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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례 노무현, 사돈 강금원·이병완의 골프장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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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landpia21] 쪽지 캡슐

2008-09-09 ㅣ No.8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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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주례 노무현, 사돈 강금원·이병완의 골프장 결혼식
6일 낮 충북 충주시의 '시그너스'라는 골프장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결혼식이 열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돈과 마음으로 지원했다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장남과 노 전 대통령의 이병완 전 비서실장 차녀 결혼식이었다. 강씨는 자신의 소유인 이 골프장 3개 코스 중 하나를 휴장하고 그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열었다. 이 결혼식이 끝나고 두 시간 뒤엔 강씨 장녀의 결혼식이 또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혼주(婚主)와 결혼식 장소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두 결혼식의 주례가 모두 노 전 대통령이었다. 강씨는 "노 대통령을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도와줬다"고 한 사람이고 "대통령 만나고 싶을 때 만난다"던 사람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씨가 자신의 회사 돈 50억원을 빼내고, 15억원 상당의 세금을 내지 않은 비리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자 사면권을 행사해 전과 기록을 지워줬다. 이 전 실장은 청와대에서 다섯 자리를 돌아가면서 맡으며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역할을 했었다.

그런 두 사람이 사돈을 맺는데 노 전 대통령이 주례를 서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주례사에서 혼주들에 대해 "정치적 성취에 큰 버팀목이 돼 주고 나 대신 고초도 겪은 분"이라며 "대통령이 주례하는 일은 드물지만 이 정도 결혼식이면 큰 기쁨"이라고 했다. 이날 초록색 결혼식장 위 푸른 하늘에선 빨간색 경비행기가 선회하며 노 전 대통령이 말한 "큰 기쁨"을 축하했다.

시간에 맞춰 골프장 클럽하우스로 몰려들기 시작한 하객들은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등 전 국무총리 2명, 김원기, 임채정 전 의장 등 전 국회의장 2명 등 지난 정권의 실세들 일색이었다. 노 정권 시절의 장관들, 청와대 수석들이 모습을 나타냈고, 그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이기명 전 후원회장과 배우 명계남씨도 빠지지 않았다. 이들이 탄 검은색 승용차들은 앞 유리창에 '결혼식 차량'이라는 종이를 붙인 채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이들이 악수를 나누고 이야기 꽃을 피우는 테이블에선 부동산 얘기, 아파트 얘기, 골프 얘기도 들려왔다.

이날의 잔치가 끼리끼리 아들 딸을 결혼시켜 사돈이 또 사돈이 돼 가는 이 나라 특권층, 부유층의 결혼식이라면 으레 그러려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날의 주인공들이 특권층, 부유층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로 평생을 살아오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세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구호는 '서민 대통령'이었다. 재임 중엔 입만 열면 양극화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 사회를 빈·부로 편 갈랐다. 그는 심지어 장관들에게 강남 사람과 밥 먹지 말라는 식의 말까지 했다. 이 전 실장은 "양극화를 놔두면 한국은 빈·부의 두 나라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국가 안보가 위태롭다면서 부자들은 왜 부동산 투기를 하느냐. 당장 이민가면 집값도 안정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정권의 실력자들이 골프장 잔디 위에 모두 모여서 웃고 떠들며 이 나라 신(新)특권층이 사는 법을 국민 앞에 보여 주었다. 강남을 욕하면서 자신들은 강남에 대형 아파트를 소유한 게 이들이었다. 교육 평등을 외치면서 제 자식들은 누구보다 먼저 미국으로 유학 보낸 것도 이들이다. 촛불시위 때 비옷을 입고 인터넷 중계를 하던 전직 청와대 비서관은 이 골프장 결혼식장에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났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그들이라고 해도 서민이 하루 살기가 힘들고 중산층이 흔들리는 지금, 보란 듯이 이러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권의 시대를 끝내고 서민의 시대"를 연다던 대통령이 주례를 서고 그 정권의 실세들이 사돈을 맺은 결혼식은 빨간색 경비행기가 하늘에서 골프장을 향해 오색 종이를 뿌리면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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