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충직한 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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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연 [aldus119] 쪽지 캡슐

2005-07-13 ㅣ No.458

 

우리나라 전래 동화 중에 어리석은 나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상을 싣고 가던 나귀가 사람들이 자꾸 자기 쪽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우쭐대다가 그만 불상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냈고, 그 때문에 마부에게 채찍으로 흠씬 얻어맞았다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약성서에는 제 소임을 다한 나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수난 당하시려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들어간 나귀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두 제자들에게 근처 마을에 가서 나귀 한 마리를 가져오라고 이르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아라 그러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터인데 그 새끼도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 혹시 누가 무어라고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곧 내어 줄 것이다.”(마태 21,2-3) 이렇게 제자들에게 이끌려온 나귀는 군중으로부터 열렬히 환영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등에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이 나귀는 주님의 의도대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한 충직한 나귀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등에 태워 모시고 가는 나귀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등에 모신 예수님이 찬미와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주제를 모르고 까불다가 불상을 떨어뜨려 얻어맞은 어리석은 나귀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2005년도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이 있습니다. 7월8일 금요일에 오후 2시에 서울대교구 소속 26명의 부제님들이 사제로 서품됩니다. 7년 내지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가톨릭 교회의 사제가 되는 것입니다. 서품 당일 그리고 첫미사를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풍성한 축하에는 사제 본연의 임무, 즉 예수님처럼 철저히 하느님 아버지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라는 절절한 염원이 담겨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유와 개성이라는 미명 하에 실상은 변덕스러운 자기 자신만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계획, 취미, 이익, 편리, 감정, 또는 상처를 절대시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에서 자신을 낮추어 봉사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들게 여겨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를 버리는 몰아적인 봉사로써 세상을 얻으셨습니다. "나만을 알아달라"는 아우성 소리에 지친 많은 이들은 예수님 닮은 봉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부디 주님의 일꾼으로 뽑힌 26명의 사제들이 진정한 봉사자 예수님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굳건하게 확신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새 사제들이 묵묵히 주님을 등에 모시고 가는 충직한 나귀가 되기를 기원할 뿐입니다. /손희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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