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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15: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수난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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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3-23 ㅣ No.99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15)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수난과 죽음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랑의 십자가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호산나!"하고 환호하던 군중이 돌변해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칩니다. "다 이루어졌다." 십자가 위 주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주님의 길을 따르며 그 뜻을 새겨 봅니다.


◇ 살펴봅시다

㉠ 예수님의 재판과 그 책임(595~598항) :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얼마 후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붙잡히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데려갔고, 예수님은 다시 최고의회로 끌려 가셨다가 마지막으로 빌라도 총독 앞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는 외침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병사들에게 내줍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님 재판에 대한 역사적인 복합성을 고려할 때, 그 주역들(배반자 유다, 최고의회, 빌라도)의 개인적 죄가 어떠하든…그 재판의 책임을 예루살렘의 유다인 전체에게 지울 수는 없다"(597항)는 사실입니다. 또 군중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마태 27, 25) 하고 외쳤다고 해서, 예수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다른 모든 유다인에게까지 확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당시에 살고 있던 모든 유다인에게 그리스도 수난의 책임을 차별 없이 지우거나 오늘날의 유다인들에게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유다인들을 하느님께 버림받고 저주받은 백성인 것처럼 표현해서는 안 된다"(「비그리스도교 선언」 4항).

그러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요? 교회는,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들 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렇게 밝힙니다. "교회는…너무나 자주 유다인들에게만 지웠던, 예수님의 처형에 대한 가장 중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린다"(598항).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말을 빌리면 "바로 당신이 악습과 죄를 즐김으로써 마귀들과 함께 주님을 못박았으며, 지금도 못박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599~605항) :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적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넘겨준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미리 써 놓으신 각본을 수동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예정하신 영원한 계획은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곧 자유 의지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과연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는 이 도성에서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과 작당하여, 주님께서 기름부어 그리스도로 삼으신 주님의 거룩한 종 예수님을 거슬렀습니다. 이리하여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해 두신 일들을 모두 이루었습니다"(600항, 사도행전 4,27-28).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의 무지에서 나온, 그러나 자유로이 선택한 행동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성경에 예고된 대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보편적인 구속, 곧 사람들을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는 속량의 신비"(601항)로서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 때문에, 곧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그 죄의 결과인 죽음에 넘기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이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도 앞서 존재하는 관대한 사랑의 계획"(604항)이라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로마 5,8).

이 사랑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고, 전에도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605항).


◇ 생각해봅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606~618항) :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뜻, 곧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요한 8,36)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생애 전체가 하느님 아버지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계획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원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그 귀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대사제의 종을 칼로 쳐서 귀를 잘라버렸을 때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요한 18,11) 하고 말씀하셨고, 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다 이루었다"(요한 19,30)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을 보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라고 불렀고, 예수님께서도 최후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8.28) 하시며 자신의 죽음을 죄의 용서를 위한 구속적 죽음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구속을 완성하시는 '파스카의 희생 제사'이며, 동시에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 제사"(613항)입니다.

모든 제사를 완성하고 초월하는 유일한 이 희생 제사는 '선물과 봉헌'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닙니다. "성부께서 우리를 당신과 화해시키기 위해 당신 아들을 내어주신" 선물이고, 또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 자유로이 사랑으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불순종을 보상하기 위해 성부께 당신의 생명을 바치시는 봉헌"입니다.


◇ 알아둡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린이들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시며 당신의 도성에 들어오신 메시아 왕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를 통해 완성하시려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나타낸다"(570항). 교회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이 일을 기념하면서 일년 중 가장 장엄하고 거룩한 성주간을 시작합니다.



-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희생의 제사였다. 사진은 성 금요일에 십자가 형을 재현하고있는 필리핀 신자들. 【CNS】

[평화신문, 2013년 3월 2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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