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성당 게시판

태백에서 길을 잃다...

인쇄

김보경 [bkkim] 쪽지 캡슐

2000-05-12 ㅣ No.312

찬미예수님, 무박이일의 산상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주임신부님을 비롯한 본당 어르신들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비 속을 뚫고 출발한 태백산은 잠도 아깝지 않고 몸의 불편함도 감수하기에 충분했다. 10일 밤 열한시에 인솔 신부님의 '기도 한판 때리자'를 시작으로 출발한 길이 예상보다 도착이 늦어져서 엄밀하게 말하자면 밤 산행은 아니었고 새벽산행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새벽 네시 오십분에 출발해서 네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고 천제단의 안개와 비가 함께 흩뿌려지는 강한 바람 때분에 산상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태백산은 너무나 아름다왔다. 가파른 길을 오르기도 하고 흙길과 돌길을 번갈아 오르면서 주위의 나무와 풀을 보며 감탄하는 것은 그런 깊은 자연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맑다 못해서 코끝을 싸하게 만드는 공기는 벌써 그립다. 앞서 출발한 다른 본당의 팀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뒤쳐진 우리 팀들이 한구비 떨어져서 올라오는 동안 혼자 떨어진 잠깐의 시간은 나에게는 아주 좋은 묵상의 시간이었다. 목청이 좋다면 아름다운 성가 한곡조 뽑고 싶었지만 능력의 한계를 느끼며 기도로 대신했다. 이 풀포기를 어떻게 만드셨을까, 이 돌은 왜 여기 두셨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시간이 가는 것도 몰랐다. 그런 생각에 잠겨 바라본 나무와 풀과 바위와 바람까지도 그 느낌은 여느 때와 사뭇 달랐다. 그렇게 바람 속에 서서 가만히 안개의 움직임을 느끼는 시간을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산자락에 펼쳐진 나무들의 음영에 감탄하고 맑은 물줄기에 황홀해하고 손톱만한 작은 들꽃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가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가을에는 어떤 황홀경을 보여줄런지 벌써 기대가 된다. 서울로 되돌아오는 길에 전세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믿지 못할 사정으로 돌아오는 길이 늦어지기는 했지만 아현동 성당에서 판견미사를 드리고 돌아와 온몸을 불사르며 가진 뒷풀이까지 완벽하고 즐거운 피정이었다. 나의 부족한 표현에라도 호기심을 느끼고, 아님 뒷풀이에 목적을 두고라도 이런 좋은 시간에 동참하는 청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미사중에 부르는 성가에 참석자들 끼리도 화음을 넣는 것이 가능한 어느 본당과 사십명에 가까운 인원을 동원하여 우리를 졸지에 더부살이 처지로 전락시킨 가좌동성당이 너무 부러웠다. 화이팅!!! 아멘!!!!!

3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