수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뽑혀 파견된 자들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백성 사이를 중개하면서 백성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왕은 통치, 사제는 제사, 예언자는 말씀의 중개자이며 봉사자들이다. 하느님께서 왕을 통하여 백성을 다스리시며, 사제를 통하여 축복을 내리시며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을 전하셨다.

백성의 이 세 가지 중개역은 그리스도에 의해 그대로 계승되고 완성되었으며 또 교회가 이어받고 있다. 그리스도는 예언자, 사제,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생애 초기에 예언자로서의 면모가 뚜렷하였다. 권위 있게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며 기적을 일으키는 그분을 보고 군중들은 “우리 가운데 위대한 예언자가 났다.”고 감탄하였다. 마지막까지 예수님은 예언자로 처신하셨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다.”(루카 13,33) “성전 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2,6)는 말씀이나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요한 2,19)는 선언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에 봉사하기로 불린 사제임을 나타낸다.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의 장소, 새 성전이 되고자 하셨다. 수난하고 죽고 부활한 몸이 새 성전이 됨으로써 ‘유일하고 완전한 중개자’ 사제가 되신다. 최후 만찬 중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도 사제로서의 신원을 드러내신 것이다.

세상의 통치자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왕으로 자처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요한 19,36.37) 십자가 명패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분이 온 세상의 왕임을 공표한 것이다. 세상 통치자와는 달리 그분은 겸손으로 봉사하신 왕이시다. “민족들을 지배한 임금은 백성 위에 군림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중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6)

교회는 그리스도의 세 직분에 참여한다. 교회는 모든 이들을 구원으로 불러 모으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선교적’이다. 그리스도는 온 민족을 제자로 삼기 위하여 교회를 파견하셨다. 교회의 선교사명은 예언직, 사제직, 왕직으로 수행된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 이 세 직분은 선교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다. 이 세 직분으로부터 가르치는 직무(교도직), 거룩하게 하는 직무(성화직), 다스리는 직무(사목직) 등 세 직무가 나온다. 교도직은 말씀을 전하는 일, 성화직은 기도와 성사를 통해 교회 자신과 세상을 성화하는 일, 사목직은 세상의 발전을 위해 섬기는 일이다. 교회가 사명을 위해 파견된 목적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성령의 파견으로 이 세상 안에 오기 시작한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이며 싹’으로 세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때 ‘구원의 보편적’ 성사로서 역할을 다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친교의 표징이며 도구가 된다. [2009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마산 7면]


[사도신경 해설 50]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8) ‘교회의 어머니’ 마리아


마리아에 관한 논의의 가장 적합한 자리는 교회에 관한 논의의 마지막 장이다.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이상이고 완성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교회가 완전한 방식으로 성취되어 교회가 늘 바라보면서 본받아야 할 본보기이다.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이다.

마리아가 교회의 어머니이신 동기는 교회가 태어나는 자리에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로서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는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마리아 이름을 가진 세 여인들과 ‘사랑하시는 제자’ 등 다섯 분이 있었는데, 이들은 갓 태어날 교회를 대표하는 이들이다. 그 사실을 아시고 예수님은 “어머니와 그 곁에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두 분에게 각각 이렇게 선언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 이 두 말씀으로써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사이에 모자관계를 맺어주셨다. 마리아를 향해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여인’이라 칭하신 것은 특별한 의미에서다. 당신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넘어서 성경의 두 대목에서 등장하는 ‘구원의 여인’으로 여기셨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태양을 입고 발 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묵시 12,1) 예수님은 마리아가 메시아의 어머니이시므로 당신과 더불어 구원을 위해 헌신하게 되는 ‘여인’으로 간주하신 것이다. 그녀가 교회의 어머니 되신 것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구원의 첫 열매이다. 구세주 그리스도를 낳고 기르신 어머니로 그분에 의해 십자가의 구원 효과를 입어 ‘제자의 어머니’ 곧 ‘교회의 어머니’로 선언되셨다. 그래서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태어나는 그 자리에 마리아는 사도들과 함께 중심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예수님 생전에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 구원의 여인으로서의 모습과 역할을 미리 보인 적이 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초대 받으셨다.”(요한 2,1) 이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없는 것을 마리아가 제일 먼저 알아채시고 아드님께 청하셨고 이분이 거절하시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고 잔치 봉사자들에게 지시하였다. 이로써 마리아는 아드님이 ‘좋은 포도주’를 제공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마리아가 예수님과 혼인잔치 일꾼들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훌륭히 해냄으로써 그리스도와 우리들 사이의 중개자로 또한 ‘구세주의 협력자’로서도 모습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평소에 메시아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어머니로부터 도움을 받고 또 참으로 유익한 협조였다고 판단하셨기에 십자가 위에서 구원을 성취하는 순간에 교회의 어머니로 우리에게 내어주셨다. 어머니마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신 셈이다.

마리아는 성자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사실을 바탕으로 더 나아가 ‘영신적 어머니’가 되신다. 은총의 세계에서 교회의 어머니시다. 그녀는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교회의 머리이신 성자 그리스도를 낳고 기르신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설립 순간부터 기도로 교회와 함께 하신다. 하늘로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는 지상의 자녀들을 위하여 계속 전구하시며 모든 이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시고 그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풍성한 공로에서 흘러나오는 구원의 영향력을 행사하신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09년 5월 10일 부활 제5주일 가톨릭마산 8면]


14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