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경축이동 마태 10,17-22; ’1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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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18-07-01 ㅣ No.3578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경축이동 마태 10,17-22; ’18/07/01

수색 예수성심 성당 박재성 시몬 부제님 강론

 

 

 

오늘은 7 5일인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미사를 옮겨서 지냅니다. 사실 이 축일(7/5) 1925년에 있었던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식 이 있던 날입니다. 교회는 이 날을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서 실행하면서 사는 이 땅에 사는 사제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할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 이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 5 6일 한국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면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한국의 대표 성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성인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축일이 정해졌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김대건 신부님만이 아니라, 사제들 넓게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저는 요즘 독신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려 봅니다. 아무래도 이제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와 닿고 있어서 그런가 싶습니다. 예전에 독신이다 하면, 혼자 사는 것. 결혼하지 않는 것만 떠올렸습니다. 그렇기에 혼자 밥 먹고, 청소하고, 강론 준비도 하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남들보다 좀 더 긴 생활 방식으로 사는 것을 독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꼭 독신이어야 하나? 나는 애기도 좋아하는데 라고 생각하며 교황님께서 독신을 풀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의 교황님도 그건 안 된다고 말씀하시네요.

 

독신은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서 실행하면서 살아가는 사제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혼자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혼자 사는 삶, 바로 이것이 독신입니다. 그렇기에 혼자 산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신념을 가지고 산다는 것, 그 신념을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사제 독신의 삶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신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예언자들을 보면서 느낍니다. 예언자들은 대부분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여라.’하고 부르짖다가 왕에 의해, 왕과 결탁한 집권층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한 예언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오늘의 제 1독서에서 나오는 즈카르야 사제입니다. 즈카르야 사제가 살아갈 당시의 왕과 대신들은 하느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여러 예언자가 말하였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에 즈카르야 사제가 나섭니다. 왕과 대신들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2역대 24,20) 이 정도 강하게 말했으면 정신을 차릴 줄 알았으나, 일은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세상에서 권력자의 앞을 막는 방해물을 치워버리듯, 권력의 기득권층은 음모를 꾸며서 즈카르야를 죽여 버립니다. 

 

신념있는 삶은 그 모습만으로도 타인을 힘들게 할 수도, 힘을 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은 그 자체로 거슬리는 말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에 따라서그럼 지금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거야라고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듣는 것에 따라서 감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내 삶의 문제가 뭐지라며 돌아볼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예언자의 바람은 후자였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힘 있는 자들이 다시 고민해 보고, 하느님께로 백성을 이끌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는 예언자의 좋은 마음이 전달이 될 수도 있고, 독서에서처럼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달되지 않을까봐 걱정에만 있는 것보다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이 사제의 삶이 아닐까요.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그 말 한마디를 잘 전달하기 위한 것이 사제 독신의 삶입니다.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말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 고민 합니다. 타인이 거부할 수도 있는 말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욕먹을지 모를 선택을 계속 해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하느님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누구나 믿음을 어떻게 실천하고 살지 늘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 고민의 끝에 순교가 있습니다. 1925년에 있었던 79위 순교자들의 시복식의 그 날을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며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신 의미가 바로 순교, 끝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라는 것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는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제가 하느님을 증거하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의 복음은 말해 줍니다.

 

사제들의 수호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기억하는 오늘 사제들을 비롯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강한 신념을 두고, 세상에 나가기를 바랍니다. 세상과의 만남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마지막에 다가오는 환난과 어려움들을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사제들과 세상에서 묵묵히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복음을 실천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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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경축이동 꽃꽂이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70494&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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