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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동화] 3편-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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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지 [JEJUBLUE] 쪽지 캡슐

1999-08-21 ㅣ No.189

 

 

            어른들을 위한 동화    3편

 

     

            모래성 (1부)

 

              우리 고향의 성모 병원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벚나무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겨울이면 빨간 동백꽃잎이

            바다를 향해서 날아갔고, 봄이면 하얀 벚꽃 잎이 파도가 칠 때마다

            우수수 우수수 떨어지는 언덕이었습니다.

           

              지금도 내가 입원하던 날이 눈에 선하게 떠오릅니다.

              갈매기가 어느 때보다 많이 나는 여름이었어요.  나는 병원문을

            들어가기가 싫어서 성모상 아래에서 떼를 썼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내 손목을 잡고 장미 덩굴이 올라가는 차양 아래로

            갔습니다.  거기에는 하얀 벤치가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자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바다에는 푸른 물이

            가득 출렁거리고 있었고, 갈매기들이 내려 앉다가는 올라오고

            올라오다가는 내려가곤 하였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자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영민아, 병원은 무서운 곳이 아니야.  병원은 우리 몸에 들어

            있는 병을 쫓아내 주는 고마운 곳이야. 주사만 해도 그렇지.

            주사를 맞으면 병균이 죽고 그렇게 해서 영민이가 건강해지면 저기서

            날고 있는 물새들처럼 활발해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도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를

            따라서 병원 현관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나는 문 사이로 들어오는 파도소리를 들었습니다.  파도소리는

            안으로 걸어갈수록 멀어졌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가서 앉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 순간에 갑자기 눈물이 쿡

            솟아올랐습니다.

              나는 아버지 몰래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그날 나는 병원에서 진찰만 받으면 다른 때처럼 간호사 누나로부터

            주사를 맞고 약을 타가지고 집으로 곧 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차례가 되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서 일이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금테 안경을 쓰고 숨을 크게 쉴 때마다 콧구명이

            뻐끔뻐금 움직이는 의사 선생님은 청진기를 이리저리 대보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나중에는 나를 침대 위에 눕히고 주사기로

            내 팔의 피를 뽑아갔습니다.

 

              한참 후에 다른 방에 갔다 온 의사 선생님은 입원 수속을 밟으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더욱더 놀랐습니다.

            그러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꾹 참고서 간호원 누나가 주는 푸르스름한

            환자옷을 입었습니다.

 

              내가 얻어 들어간 방은 7층의, 바다를 향한 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

            맨 끝방이었습니다.  그 방의 침대는 두 개 였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신발을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영영 집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어이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한참 울고 있는데 옆 침대에서 말소리가 건너왔습니다.

 

              "바보같이, 무슨 사내가 저렇게 오래 울어."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창피해서 얼른 돌아보니

            옆 침대에서 홑이불 바깥으로 눈만 빠꼼 내놓고 있는 여자 아이가

            보였습니다.

 

              "뭐야, 계집애가!"

 

              나는 대릴 듯이 주먹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힘이 풀려버려습니다.

            여자 아이가 누운 침대 가에 커다란 링거 병이 달려 있는 주사대가

            보였던 것입니다.

 

              "저 주사약을 다 맞으려면 얼마나 걸려야 하나요?"

 

              내가 아버지한테 물었었는데 대답은 엉뚱하게 여자 아이한테서 왔습니다.

 

              "이렇게 방울방울 떨어지면 네 시간 정도 걸려."

              "그럼 네 시간 내내 꼼짝하지 못하겠네."

              "그렇지.  이렇게 계속 있어야 해."

              "처음 맞니?"

              "아니야.  여러 번 맞았어.  그제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한번씩 맞는걸."

              "아침 저녁으로 한번씩?"

 

              나는 눈을 크게 떴습니다.  여자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쿡쿡

            잔기침 같은 웃음으로 웃었습니다.

 

              "너 눈 너무 크다, 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이 은하라는 것을 안 것은 침대 끝에 붙어 있는

            이름표를 보고 나서였습니다.  병 이름은 영어르 씌어져 있어서

            몰랐지만 나이도 나와 같은 열 살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병실에 우리 둘만이 남아 있을 때면 서로 마주보고

            말을 나누었습니다.

         

              "너 몇학년이니?"

              "사학년."

              "나도 사학년이다."

              "그런 넌 어느 학교니?"

              "동국민학교."

              "피이 동냥치구나."

              "뭐라구.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넌 서국민학교 쥐새끼 학교로구니."

              "뭐야.  지난 봄에 너희 학교 농구가 우리 학교한테 묵사발 된 것 몰라."

              "얼씨구, 우리 학교한테 코가 납짝해진 너희 학교 야구는 어디다

            두고 그래."

              이렇게 다툰 날은 으레 서로 등을 지고 한나절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심심하고 심심하였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말문을 터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서 구실을 찾았습니다.

 

              "어머, 저기봐.  수평선에 뜬 흰구름이 꼭 양떼 같네."

              내 눈에는 다르게 보였지만 그러나 나는 곧잘 양보하곤 하였습니다.

              "정말 그렇구니.  수평선과 저 구름들은 참 행복해 보이지? 그치?"

              "그래.  우리 병원에서 나가면 배 타고 저기 저 수평선에 꼭 한번 가자."

              "좋아, 작은 섬을 찾아가서 탐험도 해야지.  그땐 넌 식사 준비를 해.

             내가 고기를 잡아올테니까."

              "응"

              "정말."

              "정말."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비치 파라솔 아래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것도, 모래밭에서 단거리 경주를 벌일 것도.  그리고 함께

            수영할 것도.

     

              그러나 우리 앞에는 병원의 출구보다도 수술실의 문이 더 먼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부를 기대해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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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주말이 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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