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2동성당 게시판

너무 자주...여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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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경순 [veronicam] 쪽지 캡슐

2002-05-27 ㅣ No.1798

굿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조승연자매님의 글입니다.

본당에서 전례봉사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잘 알수 있기에 옮겨봅니다.

평소에 그 노고 치하에 소홀하기도 해서 참회하는 맘으로(특히 평소와 다른 엄숙한 음성으로

봉사하는 율리아나, 크레센시아, 그리고 남편을 자주 놀려서 더욱 회개하고 있습니다)

퍼왔습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해서요.

 

 

게시자: 조승연(communion) 질문 드립니다.

게시일: 2002-05-27 14:43:08

본문크기: 12 K bytes 번호: 34067 조회/추천: 166/21

주제어:  

 

 

오늘은 제가 게시판을 통해 여러분께 한가지 상담을 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간의 사정을 들려드리죠.

 

 

 

2년 전 쯤, 우연한 기회에 제가 전례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미사 해설을 하지요.

 

처음에 들어가서 3개월에 걸쳐 교육받고 평일미사 배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 익숙해졌다 싶을 무렵..

 

또 다시 2개월의 교육을 받고 주일미사 배정을 받았죠.

 

중간에 꽤 오랜 기간 쉬었던 적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많으면 두세 번 정도 평일미사를 하고 주일미사도 한두 대 정도 한답니다.

 

이 쯤 되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시간과 경력이죠.

 

 

 

하지만 꽤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늘 어설프고 덤벙대는 해설자입니다.

 

아무리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도..

 

미사 시간 직전에 떨리고 긴장되는 것은 여전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실수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랍니다.

 

 

 

오늘은 먼저..

 

그 동안 제가 거룩하고 합당한 미사 때에 실수한 것들을 메들리로 엮어 고백드리겠습니다..

 

 

 

 

 

#1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독서 후에 화답송을 합송하던 때였죠.

 

화답송 중에 이런 화답송이 있습니다.

 

 

 

어서 와 엎드려서 조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세.

 

당신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우리는 그 목장의 백성이로세.

 

당신 손이 이끄시는 양 떼이로세.  

 

 

 

전 두근두근대는 가슴을 누르고..

 

한껏 낭낭한 목소리로 화답송을 읊고 있었습니다.

 

근데 한번은 꼭 실수를 하고서야 넘어가는 제가..

 

그만 발음을 잘못하고 말았죠.

 

 

 

......

 

당신께서는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우리는 그 목장의 ’백정’이로세..

 

 

 

순간 아차! 싶었지만 한번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졸지에 저를 비롯한 모든 신자분들은 목장의 소잡는 ’백정’이 되고 말았죠.

 

경황이 없어 신자석까지는 확인을 못했지만..

 

제가 실수를 하자 제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계셨던 집전 신부님께서 어깨를 들썩이시더군요.

 

척 봐도 웃음을 참지 못하시는 모습이셨습니다.

 

어찌나 무안했던지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더군요.

 

 

 

 

 

#2

 

한번은 주일미사 때였습니다.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 대영광송..

 

신자분들과 교대로 대영광송을 읊다가..

 

제가 그만 어디까지 했는지 까먹은 겁니다.

 

 

 

"세상의 죄를.. 아니, 성부 오른편에.... 세상의.. 으응?? "

 

생각해보십시오..

 

거꾸로 외워도 외울 것 같은 대영광송..

 

해설자가 오락가락하다가 으응? 하는 효과음까지 내고 말았으니..

 

그리고 그 실수는 어떻게 만회할 길도 없이 고감도의 마이크를 통해 생생하게 생중계되고 말았지요.

 

 

 

잠시 신자석과 저 사이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자 여러분께서 먼저 잡아서 나가시더군요.

 

저도 곧 정신을 수습하고 따라 갔답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전 넋이 반쯤은 빠져 있었죠..

 

 

 

 

 

#3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평화 예식 때였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평화의 인사를 나눕시다.

 

평화를 빕니다아~~

 

 

 

그리고 전 성체분배자 아저씨. 복사들. 신부님..

 

평화의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헤벌쭉 웃으면서 연신..

 

평화를 빕니다. 어! 여기도.. 평화를 빕니다. 핫, 저기도? 평화를 빕니다. 빕니다. 빕니다..

 

신나서 꾸벅꾸벅 절을 했죠.

 

그리고 나서 ’하느님의 어린양’은 까맣게 잊어버린 겁니다.

 

 

 

신자분들께서 멀뚱한 눈으로 절 쳐다보시는데..

 

정작 저는..

 

왜 저렇게 쳐다보실까나....?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니면 내가 너무 예쁘게 인사했나..?

 

이렇게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 신부님께서 그냥 미사를 하시더군요.

 

그 때서야 아차!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릴 수도 없고.. 또 한번 저는 띨한 해설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4

 

저녁 6시 미사 때였습니다.

 

그다지 익숙지 않은 부활삼종기도를 드려야 했던 기간이었죠.

 

모두 아시는 것처럼 부활삼종기도.. 별로 길지도 않습니다.

 

근데 그 길지도 않은 부활삼종기도에서..

 

제가 아예 한 소절을 송두리째 빼먹은 겁니다.

 

하지만 제가 실수를 하자 신자들께서 더 큰 소리로 다음 구절을 기도하시더군요.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 다음부터는 우물쭈물 어리버리.. 계속 헤맸답니다.

 

 

 

 

 

이 밖에도 실수를 고백할라치면..

 

책으로 한 권을 내도 모자랄 판입니다.

 

복사 녀석들이 제 옆을 지나가면서 팔꿈치로 제 옆구리를 냅다 강타하는 바람에 꺅! 소리를 내지른 적도 있고..

 

’다스리시리라’ 이 발음이 안돼서 여지없이 혀 짧은 소리로 ’다스디시디다’ 라고 발음했던 적도 있습니다.

 

아침 미사에서는 목소리가 잠겨 알렐루야 때 입도 뻥긋 못 했던 적도 있구요.

 

 

 

그렇게 미사를 죽쑤고(?)나면.. 마음이 참담한 것은 말로 표현한 길이 없습니다.

 

해설자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신자 여러분들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미사를 잘 드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건데..

 

제가 신자분들을 도와드리는 것이 아니라 매번 신자분들께서 저를 도와주시거든요.

 

그리고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해설자가 이렇게 멍청하고 어벙하면..

 

미사 드리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짜증도 나실 겁니다..

 

미사 중에 분심도 드실 테구요.

 

 

 

그렇기에..

 

거하게 실수를 한 날이면 미사보를 코까지 내려 씁니다.

 

그리고 미사 후 안경을 벗는다거나 머리를 동여맨다거나.. 등등 변장(?)을 하고 성당을 빠져나오곤 하죠.

 

혹시나.. 누군가 저를 보시고 ’해설자, 너 잘 만났다.. 나 좀 보자!’ 이렇게 잡으실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주위를 둘레둘레 살피며 종종걸음으로 황급히 빠져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위안(?)이 되는 것이..

 

그렇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해설단에..

 

저 말고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선배들의 실수담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선배는..

 

영광송을 하다가 이랬다죠.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햐~~ 영광송과 성호경의 절묘한 조화!)

 

 

 

어떤 선배는 이런 실수를 했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하소서. (이젠 해설자가 강복까지!!)

 

 

 

또 다른 선배는 "잠시 후 이러저런 일이 있으니 이러저러하게 해주십시오." 라는 멘트를 한다는 것을..

 

"이따가~~ 요러조러한 일이 있으니까 요러조러하게 해주세요.."하고 말했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느 정도 묻혀지고..

 

나중엔 웃으면서.. 그런 실수도 있었어.. 하고 말하게도 되지만..

 

정작 실수할 당시에는 죽을 맛입니다.

 

나 오늘로 해설 끝낼래.. 나 정말 이젠 고만 할래..

 

이런 다짐을 매번 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뻔뻔하게 해설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은..

 

마이크를 잡는다는 우쭐함 때문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해설대는 맨 구석에 쳐박혀 있는 터라.. 해설자 얼굴은 잘 뵈지도 않는답니다.)

 

미사 때마다 같은 신앙인으로서의 사랑과 관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실수를 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가 축 쳐져 나오면..

 

성체분배자, 독서자, 복사.. 모두들 위로해 주십니다.

 

자매님. 괜찮아.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인데 뭐.. (한번 실수가 아닌데도..)

 

다음부터 잘 하면 돼지. 너무 그렇게 낙담하지 말아요. (매번 그렇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신자들은 자매님 얼굴 잘 모를 거야.. 우리만 아는 일인데 뭐.. (실은 그 말이 더 무섭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신다는 말씀이니까요..)

 

 

 

비단 미사 때마다 뵙는 그 분들뿐 아니라..

 

미사를 드리시는 신자분들 역시 제 허물을 너그럽게 덮어주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에이그.. 오늘따라 해설자 실수가 잦네그려.. 하시면서도 이해해주시는 것이 마음으로 전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용서받을 때의 행복함을 종종 느낍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한 점으로 말미암아 늘 신자분들께 죄를 짓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도구로 써주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난 왜 이렇게 형편없고 부실한 그릇일까.. 여기 저기 이도 빠지고, 금도 가고, 물도 새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 해설 계속 해도 될까요..?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머리 위로 동그라미~~~

 

아~~! 감격스런 동그라미의 물결이군요.. 우헤헤..

 

그럼 제가 해설을 그만 둬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 물구나무 서서 자신의 팔꿈치에 뽀뽀해보세요..

 

오~~! 아무도 안 계시군요..

 

(참고로 자신의 팔꿈치에 뽀뽀하는 건 보통의 신체구조를 가진 분이시라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전 목요일에 또 다시 미사 해설을 합니다.

 

제가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해설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 기도 부탁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혹 여러분들께서 미사를 드리시다가 실수를 하는 해설자를 보게 되시거든..

 

허허허.. 저기 또 communion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답답하실 정도면.. 해설자 본인은.... 정말로.. 환장한답니다.. *^^*

 

 

 

주님..

 

보잘 것 없는 저를 축복하셔서..

 

미사에 오신 모든 분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제게 은총 허락해 주세요.

 

그리고 이번 목요일 미사 때는 꼭... 대박 터뜨리게 해주세요~~!

 

 

 

아! 그리고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미사 전에 빼놓지 않고 하는 멘트가 있는데요.

 

휴대전화를 소지하신 분께서는 미사 중에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다시 한번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멘트랍니다..

 

이런 멘트가 나올 때 번거로우시더라도.. 한번만 더 확인해 주셨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럼..

 

평안한 하루 되시길 기도 드립니다..

 

이상 communion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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