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동성당

성령의 오심과 계명지킴 (요한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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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0-05-11 ㅣ No.273

[부활 제5주간 월요일](요한14,21-26)

 

성령의 오심과 계명지킴

(요한14:12~2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오늘은 성령의 오심과 그로 말미암게 되는 예수 사랑과 이웃사랑 그리고 계명지킴의 연관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본문 18절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이유가 나옵니다.

(요한14:18)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왜 성령을 보내시는 겁니까이제 주님이 승천를 하시게 되면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고아’ 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그들을 고아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신 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구성하고 있는 한자의 ()'  외롭다’ 혹은 홀로이다’ 라는 뜻입니다. ‘()'  어린이’ 라는 뜻을 가지지만 사람’ 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고아는 부모 없는 어린이를 가리키지만 넓게 보자면 홀로 사는 사람들 혹은 외로운 사람들을 다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아 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르파노스’ 는 부모를 잃은 자녀뿐 아니라 자녀를 잃은 부모에게도 쓰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헬라어에서의 고아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지칭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의지할 곳을 잃은 모든 이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자식에게 부모가 있다는 사실 혹은 부모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은 마치 풀밭에 내다놓은 염소가 줄에 매어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그 줄이 없으면 그 염소는 제 마음대로 다니다가 길을 잃고 맙니다그 줄이 너무 바짝 매어 있으면 행동반경이 너무 좁아 구속을 받습니다적당한 길이로 매어 있는 염소의 목줄은 염소의 자유’ 를 보장하는 동시에 안전’ 을 보장해 줍니다.  그렇듯 사랑의 줄로 서로 매어 있는 부모와 자식의 줄은 서로에게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주는 아주 든든한 안전 줄입니다.

이것은 스승과 제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제자들에게 있어서 스승은 든든한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 주는 존재입니다그런데 그 스승이 이제 곧 하늘로 떠나게 됩니다그 현실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마치 염소의 목에 걸려 있던 줄이 끊어지고 허허 벌판에 홀로 내버려진 것과 같을 것입니다주님은 그 부모와 자식과 스승의 자리에 하느님의 영 즉 성령을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이제 곧 고아와 같이 버려지게 될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답니다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조금 있으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할 것 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말하는 세상’ 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그들에게는 이제 얼마 후에 예수님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러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인식이 되고 인지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한14:19)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 부르십니다지킬 보(은혜 혜(스승 사()입니다그러니까 은혜로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도우시는 스승님이라는 뜻입니다그런데 그 보혜사는 또 다른 보혜사’ 입니다그러니까 먼저 오신 보혜사가 계셨던 것이지요그게 누구입니까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서 보혜사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께서 승천하시면 또 다른 보혜사 즉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영으로서의 보혜사가 내려오셔서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 안에 거하시며 그들을 도우실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입니다그 말은 예수님과 전혀 다른 분이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가지신 분이신데 오시는 모습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이라는 형용사가 붙은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예수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하시려했던 일을 똑같이 이루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이신 것입니다뭐 다른 것 하러 오신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26절로 가면 좀 더 분명해 집니다.

(요한:14:26) 26 보호자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보혜사(보호자)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제자들을 가르치셔서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함께 숙식을 같이 하며 하늘의 비밀과 구원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그런데 제자들이 통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당신이 직접 하느님 백성들의 눈과 귀를 여시고 예수께서 하신 일과 그 분의 가르침에 대해 밝히 알리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올바로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이렇게 성령은 우리를 진리이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성령은 결코 입에 거품을 물고 펄펄 뛰면서 신비한 환상이나 기적을 보여주러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닌 것입니다.

 

(요한16:7-8, 12-13) 7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8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성령은 예수가 그렇게 살다 가신 것처럼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오직 듣는 것만 말씀하시며 이 가시적 세상의 현상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장래일 즉 영원한 세상에 관한 일에 관해 알려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하시는데 진리가 뭡니까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마세요진리는 곧 예수입니다그 말은 이 세상의 참된 가치는 예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참 된 생명에 이르는 길도 예수밖에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예수 이외의 다른 것들을 의지하여 사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만이 진리이며 예수만이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 성령이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성령의 오심은 그렇게 예수의 지상사역의 재현인 것이며 예수의 지상사역에 비해 범위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더 크게 확장된 사역이고 하늘에서 이미 완성되었다는 의미에서의 더 큰 사역인 것입니다이어지는 14절을 보시면 더 확실하게 이해를 하실 수 있습니다.

(요한16:14)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3절에서 보혜사 성령이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만을 말씀하신다고 하셨는데 누구에게 무엇을 듣는다는 말씀입니까? ‘내 것’ 이라는 말을 잘 새겨서 보세요내 것이 누구 것입니까예수님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보혜사 성령 하느님은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깨우치신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성령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이 땅에서 재현하시고 이해시키시는 역할로 오시는 것입니다그러나 세상은 그 성령을 받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요한14:17)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그것이 무슨 뜻일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세상은 절대 성령을 받지 못한답니다왜냐하면 성령은 창세전에 하느님께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만 오시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분명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성령을 받을 수 없는 세상이 구별되어 존재한다는 말이지요이렇게 예수에 의해 하느님의 처소가 되도록 작정된 사람들 이외에는 절대로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금방 이런 질문이 드실 겁니다왜 세상은 성령을 받지도 못하고 이해도 할 수 없을까성령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이  하느님의 백성들을 진리로 이끌고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가르치시며 예수의 사역과 가르침의 진의를 올바로 이해시키기 위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사역은 모두 십자가로 결론이 나고 진리로 가는 길도 예수의 십자가로만 말미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쏟아놓은 문명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해야 하고 죄의 본질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며 심판의 무시무시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맛을 보아야 합니다즉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몸으로 체험하며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네들의 삶의 원리인 힘의 원리를 절대 포기하지 못합니다자기 자신의 손해와 상함을 감수하며 십자가의 원리로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성령은 세상에게 배척을 받지 절대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그래서 세상은 성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도는 하느님의 정지작업으로 그 삶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당신 백성들의 마음을 하느님의 처소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그래서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거처로 삼아 들어오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그리고는 우리를 예수와 십자가라는 절대 진리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렇게 우리를 한시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성숙과 완성을 도우십니다. 18절을 보시면 다시 오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에 쓰인 동사의 시제가 직설법 현재형입니다.

(요한14:18)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그것이 무슨 뜻일까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헬라어 동사 엘코마이’ 가 직설법 현재형입니다헬라어의 직설법 현재형은 계속적이며 반복적인 것을 묘사할 때 쓰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은 먼 미래에 있을 재림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상징적으로 예시되고 시작된 그러한 형태로 늘 오신다는 뜻입니다그 말은 성령이 왔다 갔다’ 를 반복한다는 뜻이 아닙니다우리 중에 함께 계셔서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육신적으로 보면 고아와 같이 내버려진 상태에 있지만 영적으로는 늘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게 되는 것입니다그 분이 ' ‘다시’ 오시기 때문입니다늘 다시 오신다는 말은 우리와 늘 함께 계신다는 말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그렇게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율법을 지키는 자들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만들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성령 강림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이해가 가지요.

그렇게 성령의 오심에 의해 계명을 지킨 자가 되고 예수를 사랑한 자가 된 성도들은 이 땅에서도 계명을 지키는 자로 예수를 사랑하는 자로 성숙이 되어져 가게 됩니다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니까요그렇다면 성령을 받아 이 세상에서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 자들이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표가 나게 되는 걸까요로마서로 가면 그렇게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표가 나게 되는지에 관해 잘 나와 있습니다.

(로마13:8~10)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살인해서는 안 된다도둑질해서는 안 된다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율법 즉 계명을 지키는 이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다른 말로 성령을 받은 이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 땅에서 표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여기에서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는 말은 율법의 지향점이 곧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규칙들과 법칙들 개별적 권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요 인생의 문제로 접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몇 가지 규칙과 법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계명들을 지킴으로써 결과 되는 삶의 질이 중요한 것입니다율법은 항상 전체성과 종합성(completeness) 그리고 인격적 요소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 즉 계명은 소극적인 도덕 주의자를 양산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인격의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게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어절의 진의 인 것입니다그러니까 사랑하는 자로의 성숙과 완성이 율법과 계명의 궁극적 지향점인 것입니다.

(갈라5:6) 6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는 모두 이 땅에서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들로 지어져 가야 한다는 얘기인데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그렇게 변해가고 있어요예수님은 분명 나를 사랑하는 자들은 계명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이웃을 사랑 한다’ 고 하셨는데 우리에게 정말 그러한 성숙이 눈에 띄게 일어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잘 안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역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로 그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야지요잘 보세요주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레위기 19 18절을 그대로 인용하신 것입니다.

(레위19:18)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나는 주님이다.  이건 하느님께서 직접 명령하신 율법입니다

주님이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도 한 번 읽어 볼까요?

(마태19:16~19) 16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선하신 분은 한 분뿐이시다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 18 그가 어떤 것들입니까?” 하고 또 묻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간음해서는 안 된다도둑질해서는 안 된다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9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레위기의 말씀을 인용하여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고 계십니다이렇게 영생에 이를 수 있는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이제 우리는 열심히 사랑해서 천국가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로마서 5장으로 가면 조금 의아한 내용이 나옵니다.

(로마5:20) 20 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많아지게 하였습니다그러나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의 범죄를 더욱 지적하고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그렇다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는 율법은 우리의 사랑 없음을 폭로하기 위한 몽학(蒙學)선생이었던 것이지 우리가 그 명령을 쫓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 것이지요그렇다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시고 우리의 범죄를 폭로하시는 하느님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율법을 이루실까요?

(로마8:3-4) 3 율법이 육으로 말미암아 나약해져 이룰 수 없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루셨습니다곧 당신의 친 아드님을 죄 많은 육의 모습을 지닌 속죄 제물로 보내시어 그 육 안에서 죄를 처단하셨습니다. 4 이는 육이 아니라 성령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율법이 요구하는 바가 채워지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그렇게 율법의 최종 완성이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고 그 율법을 예수가 다 지켜서 우리에게 전가를 시켜 주신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이웃을 사랑한 자가 된 것입니까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은 십자가 안에서 다 충족이 되어졌습니다그래서 그 구원에 우리가 보탤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에페2:8~9)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갈라6:14~15) 14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15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우리는 원형으로서의 그 사랑의 흉내는 낼 수 있습니다그것을 성경이 에로스 필레오 라는 단어로 표현을 합니다그게 인간이 본성적으로 겨우 내 놓을 수 있는 사랑의 종류입니다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랑은 아가파오’ 의 사랑입니다. 아가파오라는 단어는 고대 헬라어 문헌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단어입니다오직 성경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그 말은 그 아가파오의 사랑은 인간의 본성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사랑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성경 이외에 그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아가파오라는 단어가 성경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이며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도 그 아가파오’ 라는 단어를 서른 번이나 썼습니다아가파오는 인간 세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굳이 설명을 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바로 아가파오라는 단어에 함의 되어 있는 내용입니다진정으로 자신의 유익은 전혀 고려치 않고 자신의 상함과 손해를 감수하며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사랑 아가페’ 라 하는 것입니다하느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 사랑을 요구하십니다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 섬기는 척 하는 그런 사랑 말고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느님이 좋아서 하느님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아가페’ 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이 세상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그 사랑의 내용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장황하게 설명을 해 놓은 것입니다하느님이 요구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은 이 세상에 개념 정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설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고전13:4~7) 4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사랑은 친절합니다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게 아가파오의 사랑입니다이 사랑을 도대체 누가 할 수 있단 말입니까그런데 하느님은 바로 이 아가파오’ 의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단 말입니다. 그 사랑을 예수가 십자가에서 해 내신 것입니다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의 것으로 전가시켜 주셨단 말입니다우리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아니 그것을 믿게 해 주시기 위해 성령 하느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믿는 것이고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완성이 된 자들입니다.

(고후5:17) 17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옛것은 지나갔습니다보십시오새것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되었다’ 라고 번역이 된 단어 게노넨’ 이 직설법 완료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계명을 지킨 새 것이 된 것이고 예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물론 영적인 면에서요.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아가파오’ 의 사랑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손해와 상함을 감수하며 하느님과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지요거기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필리비서 2 5절에 나옵니다.

(필립2:5-8) 5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이게 아가파오’ 의 사랑입니다그런데 우리에게 그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그런데 고린도 전서 2장으로 가면 아주 기쁜 진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전2:16) 16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그 아가파오’ 의 마음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이게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christ)이라는 위대한 가르침인 것입니다우리 안에 예수가 영으로 거처를 삼으시고 우리를 계명 지킨 자 예수를 사랑한 자로 여겨주십니다그리고 그 일이 어떻게 완성이 된 것인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경험하게 하시고 가르치시고 이해를 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그러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깊이 이해하고 깨닫게 될 때 우리 안에서 동일한 예수의 사랑 아가파오’ 의 사랑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율법은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우리에게 왜 예수와 십자가가 필요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몽학 선생이 율법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도 그러한 아가파오’ 의 사랑을 쉽게 내 놓을 수가 없습니다사랑으로 귀결되는 율법에 의해 우리의 실체가 낱낱이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우리의 사정이 그러한데 하느님은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옷을 입히시고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당신의 백성들의 사랑 없음을 못 박아 죽여 버리시고 예수가 해 낸 아가파오’ 의 사랑을 그 죽은 자들에게 전가시켜 다시 살려 내셨습니다그리고는 우리에게 너희가 율법을 다 지킨 자들이고 나와 이웃을 목숨 바쳐 사랑한 자들이다’ 라고 선언을 해 버리셨습니다그게 구원입니다.

그 사실을 인생을 통하여 뼈저리게 배우고 경험한 사람들 속에서 자기부인이 일어나게 되고 그러한 자기부인을 통해 그 속에 새 생명으로 살고 계신 예수의 아가파오’ 의 사랑이 조금씩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이 항상 무언가를 요구할 때에는 복음의 진리를 먼저 설명한 후에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에페소서가 3장까지에서 교리를 설명하고 4장부터 행동강령을 이야기하지요로마서는 어때요? 11장까지 은혜의 복음을 설명한 후에 12장부터 그러므로’ 라는 접속사 뒤로 우리의 실천 강령을 기술합니다성경이 항상 그런 구조를 견지하는 것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런 삶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일4:10~13)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며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시키시고 그 사랑을 이해하는 만큼 성도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먼저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를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요일4:19)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은혜의 복음을 먼저 배우고 그 복음의 이해와 더불어 예수께서 행하셨다는 바로 그 사랑을 해 보는 것입니다내가 무언가 구원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신인 협동의 차원에서의 율법주의도 문제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무 율법주의도 큰 문제입니다.

 

요즘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들이 발달을 해서 리듬과 코드와 장르를 적어 넣으면 스스로 편곡을 해서 반주를 만들어 주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리듬 박자 모두 정확합니다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그런데 그렇게 해서 앨범을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왜 그렇지요예술에는 예술가의 혼이 빠지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그게 율법주의의 맹점입니다율법주의는 개별적인 법규를 지켜서 소극적 도덕주의자는 될 수 있어도 사랑이라는 혼이 담긴 삶을 성취할 수는 없습니다그렇다고 예술가가 음표나 박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연주를 해도 안 됩니다프리 재즈에도 악보가 있습니다아무렇게나 막 치는 것이 아닙니다사랑이라는 율법의 혼을 성취한 사람이 개별적 율법의 세목을 무시해도 안 된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렇게 원리에 대한 성실함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고 그 기계적인 기술에서 머물지 않고 그 속에서 지향되어지고 열매 맺혀야 하는 풍성한 결론도 중요한 것입니다따라서 우리는 율법주의에 묶여도 안 되지만 하느님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해 버려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성경이 요구하는 원리에 충실하려 노력하면서 하느님의 은혜의 복음을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이 함의하는 사랑의 핵심 내용 즉 사랑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로마13:8)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그래서 사랑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인데 그 사랑의 빚이라는 단어 옵헤일로’ 라는 단어가 로마서 1장에서 나왔던 단어입니다.

(로마1:11~15) 11 나는 여러분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여러분과 함께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여러분의 힘을 북돋아 주려는 것입니다. 12 다시 말하면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의 믿음과 나의 믿음을 통하여 다 함께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13 형제 여러분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비록 지금까지 좌절되기는 하였지만나는 여러분에게 가려고 여러 번 작정하였습니다다른 민족들에게서처럼 여러분에게서도 내가 어떤 성과를 거두려는 것이었습니다. 14 나는 그리스인들에게도 비 그리스인들 에게도지혜로운 이들에게도 어리석은 이들에게도 다 빚을 지고 있습니다. 15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오로가 자신을 가리켜 로마 교회를 포함한 모든 자들에게 빚을 진 자라고 소개를 합니다여기에서 빚지다’  가  옵헤일로 입니다복음에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사랑의 빚을 진 것과 복음에 빚을 진 것을 같은 단어 옵헤일로’ 를 써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사랑을 빚진 자로서(채무자반드시 사랑을 내 놓아야 하는 자들임과 동시에 복음에 빚을 진 자들로서 복음도 반드시 내 놓아야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이렇게 사랑에 빚을 진 것과 복음에 빚을 진 것은 같은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따라서 성도가 해야 할 아가파오’ 의 사랑과 복음’ 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그 말을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아가파오의 사랑은 항상 복음’  구원’ 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성도의 사랑은 항상 복음을 통한 상대방의 구원으로 귀결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그게 성도에게 요구되는 아가파오’ 라는 사랑의 정체인 것입니다.

 

사랑은 무조건 용납해 주고 무조건 용서해 주며 무조건 포용해 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사랑은 상대방이 조금 부담스러워 하거나 아니면 거북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강력하게 거부할 지라도 그에게 복음을 이해시키고 예수를 소개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느라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원해 졌습니까?

우리는 지금 그들을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어떻게 그러한 손해와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우리 안에서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우리의 유익과 편안함을 위해 식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들과 아무 잡음 없이 지내는 것이 좋은데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구원에 우리의 사랑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내 안에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이 있나요우리가 사랑하는 분들이 꼭 예수를 믿고 우리와 함께 영생을 살았으면 좋겠지요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열렬한 아가파오의 사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들은 지금 자기의 몸을 돌보지 않고 하느님과 이웃과 가족을 열렬히 아가파오 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일이 바로 계명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고 그 일은 성령 하느님의 내주하심에서 오게 된 것입니다그 모든 일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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