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화

상급 평의회[Con.] 2011년 9월 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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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나뚜스 [senatushp] 쪽지 캡슐

2011-12-12 ㅣ No.152

Allocutio - September, 2011

비드 맥그리거 신부-꼰칠리움 영적지도신부

 레지오 마리애의 생일 

2011년 9월 7일은 레지오 마리애가 90번째 생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프랭크 더프는 후에 ‘자비로운 성모회(The Association of Our Lady of Mercy)’로 불렸던 레지오 마리애의 첫 번째 회합을 회상하는 일에는 전혀 지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 첫 번째 저녁의 일화는 레지오 교본의 1장에 실려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 세상의 어느 곳에서 열리든, 또 어떤 언어로 진행되든, 미래의 모든 회합의 정신과 형식을 맨 앞에 놓고자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레지오 단원이라도 이 세상의 어디에서건 레지오 회합에 참석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만 합니다. 우리 창설자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회합이 그래도 훌륭한 점은 오늘날의 우리 레지오 마리애와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그때에는 없을 수밖에 없는 몇 가지가 있었는데-레지오 마리애라는 이름도 없었고, 규정도 없었으며 우리만의 순수한 레지오 기도문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중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운영체제, 회합 환경, 경건한 사고방식, 영성과 분위기에 관해서 레지오는 첫 번째 회합부터 오늘날과 같이 완전히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교본은 레지오 마리애가 사람들의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한 결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거의 확정된 분위기처럼 저절로 생겨났고 가장 최소한의 토의만 있었습니다. 나중에 한 사람이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정리하였고, 레지오가 크게 발전한 것에 비추어보면, 이는 하느님의 섭리로 구체적이고 가장 세세하게 준비된 역사임이 명백해졌습니다. 게다가, 이 세밀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느 것보다도 더 한량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 화려한 색채의 그림처럼 레지오를 너무 과장하여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무한한 섬세함으로 추진하시기 때문입니다. 최신의 전자현미경으로 벌레들의 눈이나 다른 부위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살펴보십시오. 이런 경이로움이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밖에 살 수 없고 우리에게는 그 삶의 목적도 모호한 벌레들에게도 적용된다면, 교회에서 이미 주요 단체로 판명된 레지오 마리애에게 적용되는 똑같은 종류의 준비와 완벽함을 왜 부정해야 합니까?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그분을 뵙는 것은 경배 행위입니다. 또한 그분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당신께서 하신 일에 대해 우리가 탄복함에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레지오 회합의 정신과 체계는 신성한 섭리의 선물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그 정신과 체계가 그런 이유로 신성불가침이며 순전히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요구하는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회합 이후 발전된 사항은 없는 것일까요? 아니오, 물론 성장하고 발전이 있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설명합니다. “레지오는 완전히 성숙된 상태로 태어났다고 이야기되곤 합니다만 이는 절대로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초기에는 단체의 명칭도 없었고, 벡실리움, 뗏세라, 레지오 선서문, 수호성인들, 까떼나, 레지오의 기도문(마침기도)도 나중에 생겼습니다. 레지오 자체의 주요 교리인 신비체와 성령같은 것도 초기에 있기는 했으나 불완전한 상태였습니다-마치 아기가 신체기관을 다 갖고는 있지만 그것에 대한 이해는 없듯이. 그러나 그 아기의 모습도 한 가지 면에서는 완전히 효율적입니다. 아기는 엄마에게 집중한다는 것으로 레지오의 유아기에도 마찬가지로 성모님께 집중했던 것입니다.

 레지오의 첫 회합에서의 뜻깊은 발전을 하나의 예로 듭시다. 레지오는 자신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발전시켰지만 변경하지는 않았습니다. 레지오가 맨 처음 취한 단체행동은 무릎을 꿇고 성령께 기도를 바치는 일이었습니다. 다른 영성 운동, 특히 사도직 운동보다 그 얼마나 근사한 시작입니까! 이 원칙을 잊어버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위험합니다. 레지오는 몽포르 성인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고 첫 레지오 단원들은 하느님의 계획에서 성모님과 성모님의 지위를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든 것에 앞서 성령께 대한 호도로 회합을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우선시하는 것은 첫 회합 때부터였고 레지오가 성장하며 더 분명해졌습니다. 벡실리움이 보여주는 의미나 뗏세라의 그림, 무엇보다도 성모님 안에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님과 함께 성령께 완전한 봉헌을 하는 레지오 선서문을 통해 그 발전됨을 봅니다. 레지오 선서문으로 성령께 청하는 참된 신심과 레지오의 근본인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은 서로 배타적이 아닙니다. 성령과 성모님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 두 분 사이에는 완벽한 조화가 있을 뿐으로 성모님과 함께 하신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모님과 함께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레지오 영성의 중심에 계시게 되었습니다.

 레지오의 탄생 때부터 있었던 이 중추적인 원칙은 이제 더욱더 완벽하게 갖춰지고 발전되었습니다. 프랭크 더프가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심이 성령께 대해 비교할 바 없는 최선의 신심이라고 말할 때 그의 생각에는 이론적인 논리가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실 것이다.”(루카 1,35 참조)라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언급을 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성령께 깊이 전념하였으므로 마리아께 대한 일치와 신심은 성령께 대한 훌륭하고 참된 신심을 의미할 것입니다. 마리아의 군대는 진정 성령의 군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레지오는 성모님의 군대, 성령의 군대, 둘 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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