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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화화 음역 용어의 출처와 성교요지 14,4에서 납궤재기 의 출처와 의미, 각주 오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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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5 ㅣ No.1710

1. 들어가면서


질문 1: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저술인 "성교요지"의 한 필사본에는, 본문이 아닌 각주에서, 요즈음 표현으로 "여호와(Jehovah)"로 표현되는, "야화화(耶和華)"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표현의 출처/기원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질문 2: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저술인 "성교요지"의 한 필사본에는 다음의 부분이 있는데, "계약의 궤 채우셨네"로 번역된 부분이 전후 문맥 안에서, 교리적으로, 내용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우리말 번역의 근거가 아래의 한문 각주, " 匱, 耶和華之約匱(궤, 야화화지약궤)."인지요???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성교요지_만천유고본-영성의_길_김동원신부_번역.pdf  

(발췌 시작)

제14장 예수님의 최후

 

1 慧雨慈雲       혜우자운         자혜로운 비와 구름
2 合享永位       합향영위         영원무궁 제사하네
3 背架築壇       배가축단         십자가의 제단 쌓고

4 載器       납재기         계약의 궤 채우셨네
5 察貨度銀       찰화도은         바친 재물 함께 모아
6 赤白用給       적백용급         필요 따라 나눠 쓰며
7 提要發綱       제요발강         인륜 강령 드높이고
8 合享永位       합향영위         영원무궁 제사하네

[...] 

(이상은 본문)

 

(이하는 각주)

[...] 

角, 菰也. 匱, 耶和華約匱. 淫, 淫祀也.
각, 고야. 궤, 야화화약궤. 음, 음사야.

[...] 

각(角)은 피리이고, 궤(匱)는 야훼의 약속하신 궤이며, 음(淫)은 음사이다.

(이상, 발췌 끝)

 

1-1. (사실) 우선적으로, 다음의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은, 영어로 "Jehovah"로 음역되는 표현이 아무리 늦더라도 13세기에 이미 사용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께서 "God(하느님)"을 나타내는 한자 글자들, "신", "상제" "상주", "천주"를 사용할 때에 이미 "Jehovah"로 음역되는 하느님의 이름에 대하여 알고 계셨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cathen/08329a.htm 

(발췌 시작)

It has been maintained by some recent scholars that the word Jehovah dates only from the year 1520 (cf. Hastings, "Dictionary of the Bible", II, 1899, p. 199: Gesenius-Buhl, "Handwörterbuch", 13th ed., 1899, p. 311). Drusius (loc. cit., 344) represents Peter Galatinus as the inventor of the word Jehovah, and Fagius as it propagator in the world of scholars and commentators. But the writers of the sixteenth century, Catholic and Protestant (e.g. Cajetan and Théodore de Bèze), are perfectly familiar with the word. Galatinus himself ("Areana cathol. veritatis", I, Bari, 1516, a, p. 77) represents the form as known and received in his time. Besides, Drusius (loc. cit., 351) discovered it in Porchetus, a theologian of the fourteenth century. Finally, the word is found even in the "Pugio fidei" of Raymund Martin, a work written about 1270 (ed. Paris, 1651, pt. III, dist. ii, cap. iii, p. 448, and Note, p. 745). Probably the introduction of the name Jehovah antedates even R. Martin.

 

여호와(Jehovah)라는 단어가 1520년부터 오로지 시작된다고 일부 최근의 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되어져 왔습니다 (cf. Hastings, "Dictionary of the Bible", II, 1899, p. 199: Gesenius-Buhl, "Handwörterbuch", 13th ed., 1899, p. 311). Drusius (loc. cit., 344)는 Peter Galatinus를 이 단어 여호와(Jehovah)의 창안자로서, 그리고 Fagius를 학자들과 주석자들로 구성된 세상 쪽으로 그 전파자로서, 제시합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Cajetan와 Théodore de Bèze 등과 같은) 16세기의,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저자들은 이 단어와 완미하게(perfectly) 친숙합니다. Galatinus 몸소 ("Areana cathol. veritatis", I, Bari, 1516, a, p. 77) 자신의 시대에 알려진 그리고 받아들졌던 것으로서 이 형태(the form)를 제시합니다. 게다가, Drusius (loc. cit., 351)는 이 형태를 14세기의 한 명의 신학자인, Porchetus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끝으로, 이 단어는 심지어, 1270년 경에 저술된 한 개의 저술인, Raymund Martin의 "Pugio fidei"에서 발견됩니다(ed. Paris, 1651, pt. III, dist. ii, cap. iii, p. 448, and Note, p. 745). 아마도 이 이름 여호와(Jehovah)의 [최초] 도입은 심지어 R. Martin보다 선행하였을(antedates) 것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다른 한편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 신부님들께서 "Jehovah"로 음역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음역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인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 신부님들의 주설들 중에서는  "Jehovah"로 음역되는 하느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음역 단어를 사용한 문헌을 아직은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1-2. (사실) 한편으로, 다음은, 개신교측의 로버트 모리슨 목회자에 의하여 1823년에 초간된 구약 성경, 탈출기 6,2-3인데, 이 시점까지 "야화화"라는 한자 음역 표기를 중국 본토의 개신교 구약 성경에서 사용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1: http://www.streetpreaching.com/morrison/morrison_chinese_bible_1823.htm

출처 2: http://www.streetpreaching.com/morrison/02Exodus.pdf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6&chineses=2&chap=6&sec=2 [(2024-01-15) 새 출처]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1-3. (사실) 그러나, 다음에 있는 1865년 판 개신교측의 탈출기 6,2-3에서는 "야화화(耶和華)"라는 한자 음역 표기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1823년 이후부터 1865년 이전의 어느 시점에서 중국 본토의 개신교 성경에서 이 한자 음역 표기를 처음/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65_구약전서/탈출기6_2-3.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1-4. (이 글의 결론 1) 따라서,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우리는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의 본문 중의 한 부분이 결코 아닌, 한 부의 "성교요지" 필사본의 각주에서 "야화화"를 언급한 각주자는, 개신교 측의 로버트 모리슨 목회자에 의하여 구약 성경이 중국본토에서 초간된 1823년보다 더 이후의 시기, 더 구체적으로, "야화화"라는 음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개신교 측에서 1854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개신교측 구약 성경 대표본(1854) 이후의 어느 시점에, 이 각주를 처음으로 추가하였음을 이 글의 힌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따름 정리 한 개) 따라서, 이 각주를 남긴 각주자는 이벽 성조(1754-1785년)아님을 이 글의 힌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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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논문[제목: 성교요지의 용어 검토, 저자: 김학렬 신부]의 제49쪽 본문의 마지막 부분 그리고 제81쪽에 있는 도표 3을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김학렬신부_성교요지의_용어_검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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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다들 잘 알고 계시곘지만,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의 목적으로  마련하신 저술이 바로 "성교요지"이므로, 그리고 전달되어야 하는 바가 성경 본문 및 이 성경 본문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공인 해석, 즉, 교리 내용이므로, 그리고 "신앙의 유산"에 근거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리들은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내용들이므로, "성교요지" 본문의 내용을 교리적으로 정밀하게 고찰하는 것은 상당히 유의미하고 또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이어지는 제2항과 제3항에서, 각주 "匱, 耶和華之約匱."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載器(납재기)" 4자성구를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작문하기 전에 이미 학습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문헌을 구체적으로 찾아 내고자 합니다.

 

2.

2-1.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14,4, 즉, 제14장 제4절에 있는 4자성구 "載器(납재기)"의 전후 문맥을 고찰하였을 때에,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자신의 저술인 "성교요지"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바가, 교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수난 공로의 결과들에 대한 것임은 쉽게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載器(납재기)"의 전후 문맥을 잘 들여다 보면, 교리적으로, 바로 이 4자성구가 "거룩한 성체(Holy Eucharist)" 혹은 이에 직접적이고 그리고 가장 근접한(proximate) 그 무엇(something), 즉, "미사 성제"임을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2. 따라서,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자신의 저술인 "성요요지"를 작문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telization)를 위하여 이미 학습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 한문본 성경 본문 혹은 교리서들 등을 들여다 볼 때에, 특히  4자성구 "載器(납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네 개의 한자 낱 글자들 중의 일부 혹은 한자 숙어의 일부가 또한 사용되고 있는,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생존 기간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잘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2-3.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만약에 그러한 문헌을 한 개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해당 한자 단어 혹은 숙어가 바로 그 문헌 안에서의 전후 문맥 안에서 어떠한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오로지 4자성구 "載器(납재기)"을 들여다 보는 것보다,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므로, 바로 이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를 우선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존중하면서 4자성구 "載器(납재기)"의 의미를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사변적 추론(speculative reasoning)의 과정을 거쳐 해석한 후에, 그렇게 해석하여 우리말로 번역한 번역문이, 4자성구 "載器(납재기)" 전후의 문맥 안에서 교리적으로 얼마나 비 모순적인지(non-contradictive)를 정밀하게 검토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제안하는, 바로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이와는 달리, 이러한 과정 없이, 무작정 4자성구 "載器(납재기)"의 낱글자들 혹은 숙어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를, "한문 문화권" 내에서는 유의미 하나 그러나 번역문에서 사용된 용어들의 의미를 교리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예를 들어, "강희자전" 등의 한자자전 등에만 오로지 의존하여, 도출하였을 때에 자주 발생하는 교리 관련 오류(error)를 극복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기본 생각입니다.

 

2-4.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의 내용에서, "성체성사" 혹은 "미사 성제"에 관련 내용은, 마태오 복음서 26,26-30; 마르코 복음서 14,22-26; 루카 복음서 22,14-20 에 언급되고 있는 "최후의 만찬" 관련 내용과 그리고 요한 복음서 6,22-58에 있으므로, 먼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9년 경에 있었던 전례력 개정 이전에, 16세기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부터 1969년까지 사용되어 왔던, 트리엔트 전례력에 있어, 이들 복음서들의 절들이 주일 혹은 첨례일(예를 들어, 대축일) 복음 말씀으로 봉독되는 경우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도록 합시다.

 

2-4-1. (사실) (i)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1947년에 사용된 트리엔트 전례력을 확보할 수 있는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마태오 복음서 26,26-30; 마르코 복음서 14,22-26; 루카 복음서 22,14-20 중의 어느 것도, 1947년에 사용된 트리엔트 전례력에 있어, 주일 혹은 첨례일 복음 말씀으로 발췌되어 봉독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atholic-resources.org/Lectionary/Roman_Missal.htm

 

그리고 (ii) 또한 다음의 정보를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전례력으로부터 파악할 수 있습니다:

Ember Wednesday of Pentecost     John 6:44-52
Corpus Christi (Thursday after Trinity Sunday)      John 6:56-59

 

2-4-2. 그리고 바로 위의 제2-4-1항, (i)에서 확인한 바는,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혹하면 가질 수 있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1636년 초간 저술인 한문본 "성경직해"를 학습하기 위한 독자들을 위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각주들이 있는, 화면에서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 필히 클릭하여 직접 확인하라

 

그리고, 위의 제2-4-1항, (ii)에서는, 오로지 당신의 살과 피의 역할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요한 복음서 6,56-58만이 다음에 발췌된 바(B)에 안내된 주소에 있는, 1636년 경에 실제로 사용된 트리엔트 전례력 기반으로 마련된 그리고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성교요지"를 작문하기 전에 학습하셨을 것으로 생각되는한문본 "성경직해"에서, 한문본 요한 복음서 6,56-58과 각주들을 읽을 수 있으나, 그러나 바로 아래에 발췌된 바(B)에 안내된 정보로부터는, "載器(납재기)"의 교리적 자구 해석을 위한 유의미한, 직접적 및 가장 근접한(proximate), 근거(basis)를 확보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B)

권9_60_야소성체or성체첨례_171-176 [요한 복음서 6,55-58(1969년에 개정된 지금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이상, 발췌 끝) 

 

2-5. (사실) 다른 한편으로,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저서인 한문본 "성경직해"가 초간된 1636년에 대단히 가까운 시기인 1635년에, 예수회 소속의 동료 신부님인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초간된, 최초의 한문본인, 화합 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에는, 마태오 복음서 26,26-30; 마르코 복음서 14,22-26; 루카 복음서 22,14-20없으나, 그러나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다음에 발췌된 정보가 보여주듯이요한 복음서 6,22-70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4_2_논천량지기성체_72-74 [요한 복음서 6,22-70(매년 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화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매년 부활 제3주간 토요일 복음 말씀)] [(2016년 7월 28일) 주: 여기서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6,27에서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로 번역된 표현이 "의무득 영구지양. 인자자 장여언"로 번역되었음.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성교요지"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궤(즉, 부족함/결핍) 글자에 대하여 고찰하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10.htm (주: 본글의 주소). 여기서 "새 번역 성경"에서 "하느님 아버지"로 번역된 표현이 "대부"로 번역되었음. 각주에 "모세"를 언급하면서 "만나"에 대한 설명이 주어져 있음.]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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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화합복음서"는, 마태오 복음서,마르코 복음서, 그리고 루카 복음서, 이들 세 권들로 구성된, 소위 말하는, "공관 복음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합복음서"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초기 중국어본 성경들 및 만일략 등 용어들의 출처들]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htm <----- 필독 권고

 

(2) 1635년에, 예수회 소속의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초간된, "천주강생언행기략" 이 화합복음서의 한 종류임에 대한 필자의 분석과 지적의 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제3항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07_장_바쎄/영국_보존본/화합복음서.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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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6년 7월 30일]

2-6.

2-6-1.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님으로서, 중국에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보유론적(補儒論的) 적응주의 선교 방식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로마 보존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6,27이 포함된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여기서의 한문 번역 문장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은,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의 4자성구 "載器(납재기)"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과의 관련성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07_장_바쎄/로마_보존본/신약_upto_히브리서1장.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07_장_바쎄/요한복음서.htm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45-1707_장_바쎄/요한_6.htm

(출처 3에서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6-2. 그리고 다음은 장 바쎄 신부님(1662-1707년)영국 보존본 화합복음서 제19장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요한 복음서 6,22-71에서 요한 복음서 6,27이 포함된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여기서의 한문 번역 문장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은,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의 4자성구 "載器(납재기)"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과의 관련성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2-7.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음은 안토니오 드 푸아로 신부님(1735-1813년)고신성경에서 요한 복음서 6,27이 포함된 부분을 발췌한 것인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여기서의 한문 번역 문장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은,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의 4자성구 "載器(납재기)"에서 사용된 한자 글자들과의 관련성이 별로 없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5-1813_안토니오_드_푸아로/고신성경_신약.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35-1813_안토니오_드_푸아로/고신성경_요한복음서.htm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상, 2016년 7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3.

3-1. (사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전" 제공의 "강희자전"에 주어진 "" 글자에 대한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 논천량지기성체에서 이 낱글자가 의미하는 바와 동일하게, "부족함/결핍"을 의미한다는 설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

http://www.zdic.net/z/16/kx/5331.htm

 

3-2. 다른 한편으로, "거룩한 성체(Holy Eucharist)" 혹은 이에 직접적이고 그리고 가장 근접한(proximate) 그 무엇(something), 즉, "미사 성제" 관련하여, 다음의 주소에서 글자의 검색 결과는, 이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의 문헌들 중에서, "" 글자가 사용되고 있는 문헌은 오로지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ctext.org/wiki.pl?if=en&res=804348&searchu=%E5%8C%B1 <----- 클릭하여 또한 필히 확인하라

 

3-3. 그리고 바로 위의 제3-2항의 검색 결과에서, 전후 문맥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자 낱글자 ""의 의미는 모두 "부족함/결핍"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특히,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 제2장 논천량지기성체 중의, "의무득 영구지양. 인자자 장여언"으로 번역된 한문 문장에서,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즉, 효자[의 효행]는 부족함/결핍이 없다)"를 연상할 수 있게 함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17년 6월 15일]

(사실) “불궤(不匱)”라는 시경(詩經)의 시어(詩語)는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천주강생언행기략”, 권5, 제5장 논적천재급수정방사후에서 두 번 사용되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천주강생언행기략_권5_5_논적천재급수정방사후_97-98.htm

[이상, 2017년 6월 15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고 "()"라는 표현이 한 개의 단어처럼 사용되고 있는 중국 고문들 중의 예(examples)들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text.org/dictionary.pl?if=en&char=%E4%B8%8D%E5%8C%B1 <-----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라

 

(이 글의 결론 4)

무슨 말씀인고 하면,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께서,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에 따라, 자신의 저서 "천주강생언행기략", 권4_2_논천량지기성체_72-74 중의 요한 복음서 6,27을 읽는 중국인 독자들로 하여금, 예를 들어,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즉, 효자[의 효행]는 부족함/결핍이 없다)를 연상할 수 있도록 하고자, "()"라는 표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로 선택하셨을 것임을, 이 글의 힌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7월 30일]

3-4. 다른 한편으로, 여러분들도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문집인 "여유당전서"에 담긴 기록에 의하여,(*1) 우리는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유학을 대단히 깊이있게 이해하고 계셨음을 잘 알고 있는데, 이벽 성조께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천주강생언행기략", 권4_2_논천량지기성체_72-74 중의 "의무득 영구지양. 인자자 장여언"(요한 복음서 6,27)으로 번역된 한문 문장을 읽자마자, 즉시, 이 구절에서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즉, 효자[의 효행]는 부족함/결핍이 없다)"에 등장하는 표현임을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연상하셨을 것임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확신합니다.

 

-----

(*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중용강의보"에 대한 안내의 글을 꼭 읽도록 하라:

http://tasan.or.kr/tasan/writings/writings2_cn24.asp <----- 필독 권고

-----

 

역으로(conversely), 유학의 4서5경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학습한 분들은 4서5경 본문들 모두를 머릿속에 기억하고 계신 것이 다반사였으므로,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바는, 단지 이벽 성조(1754-1785년)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1779년에 개최되었던 천진암 강학회에서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의 대상이었던 유학자들은,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중의 載器(납재기)를, 전후 문맥 안에서, 읽음과 함께 또한 이 4자성구에 대한 이벽 성조의 추가 설명을 직접 들음으로써, 보유론적 적응주의 선교자이신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께서 기대하셨던"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즉, 효자[의 효행]는 부족함/결핍이 없다)"를 연상할 수 있었을 것임을 많이 보족한 죄인인 필자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벽 성조에 의한 바로 이러한 연상 전달의 결과, 그들이 천주교를, 학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신앙(faith)으로서 받아들이는 데에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천주실의(天主實義)", 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의 "칠극(七克)"(*2)에 뒤따르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임을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는 확신합니다. 

 

-----

(*2) 게시자 주: "칠극(七克)/칠극대전(七克大全)", 평투(平妬) 편의 우리말 번역본(번역자: 박유리 교수)에서, 이 편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성경 구절들의 출처들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각주들로서 제공되고 있는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2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천학초함/칠극/칠극卷之二_평투.htm [본글] <----- 필독 권고

----

[이상, 2016년 7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이 글의 결론 4 끝)


게시자 주 3-4:

(1) 다음의 주소에 있는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17-18세기에 연행사를 통하여 조선에 유입된 천주교 서적들 가운데 당시에 조선의 유학자(儒學者)들이 직접 본 것으로 파악되는 중요한 서적들 중에는, 1629년에 초간된 "천학초함" 뿐만이 아니라, 1635년에 초간된 "천주강생언행기략", 1636년에 초간된 한문본 "성경직해"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가톨릭대사전/1637-1893_연행사.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8월 26일]

(2) 다음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아레니 신부님의 또다른 저서인, "예수언행기략" 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가톨릭대사전/1635-1649_예수언행기략.htm <----- 필독 권고

 

"천주강생언행기략" 은,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9월7일] 1782년(정조 6년)에 규장각에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으로 이봉(移奉)된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상, 2016년 9월7일자 내용 추가 끝],(#2) 아무리 늦더라도 1782년 이전에 연경 혹은 북경을 왕래하였던 연행사(燕行使)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어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들여다 본 바에 의하면, 바로 이 "천주강생언행기략" 은,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서 성자(즉, 하느님의 말씀, 즉, 하느님의 아드님)의 강생에 대한 예언들이 언급된 구약 성경의 본문들을 다루는, 아레니 신부님의 또다른 저서이며 또한 1640년에 저술된, "천주강생인의" 와, 그 내용에 있어, 한 질(帙)(one volume)을 이루기에,(#3)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출판된 바로 이 "천주강생인의"또한 아무리 늦더라도 1782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도입되어 일부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

(#1) 게시자 주: 지금 바로 이 제(2)항에서 지적하는 바는, 지난 2015년 10월 30일에 다음의 졸글[제목: 신형묘합神形妙合의 출처와 다산의 심心 글자의 의미 외], 제3-2항에 추가된 내용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9.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다음에 발췌된, 서지학자(書誌學者) 배현숙의 1984년 논문 [제목: 조선에 전래된 천주교 서적, 한국교회사논문집 I, 1984년, 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의 각주를 보라. "천주강생언행기략"이 포함된 27종의 서학(西學) 책들이 정조 6년(1782년)에 규장각 책고(冊庫)에서 강화도 소재 외규장각으로 이봉(移奉)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984_배현숙_조선에_전래된_천주교_서적.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3) 게시자 주: 또한,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저작 장소와 시기(後著作(1):1625-1637年)를 또한 참조하라:

 

출처: http://www.ces.org.tw/main/fcrc/fcrc_wksp/wksp-1d.htm

(발췌 시작)

 

(二)入後著作(1):1625-1637年

 

 艾儒略入後到崇禎十二年(1637)教案發生,這十年之間是他出書最多的時期,總共出版了十五種書,分別是《性學述》、《三山論學紀》、《滌罪正規》、《悔罪要旨》、《耶聖體禱文》、《萬物原》、《揚淇園園先生事蹟》、《彌撒祭義》、《利西泰先生行蹟》、《幾何要法》、《出像經解》、天主降生言行紀略》、《天主降生引義》(주: 1640년에 저술됨)、《西方答問》、《聖夢歌》。其中對中國思想的辯駁的《性學述》、《三山論學紀》與《萬物原》三本書最在1628年之前便已完成,在此之前楊廷筠閑居在杭州家中,張擔任杭州諭,透過他們的助,艾儒略得以對中國思想做系統且深入的理解。其餘書籍則說明天主教教義、禮儀之書與彌撒程序中所需的小冊子和人物傳記,而這十二年正好是艾儒略在福建地區傳最有成果的時期。

 

[...]

 

著作比較圖

1635

  

53

 

《出像經解》《天主降生言行紀略》《天主降生引義》出版,留居泉州。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017년 10월 12일) 바로 위의 출처에서 발췌된 바에서, "천주강생인의"가 1635년에 저술/저작되었음이 한 개의 명백한 오류(an obvious error)임을 지적하는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2.htm 

 

왜냐하면, "천주강생인의" 하권 제14쪽 앞면의 마지막 열(column)과 뒷면의 첫 번째 열에서 "천주강생인의"의 저술 시점이 1640년임을 저자가 직접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

[이상, 2016년 8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3-5. 다음의 굿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미사 [성제]"에 대한 설명에는 다음과 같은 서술이 있는데, 위의 제2항제3항에서의 고찰에 의하여,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 중의 4자성구 "載器(납재기)"가, 전후 문맥 안에서, 바로 이 "미사 [성제]"원형임을 말하고 있음은, 이제 대단히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1060

(발췌 시작)

미사 [성제]

 

[...] 이 용어는 5세기부터 서방 라틴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십자가제사를 재현하며 최후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안에 물려 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이상, 발췌 끝)

 

4.

4-1. 지금까지 위의 제2항제3항에서 도출한

(i)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 "부족함/결핍", 그리고 또한 

(ii)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 "효자(孝子)"의 의미, 

이들 둘 다를 존중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한,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 중의 4자성구 "納載器" 의 우리말 졸번역문 다음과 같습니다:

 

載器       납재기

 

(졸번역)

[불효자들의] 부족함/결핍()을 거두어들이고자 그릇에 오르셨네

(이상, 졸번역 끝)

 

게시자 주 4-1: 바로 위의 4자성구 納載器가, 교리적으로, "거룩한 성체(Holy Eucharist)" 혹은 이에 직접적이고 그리고 가장 근접한(proximate) 그 무엇(something), 즉, "미사 성제"를 의미할 뿐만이 아니라, 따라서 종(種)적으로(specially), "미사 성제" 중의

(i) 미사 중의 예물 기도문에서 바치게 되는, 소위 말하는, "거룩한 교환("the sacred exchange" = "sacrum commercium")",(#) 혹은

(ii) "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

이들 둘 중의 하나 혹은 이들 둘 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인데, 이들 둘 중에서, 이 4자성구의 전후 문맥을 고려할 때에, "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보다는 "거룩한 교환"을 의미한다는 것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입니다. 

 

-----

(#) 게사자 주: "거룩한 교환"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3.htm <----- 또한 필독 권고

-----

 

4-2. 이제 남은 작업은, 위의 질문 2에 발췌된 문장 중의 해당 부분을, 바로 위의 제4-1항에 있는 졸번역문으로 교체하여 얻게 된 문장이, 전후 문맥 안에서, 교리적으로, 그 의미의 흐름이 무난하게 잘 연결되도록 하는 지를 정밀하게 검토/확인하는 일인데, 이 마지막 검증 작업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성교요지_만천유고본-영성의_길_김동원신부_번역.pdf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성교요지"로부터 발췌 시작)

 

제14장 예수님의 최후

 

1 慧雨慈雲       혜우자운         자혜로운 비와 구름
2 合享永位       합향영위         영원무궁 제사하네
3 背架築壇       배가축단         십자가의 제단 쌓고

4 載器  납재기 [불효자들의] 부족함/결핍()을 거두어들이고자 그릇에 오르셨네(#)
5 察貨度銀       찰화도은         바친 재물 함께 모아
6 赤白用給       적백용급         필요 따라 나눠 쓰며
7 提要發綱       제요발강         인륜 강령 드높이고
8 合享永位       합향영위         영원무궁 제사하네

[...] 

 

-----

(#) 번역자 주: 4자성구 "載器"의 바로 이 우리말 번역문은, 위의 제2항제3항의 분석 결과에 의존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말 번역문은 김동원 신부님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

(이상, 발췌 끝)

 

4-3. (이 글의 결론 2)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성교요지"를 작문하기 전에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1635년에 초간된, 화합복음서의 한 종류인, "천주강생언행기략"을 이미 입수하여 학습하셨음을 이 글의 힌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8월 22일]  

(이 글의 결론 3) 이상, 고찰한 바로부터, 화합복음서의 한 종류인, 1635년에 초간된  쥬리오 아레니 신부님(1582-1649년)"천주강생언행기략"이, 다음에 발췌된 황사영의 백서에서 말하는, 이벽이 비밀리에 읽고 있었던, 이승훈이 몰랐던, "협의(狹義)의 성서(聖書)"[즉, 성경(聖經), Sacred Scriptures]에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김학렬신부_성교요지의_용어_검토.pdf 

(발췌 시작)

황사영은 백서에서, ‘그 때 이벽은 비밀리에 성서를 읽고 있었는데, 이승훈은 이를 몰랐습니다. 계묘년1783에 아버지를 따라 북경에 가게 되자, 이벽이 그에게 은근히 부탁하여 말하기를(時李檗密看聖書 而承薰不知 癸卯隨父入燕 李檗密托曰)’ 하며 적고 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2016년 8월 22일자 내용 추가 끝]

 

4-4. (이 글의 결론 4) 4자성구 "納載器"에 대한 한문 각주 "匱, 耶和華之約匱"오류(error)의 각주임을 이 글의 힌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 한문 각주를 처음/최초로 제공한 각주자는, 단지 이 글자 ""를 읽고서 무작정 "궤약 궤"을 무리하게 연상한 것으로 생각되며[즉, 귀납적 추론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error)], 또한 위의 제3-1항에서 말씀드린 "강희자전"에 주어진 "" 글자의 의미들을 통 알지 못한 것으로 볼 때에 유학의 4서5경에 그리 능통한 자가 아니었을뿐만이 아니라,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거룩한 성체" 관련 교리도 알지 못하였던 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 각주는, 예를 들어, 유학의 4서5경 내용에 대단히 해박하셨던, 천주교 신자이신, 다산 정약용 선생님(1762-1836년)에 의하여 마련된 각주가 아님이 대단히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만약에 이 각주를 처음/최초로 제공한 각주자가 위의 제2-5항에 발췌된 한문본 "천주강생언행기략" 중의 중국어 번역문 형태의 요한 복음서 6,27을 단 한 번이라도 읽기만 하였더라도, "성교요지" 중의 4자성구 "納載器"에 있는 ""를 읽고서 무작정 "궤약 궤"을 무리하게 연상하는 오류(error)[즉, 경험 부족 때문에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error)]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각주 "匱, 耶和華之約匱"를 결코 달지 못하였을 것임을, 필자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한문 각주가, 천진암 강학회가 개최되었던 1779년으로부터 상당히 이후의 시기에, 즉, 아무리 빠르더라도 1823-1856년 혹은 그 이후의 시기에, 개신교측 성경 용어로 추정되는 "야화화"를 사용하는 자에 의하여, 처음/최초로 제공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시자 주: (이 글의 결론 5)는 위의 제3-3항 중간부터 제3-4항 끝까지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7월 30일] 

4-5. (이 글의 결론 5)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당신의 "성교요지" 중의 4자성구 "納載器"의 전후 문맥 안에서, "불효자들"을, 예를 들어,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를 만족시키는 진정한 "효자들"로, 윤리적으로 선한(morally good) 방향으로변성(變成, becoming)하게 하는 신앙(faith)이 바로 "천주교"임을, 문학적으로 4자성구 시(詩)의 형식을 통하여, 논리적 및 윤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인데, 그러나 당시에 천주교 신자들을 잡아 죽였던 박해자들은, "성교요지" 중의 4자성구 "納載器"를 읽고서, 전후 문맥안에서, 예를 들어, "시경(詩經), 대아(大雅), 기취(既醉)"의 한 구절인 "효자(孝子)"를 분명히 연상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1),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기는 커녕, 대신에, 천주교 신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고자 결국에, 한자 낱글자 한 자를 바꿈으로써 수사학적으로 "조롱(嘲弄)"을 또한 의미하는,  "()"(*2)하는 자들의 괴수(魁首)로서, 이벽 성조를 모함하였고, 드디어 친부(親父)에 의하여 이벽 성조가 음독(飮毒) 질식사(窒息死) 당하였음(*3)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

(*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들을 클릭하면 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i) "효자(孝子)"에서의 "()"와,

(ii) "()"에서의 "()"는, 중국인들의 발음 또한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http://cndic.naver.com/search/all?q=%E5%8C%B1 [匱 = kuì, 모자랄 ]    

http://cndic.naver.com/search/all?q=%E8%BB%8C [軌 = guǐ, 궤도, 법도, 질서 ]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을 클릭하면, 한문 문헌들에 있어 "()"와  "()" 이들 두 표현들의 용례(usage examples)들을, 당시의 국내의 유학자들이 또한 잘 알고 있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http://ctext.org/dictionary.pl?if=en&char=%E4%B8%8D%E5%8C%B1 [不匱] <----- 클릭하여 확인하라

http://ctext.org/dictionary.pl?if=en&char=%E4%B8%8D%E8%BB%8C [不軌] <----- 클릭하여 확인하라

 

한국고전종합DB에서 "不匱" 검색 결과 <----- 또한 클릭하여 확인하라

한국고전종합DB에서 "不軌" 검색 결과 <----- 또한 클릭하여 확인하라 

 

(*2) 게시자 주: 당시에 모반자(謀反者)들에게 적용하였던 죄목인 "()" 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아! 황사영 알렉시오]을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pds.catholic.or.kr/pds/bbs_view.asp?num=1&id=10922&menu=4831 <----- 필독 권고

 

또한 다음을 클릭하여 구글 검색된 결과들을 읽도록 하라:

"불" "이벽" "不" <----- 필독 권고

 

(*3) 게시자 주: 다음의 논문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심상태몬시뇰_이벽의_죽음과_순교문제_재조명.pdf

http://ch.catholic.or.kr/pundang/4/cb/변기영몬시놀_하느님의_종_요한세자_광암_ 이벽_성조의_최후.pdf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enealogy_of_Yi_Byeok.htm [천진암 홈페이지 제공의 "이벽 성조께서는 32세의 짧은 일생을 布衣道人으로 정결하게 살다가 순교하셨다!<족보,이장 사진>" 제목의 논문, 저자: 변기영 몬시뇰]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8월 10일]

그리고 또한, 다음의 주소에 있는, 1979년 6월 21일자 이벽 성조의 음독사망 검시결과에 대한 재확인서(발행일: 2005년 5월 23일, 발행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를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이벽성조_음독사망확인서_1979_06_21.htm

[이상, 2016년 8월 10일자 내용 추가 끝]

-----

 

5.  

끝으로, 본 글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제시된 방법으로 도출된 위의 제4-1항에 있는 우리말 번역문이,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자신의 저술인 "성교요지"의 해당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셨던 교리 내용과 될 수 있는 한 많이 일치하기를 바라면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번 글에서 적용한 바를 표현하고 있는 다음의 문구 한 개와 함께, 이번 글을 끝내고자 합니다: 

 

**********

"가톨릭 교회의 문헌들의 지역 언어로의 번역에 있어서의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은 
특정 시기, 지역, 그리고 언어에 종속되지 않는
폭 넓고 또한 깊이 있는 교리 지식이다."

 

-----
(*) 게시자 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회복된 "[판단 및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_rectitude.htm
  

-----

**********

 

이벽 성조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25시간. (여기에는, 2015년 8월 초부터 석 달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던, 핵심 문헌들의 조사, 확보된 자료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유관 자료들의 손쉬운 추출 및 활용을 위한 여러 단계들을 거친 기초 작업 등은 당연히 제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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