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느님/박용식 신부

인쇄

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6-10 ㅣ No.449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동물 학교에서 소풍가는 날이었다. 엄마 토끼는 자기 아이가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은 것을 알고 부리나케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로 달려가는 중이었다...거의 학교에 다 왔는데 뒤에서 다람쥐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토끼에게 말한다."부탁이 있는데요, 제 자식이 오늘 도시락을 잊고 갔지 뭐예요..
제 아이의 도시락도 좀 갖다 주세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학교에서제일 잘 생긴 아이를 찾으면 되니까요. 부탁합니다."

토끼는 다람쥐의 도시락을 받아 학교에 가서 자기 아이 도시락을 전해준 후에 다람쥐 아이를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람쥐에게 도시락을 되돌려주면서 말하길 "죄송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아무리눈 씻고 찾아보아도 댁의 아이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 아이보다 더 잘 생긴 아이는 그 학교에 없었거든요. [그리스 민담에 있는 내용이다]."



사람은 물론 동물이나 미물까지도 제 새끼가 예쁘지 않고 귀엽지 않은 어미는 없단다. 징그럽게 생긴 고슴도치나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는 징그러운 동물도 제 새끼는 예쁘고 귀엽다,
새끼에 대한 어미의 마음, 자녀에  대한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언정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9,15],

동물이나 사람이나 제 자식이 귀엽고  예쁘듯이 하느님께도 당신 자식은 예쁘고 귀여운 것이다. 아니 동물이 제 새끼를 귀여워하는 것보다, 사람이 제 자식을 예뻐하는 것보다 하느님은 인간을 더 예뻐하고 귀여워하신다.인간을 그토록 사랑하고 예뻐하시기에 인간이 죄를 저질러도 인간이 병들고 불쌍해져도 여전히 예뻐하시고 사랑하신다. 아니 죄짓고 병들어 고통당하면 성할  때보다 더 사랑하신다, 더욱더 보살피신다.병들고 고통당할 때 더욱더 보살피는 사랑은 동물이나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는 7남매의 5번째인데 형제가 7명이나 되다 보니 아픈 형제가 자주 있었다. 동생이 아플 때 어머니는 동생을 더 사랑하신는 것 같아 샘이 나고 질투가 생겨 아프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죄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더 보살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죄인 마태오를 껴안으시는 장면이다.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오는 부정한 방법 으로 돈을 벌어들여 풍족했지만 죄인으로 손가락질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살았다.아무도 친구가 되어주지 않았고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께서는 야단을 치시며 훈계를 하실법한데 전혀 죄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그 집에 들어가 다정한 친구처럼 함께 식사를 하시며  어울리신다. 난생 처음 인정을 받자, 마태오는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당장 직업까지  때려 치우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 나선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로 받아들이신다.


하느님은 죄인만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고통 받는 사람에게도  각별한 보살핌을 나타내신다. 오빠 나자로를 잃고 슬퍼하는 마르타와 함께 눈물까지 흘리셨고 나병 환자, 앉은뱅이, 절름발이, 바보, 천치, 병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배려를 보이셨다. 더 할 수 없이 예쁘고 귀여운 하느님의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신부 생활하면서 가끔 상처를  받는다. 나를 힘들게하고 상처를 준 사람 들을 생각하면 눈살이 찌푸려지고 미운 마음이 생긴다.그래서 잠시 미워한다. 그러다가 정신을 번쩍 차린다.


예수님도 죄인을 미워하지 않고 받아 들이셨는데 죄인인 내가 어떻게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가 ?????
신자들 중에서 주일미사를 밥 먹듯  빠지고 주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을 보면 속상하다 못해 미워진다. 신자들의 당연한 의무인 교무금을 한 푼 안 내거나 내도 마지못해 애들 과자 값보다도 적게 내면서 열심한 척하는 신자들을 보면 얄밉고 한심스러워 미워진다.

 

본당에서 온갖 활동은 다 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말뿐인 신자들을 보면, 궂은 봉사를 할 때는 각종 핑계로 쏙쏙 빠지다가 먹을 일이 생기고 받을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신자들을 보면 밉다. 미운 일이 어찌 한둘이랴? 그러나 잠시 미워하다가 예수님을 생각하며 미운 생각을 떨쳐 버린다. 예수님도 미워하지 않고 예수님도 단죄하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신자들을 미워하고 단죄할 수 있는가 ??????? / 박용식 신부








196 2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