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동생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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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영 [dhdsu1965] 쪽지 캡슐

2002-03-31 ㅣ No.2636

 

  어제는 내 바로밑의 여동생이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강남에 있는 프리마호텔에서

많은이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는 동생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기쁨보다는

어딘가 허전한마음을 금할수 없이 외로웠습니다.

 

  올해로 37이되는 나의 여동생은 흔히들 말하는 노처녀이지만 생각하는 사고와

가치관은 나이값을 톡톡히 해냈던 그런 동생이었죠. 울지않으려고 무진애를 쓰는

동생은 양가부모님께 인사를 올리라는 사회자의 멘트에 그만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솥아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둘..이렇게 저희형제들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흐르는 눈물을 소리없이

닦아내며 저만큼 밀려오는 부모님에 대한 아려한 그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죠.

나보다 낳은동생..나이먹어 하는 결혼식..등 몇가지 안되는 이유로 동생의 결혼식에

별로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제 자신이 언니로서 동생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돌아가신

부모님께도 한없는 죄송함을 느꼈답니다.

 

  이렇게 사람은 항상 후회하며 살아가는 동물인가 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때는

그냥 그 자리에서 항상 저희들의 버팀목으로 울타리가 되어주실줄 알았는데 막상

계시지 않으니 울타리없는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갈피를 못잡고 살아가기를 올해로

6년째에 접어드는 것이 갑작스런 사고로 한꺼번에 두 분을 잃어야했던 저는 그뒤로

사람들에게 마음의문을 쉽게 열지 못하게 되었고 부모의 죽음으로 말로만 듣던

"이별"이란 단어의 참 의미와 슬픔 그리고 그리움을 알게 되었답니다.

 

  제가 어렸을때 친정부모님이 몸이 편찮아서 하시는 말씀중에 "내가 죽고싶어도

이 어린것들이 눈에 밟혀서 죽지를 못한다니까, 내가 건강해야지 그래야 이 어린것들을

남에손에 키우지 않게 할거아니야!" 하셨던 말씀을 그때는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싫어서..풍부한 남의 부모들과 비교를 해가며 상대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부모님을 원망하기까지 했던 철없던 그런 계집아이였으니...

 

  지금 제가 나이를 먹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그때 이해하지못했던 엄마의 말씀을

이제는 부모로서의 책임감으로 인정하며 나 또한 어리고 부족한 내 아이때문에라도

건강하고 그 아이를 지켜야하는 책임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이 제게

하셨던 그런 사랑으로 그런 애닳음으로 그런 아픔으로....

 

  쉽게 열어지지 않는 나의 닫혀진 마음을 위해서라도 나보다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려 노력하렵니다. 지금처럼 한 없이 주셨던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함을 후회하며

그와같은 후회를 번복하지 않기위해서라도...늦게 짝을 찾아 나르려는 나의 여동생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동생을 시집보내는 착잡한 언니의 마음을 이곳에 몇자 적어봅니다.

 

  "알에서 깨어나야만 날수 있다는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한 가정을 이루기위해서 모든

힘든 작업을 마치고 이제 "가족"이라는 날개를 달고 힘차게 나르려는 나의 여동생에게

힘찬 날개짓을 할수있도록 힘차게 기도 한방 쏠랍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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