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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되는 길 -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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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희 [seongangela] 쪽지 캡슐

2009-09-14 ㅣ No.1673

 
          아버지가 되는 길                                                              
                                                                                                        류해욱 신부


  빛의 신비를 추구한 화가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의 그림은

너무나 유명하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어서, 이 그림이 그려진

상본이나 작은 판넬을 갖고 계시지 않은 분이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그 그림을 꺼내어 바라보십시오.

  제목이‘돌아온 탕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예수님께서

비유에서 말씀하시고자 했던 주제나  렘브란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중심인물은 아버지이지요. 굳이 바꾸어 제목을 붙인다면,

‘아버지의 사랑’이 되겠지요. 이 그림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 대해

묵상하고 책을 쓴 사람도 여러 명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중에 가장 탁월한 분은 헨리 나우엔 신부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단지 이 그림을 보고 싶은 열망 때문에 러시아에 갈

기회가 왔을 때, 모든 것을 접고 여행를 떠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우엔 신부는 그 그림 앞에 8시간 동안을 앉아서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깊이 묵상할 수 있었고,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것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가 되는 세 가지 길  - 헨리 나우엔


저는 렘브란트의 아버지 그림을 보고 묵상하면서 자비하신

아버지가 되는 세 가지 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 용서, 그리고 관대함입니다.


  1) 슬픔  

우리 인간이 저지르는 엄청난 방탕과 욕망, 탐욕, 폭력,

분노, 원망 등을 생각하면서, 하느님이 지니신 마음의 눈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때, 저는 너무 슬픈 나머지 소리 내어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슬픔들이 기도가 됩니다.

이 세상에는 슬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세상의 죄를 보는 마음의 수련이며,

슬픔 그 자체가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2) 용서

영적인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두 번째 길은 용서입니다.

끊임없는 용서를 통해서 우리는 아버지와 같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를 행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형제가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루카17:3-4)

 하느님의 용서는 무조건적입니다. 그 자체로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 마음, 전적으로 자기를 추구하지 않는 그런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의 용서를

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3) 관대함

 아버지가 되는 세 번째 길은 관대함입니다.

아버지와 같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아버지가

너그러우신 것처럼 너그러워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의 표징이 다름 아닌 자기를

내어주는 것임을 매우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한 15:13).

자기를 내어주는 일은 자발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끊임없는 수련이 요구됩니다.

저는 이제 어렵고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사명,

즉 제 안에 있는 아이의 모습을 떨쳐버리고,

아버지가 되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들려줍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1 고린 13:11).


 저는 4년 전에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보기 위해

러시아의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에 갔을 때만 해도, 제가 그때 본

그대로 살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저는 경외심을 가지고 렘브란트가 있던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렘브란트는, 흐트러진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작은 아들에게서 허리를 구부린 노인 아버지에게로,

축복 받는 장소에서 축복하는 장소로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제 자신의 나이든 손을 바라보면서, 저는‘이 손이야말로

이제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내밀라고,

돌아온 모든 사람들의 어깨 위를 어루만져 주라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축복을 베풀라고

나에게 주셨구나.’라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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