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사랑의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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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peace-maker] 쪽지 캡슐

2008-09-15 ㅣ No.8463


 





    9월이다. 순교자성월이 오면 우리는 순교의 의미를 새겨 보게 된다. 순교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본받고 증거하며 교회의 구원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하느님의 백성 그 공동체이다. 이미 고전적인 의미의 '피의 순교'가 드물어진 이 시대에 순교는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듯 하느님 백성 특히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동일시한 소외된 이와 함께 하며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삶 속에서 증거 하는 것이리라.


    우리 사회가 참으로 쫒아야할 올바른 방향은 어디인가. 특히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할 바는 무엇인가. 순교의 시대적 비젼의 지평은 바로 여기에서 포착된다. 교회는 솔선하여 집단 이기주의와 기득권의 외투를 벗어 던지고서 이 시대의 아픔을 껴안으 며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온전히 보장되고 삶의 질이 향유될 수 있는 인간다운 사회를 창출하는 데 열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이 사회공동체 내에서 인간 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밑바닥에서부터의 사회복지'를 통해 복음적 사회공동체가 이뤄지도록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실천적으로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 땅의 구석 구석엔 얼마 만한 아픔들이 비인간적이고 반생명적인 구조적 상황 속에서 그냥 방치되고 또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기에 이 시대의 징표는 분명 '인간과 생명'이어야 하고 그것은 그 어떤 그럴싸한 명목으로도 포기되어선 안된다.


    물질주의에 짓눌려 있는 이 시대에 있어 순교는 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수호하는 것 특히 그리스도의 영성의 온전한 체현을 통한 물질주의의 극복일 것이다. 교회 전반과 그리스도인 개개인에 대한 그리스도 영성의 내면화는 그리하여 더욱 절실하기만 하다. 그리스도 영성은 한마디로 '참 삶을 위한 죽음'이다. 말 그대로 죽음으로서 진리를 증거 하는 순교 역시 그러 하니 과연 그렇게 순교성인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빠스카의 신비요 부활의 현실성이다! 또한 십자가의 죽음을 일상의 삶 속에서 거듭함으로써 생애에 걸 쳐 하느님의 뜻을 사랑 안에서 이루는 어쩌면 '피의 순교'보다 더 험난한 '사랑의 순교'야말 로 이 시대에 요구되는 순교이리라. 마리아야말로 그 모범이시다. 마리아는 구원만 선참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로서 드러날 그 성마저도 선참하시고 또 그렇게 한 생애를 사셨다. 우리는 마리아의 그 마음을 지녀야 한다. 우리 모두가 티없는 마음을 지니고 서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피앗'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간직하는 작은 마리아가 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가장 보잘 것 없는 이가 가장 존중을 받는 '마니피캇적인 공동 체'로 될 것이다. 그것은 자비가 강물같이 넘쳐흐르며 모성적 사랑으로 모두를 얼싸안으며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의 사회이다.


    그 때 우리도 예언자 하바꾹처럼 환희에 가득차 외칠 수 있으리라. "비록 무화과는 아 니 열리고, 포도는 달리지 않고, 올리브 농사는 망하고, 밭곡식은 나지 않아도, 비록 우리에 있던 양떼는 간 데 없고, 목장에는 소떼가 보이지 않아도, 나는 야훼 안에서 환성을 올리렵 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렵니다"(하바꾹 3,17-
    18). 기실 탐 욕으로 찌든 이 시대에 있어 순교는 이처럼 소유에의 집착을 극복하고서 오직 존재 그 자체에 다 가치를 두는 무욕의 영성에 의한 해맑은 기쁨과 여유로움 그로 인한 자유와 해방이 아닐까! 뜻깊은 순교자성월을 맞아 이 시대의 탁류 앞에서 복음의 생명적 가치관을 삶을 통해 증거 하면서 구원을 위한 순교의 각오를 새롭게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천주교부산교구 '가톨릭부산' '순교자의 얼' 제1244호 95.9.24.
    하느님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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