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겨울나무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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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monaca] 쪽지 캡슐

2000-05-20 ㅣ No.2542

 

하느님 당신께선...

 

당신께서 주시는 빛 받아들일

 

온전한 잎 하나 남지 않은 제게

 

끊임없이 빛을 주시고

 

제 메마르고 초라한 구석 구석을 비추십니다.

 

그래서 더더욱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빛으로... 제 거친 살가죽 하나 하나는

 

더더욱 선명히 드러나기에...

 

그저 이 황량한 겨울이 어둠 뿐이라면..

 

전 제 흉함에 눈돌리지 않은채

 

갈변하고 오그라든 잎 아직 떨구지 않음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텐데..

 

그래서인가 봅니다.

 

머리로... 머리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면서

 

끊임없이 몸은 응달로 숨어버리고자 하는건...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빛으로

 

제 메마른 가지가 당신께로 뻗게 하심을 압니다.

 

그 자람과 뻗음은 너무나 서툴고 무뎌서

 

저 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지만..

 

당신께선 언제까지나 빛으로 기다리시고 이끄시고

 

보듬어주심을 압니다.

 

저는 초라하고 텅 비고 거친 제 가지에서

 

끝내 오만함으로 놓지 못하던

 

그 갈변하고 오그라든 잎을 이제 그만 놓아주고

 

당신의 빛 안에서

 

당신께서 비추시는

 

보이는 그대로의 절 사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 부끄런 가지 하나 하나

 

온전히 당신께 향할 수 있을 때

 

그 땐 비로소 제 몸 어느 구석에서 움트던

 

작지만 곱고 보드라운

 

그 희망과 사랑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땐

 

당신께서 더더욱 사랑하시기에 주실

 

작열하는 고통도 견뎌낼 준비가 되었을 것입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미워하지 마십시오.

 

그 가지 하나 하나 가리움 없이 메마름으로 드러나도

 

그 껍데기가 더 두꺼웁고 거칠고 굳어져도

 

우리는...

 

과거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영원히 하느님께서 비추시는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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