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진실되게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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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petrojin] 쪽지 캡슐

2004-05-04 ㅣ No.3233

엊그제 늦게까지 술 한잔 기울이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소득이 있었던 것은 사목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대개는 의무적으로 못하는 술을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변잡기적인 얘기들만 오가고, 겉치레 같은 너털웃음만 오가는 자리, 삶의 진지함이나 신앙적인 얘기보다는 가벼운 얘기들이 오가는 오늘 이 사회 안에서, 이 교회 안에서 진정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설자리는 없단 말인가?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방에 앉아 비 오는 밖을 바라보았다. 비 오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온다. 하지만 내 메마른 감성에 닿아 떨어지는 그 빗방울들이 갈라진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 같아 오랜만에 감사를 드려본다. 주님, 감사합니다.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마음으로부터 올라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여전히 채울 수 없는 마음의 커다란 간격이 가슴을 공허하게 만든다. 나는 과연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는 걸까? 사람 대 사람, 가슴 대 가슴으로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어렵지. 암, 어렵고 말고...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있는 사제 생활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 같지 않다. 늘 내 자신에 대한 칼날을 너무 세우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더 잘 살지 못함에 늘 아쉬움이 남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러면서도 난 내가 사제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른다고 되내이게 된다.

 

솔직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제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랑을 했는가? '누가 내 이웃인가'를 물었던 율법학자처럼 설교는 그럴 듯 해도 사랑에는 빈사상태가 아닌가...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고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인가'를 대답했던 예수님처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하지 않겠는가...  

 

사랑이 무엇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치열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자랑스럽다. 그들이야말로 오늘 나에게 가르침을 던져주는 또 하나의 스승 예수요, 그들의 삶이 나에게는 산 위에서 울려퍼지는 또 하나의 산상수훈이다.

 

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기는...

내 마음 안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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