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내 젊은 엄마는 어디에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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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자 [stellara] 쪽지 캡슐

2004-07-05 ㅣ No.4475

 

 

저에겐 팔십을 넘기신 시어머니, 친정어머니가 계십니다.

가끔 시어머니의 전속 목욕관리사(?)가 되어 목욕을 모시고 다니는데 지난 주일날엔 친정어머니의 목욕관리사가 되었습니다. 비오는 궂은날에 강건너에 있는 친정집에 어머니 뵈러 갔습니다. 노환으로 누워만 계시는 그분은 완전한 백발에 굽어버린 허리를 간신히 버티고 선채로 빗속에 들어선 저희를 맞아 주셨습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도 자주 못 뵌채 그렇게 살고 있네요.

 

살이 빠져 버려 허수아비같은 모습의 어머니를 뵌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속울음을 삼킵니다.

저 어릴때 엄마 따라 목욕가면 얼마나 문질러대시는지  윤이 나다못해 빨갛게 살갗이 벗겨져 버리곤 했던 그 힘이 쎄시던 울 엄마는 어디로 가고 자신도 씻을 힘이 없어 온 몸을 놓아버린 허깨비 같은 모습으로 계시는지 가슴이 아픕니다. 

 

어린아이같은 단순한 두 어머니를 보며, 얼마전 강론때 하신 신부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는 경제 활동을 하는 젊은이들과 어린아이들, 늙고 병든 노인들, 환자들등 여러 사람이 모여 살아갑니다. 돈을 벌거나 활동을 하여 생산적인 일을 하는쪽에서 보면 그분들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않고 부양해야하는 힘없는 사람들로 생각되어 귀찮은 생각을 하겠지만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감은 그분들도 우리의 구성원이라고 하셨습니다. 곧 우리 신앙인들이 함께 돌보아야 할 우리 공동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젊은때 경제 활동을 하면서 세상의 주역은 바로 자신인 듯 자신만만하게 살지요. 하지만 그 세월이 잠시 흘러 힘빠지고 병든 노후를 맞이 하게 됩니다. 제 자신부터 '난 저리 안살거야. 구질 구질하게 안하리라'고 살아 왔더랬습니다. 하지만 두 어른을 보면서,  인생은 잠시 잠깐인듯 느낍니다. 제가 결혼해 왔을때 우리 시어머니 모습은 지금의 제 모습보다  몇 살 더 많으셨습니다.

호랑이 같으신 호령에 기운도 펄펄 날리셔서 새댁인 저보다 더 무거운것도 너끈하게 드시고 바람결을 흩날리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시더니 지금은 종이 호랑이되어 며느리가 씻어주는대로 차려주는대로 어린아이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리셨습니다. 이제 그 만큼의 세월이 흐른뒤 우리 남편과 저도 그분들의 모습이 되어 힘없는 노년을 살겠지요.  그때 늙어버린 우리 베드로 아저씨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버린 저의 등을 긁고 있을까요?

 

딸네미한테 맡겨둔 당신의 육신을 북북밀어 비누칠하여 말갛게 씻어드리고 미장원에서 갈색으로 당신머리 바꿔드리고 10년은 더 젊어진 모습을 흘끔거리는 어머니를 보고 '나는 왜 이렇게 무심한 딸이었는가'하는 반성의 마음을 갖게됩니다. 무얼 그리 바쁘다고.....

영세는 받았지만 주모경과 성모송도 제대로 못외우시는 당신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예수님, 성모마리아님'만 찾으십니다. 그분의 마음속에 든든한 '백그라운드'이신 분들....

 

앞으로 얼마의 세월일지 모르지만 두분의 전속 목욕사로 열심히 살렵니다.

 

7월의 어느날 스텔라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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