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부모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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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욱 [stephenleecw] 쪽지 캡슐

2001-05-28 ㅣ No.1680

부모님께

 

이 편지는 누가 시켜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불효를 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어버이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이쪽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저를 언제나 환희 반겨주시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셨기에 이런 나를 만들어 갑니다.

앞으로 저를 늘 바라보시던 시각에서 지켜봐 주세요.

언젠가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부족했던 모든 것을 내 생각 속에서 지워질 수 있을 정도로 변해 보이겠습니다.

대단히 짧은 글 속에서 언제나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주실줄 알고 이만 줄이려고 합니다.

오래오래 사십시요.

그리고 그 어느 누구보다도 두 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제 뜻만 알아 주신다면 답장은 안 쓰셔도 됩니다.

두 분의 노고에 제가 이 정도로 컸습니다.

감사합니다.

 

5월 8일

청주 양업고등학교에서 대환 올림

 

 

참고 ; 이대환 가브리엘은 일원 초등학교, 중동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카톨릭 스카우트와 성당에서 복사까지 하던 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가 좋아 운동을 시작하면서 꼬이기 시작, 운동을 중간에 그만 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땐 운동도 공부도 아무것도 잘할 수 없는 소위 문제 학생으로 변해 갔습니다. 중학교를 세 학교를 전학하며 겨우 졸업하고 고등학교 1년을 자퇴한 뒤, 더 많은 방황의 생활을 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철가방도 돌리고 가출도 심심치 않게 하고 담배 피우고 비슷한 열병을 앓는 아이들과 노숙하고..... 정말 이 아이가 다치지 말고 사건만 저지르지 않고 이 열병의 시간을 보내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총으로 청주의 양업고등학교에 입학, 그곳 교장 신부님, 교감 수녀님, 담임 수녀님, 미술 선생님의 따뜻한, 정말 따듯한 사랑으로 아이가 고3이 됐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가 방황할 때는 웬수라고 생각했지만 아이 때문에 주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매일 미사 드리면서 아! 아이가 은총이었구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아이는 "아직 공사중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용서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사랑해주는 방법만이 아이를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대환이와 그동안 많은 편지 대화가 오갔습니다만 최근에 보낸 글 하나를 올리겠습니다.

 

 

아름다운 청년 이대환군에게

 

지난번 청주시 보컬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 도 경연대회 공연을 응원 못가서 미안하다.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 했으리라 믿으며 너와 팀 동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혹시 1등을 못했어도 실망하지 마라, 리드싱어!

 

이대환군

요즘 미술 스케치에 젊음을 쏟고 있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

자네는 혈액형이 AB형이라서 그러는지 참 재주가 많은 친구야.

운동, 음악, 미술.... 재주가 너무 많아서 탈이지, 안 그렇나?

그동안 아버지, 어머니가 자네의 재능을 잘 살려주지 못한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주게나.

 

이대환군

지난번 스승의 날, 아버지가 1일교사 때 했던 얘기 생각나나?

꿈을 가지라는 말.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떤 꿈을 갖고 그 꿈에 도전하느냐가 가치있는 삶이라는 뜻이지.

꼭 대학을 가야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지금 열심히 사는 네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다.

열심히 스케치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훌륭한 것이다.

홍대 미대를 가겠다고?

그래, 도전해보자!

목표가 있다는게 참 좋다.

홍대 미대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한 꿈이지.

그 꿈을 향해 젊음을 던져보는거야.

그리고 네 삶을 아름다운 스케치로 그려 나가거라.

아버지는 너를 믿고 힘 닿는데까지 도와주마.

파이팅!

 

5월 18일

이대환을 믿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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