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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31일 성 요한보스코 사제축일♬Haydn-Gloria in excelsis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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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정 [wjyou57] 쪽지 캡슐

2003-01-30 ㅣ No.922

축일 : 1월31일

성 요한 보스꼬

St.John Bosco(1815 ~ 1888)

창설자(수도회).편집자,교정자의 주보

"청소년의 아버지요 스승이며 위대한 교육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는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기록된 한 무덤이 있다. 비명(碑銘)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그 밑에 묻혀 계시는 분이야말로 무수한 고아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는 성 요한 보스코이다.

 

요한 보스코는 1815년 8월 16일 북 이탈리아의 토리노 교구의 카스텔누오보 근처의 작은 마을 베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란치스코 루이지라는 분으로 근면하고 조심성 있는 독실한 신자였고, 어머니는 마르가리타로서 역시 모든 선덕을 구비한 신심 깊은 부인이었다. 그런데 이 가정은 물질적 면으로는 겨우 그날의 생활을 이어나갈 정도였지만, 정신적 면으로는 극히 혜택을 받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뜻밖에 감기로 급성폐렴에 걸려 34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남편이 임종시에 유언한 ’자녀들을 부탁하오. 특히 어린 요한을..."이라는 말을 언제든지 잊지 않고 요한을 훌륭한 인물로 양성하기 위해 밤낮으로 고심했다.

 

그녀의 교육에 대한 열성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마르가리타만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어머니들의 모범이다."하며 늘 칭찬하는 정도였다. 몇 해 후에 요한 보스코가 아동 교육에 성공을 한 것도 본래는 훌륭한 어머니의 감화가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를 잘 선도한 힘은 물론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그는 후에 하느님께 특별한 사명을 위탁받으리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기이한 일로 예측되어 있었다.

 

예컨데 9세 때 그는 처음으로 주 예수의 발현을 보고 성모 마리아를 지도자로 주신다는 고마운 말씀을 들었는데, 실제로 후일 예상한 것 이상으로 대성공을 하고, 또 그가 창립한 살레시오회의 경탄할 만한 신속한 발전을 생각할때에 성모의 도움이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고 요한 보스코 자신이 고백하고 있다.

 

요한 보스코는 성모께 무한한 신뢰를 바치고 있었다. 그리고 은총의 인도로 몸을 수련하고 덕행의 길로 매진했다. 그는 극기 금욕의 생활을 즐겁게 하면서도 항상 쾌활하고 사람으 즐겁게 하는 것으로 낙을 삼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끔 아이들을 위하여 스스로 줄넘기나 장난을 해 주는 때도 있으나 사람들의 영혼을 점점 더 귀중히 생각하며 소년 시대부터 사제가 되려고 굳게 결심한 바가 있었다.

 

가정이 구차하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할 수가 없어서 어느 신부에게 라틴어를 배우게 되었으나 이것조차 여러 가지 사정으로 종종 중단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12세부터 14세까지의 2년간을 숙부의 집안에서 일을 도우며 지낸 것도 그 한 예이다.

 

숙부는 요한의 경건한 마음과 그의 뜻을 깨닫고 돈 가로소라는 성인같은 한 사제에게 위탁하고 그를 공부시키게 했다. 그러나 가로소 신부는 오래지 않아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요한은 그때 돌연한 그의 죽음에 아무 유언을 들을 사이도 없이 다만 스승한테 받게 된 것은 한 개의 손금고(手金庫)와 그의 열쇠 뿐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주려는 의사였을 것인가? 적어도 가로소 신부의 조카되는 사람은 그렇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요한 보스코는 ’나에게는 현세의 보배는 필요없습니다. 천국만을 잃지 않으며 그것으로 만족합니다"하며 끝끝내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 후 부터 그는 공부를 계속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서야 그는 천부적 재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뛰어난 좋은 성적을 올리고, 1835년에 신학교에 입학해 전부터 절실히 원하던 것을 실현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신학교에서 6년간 철학과 신학을 연마하는 동안 그는 얼마나 덕행의 길에 힘썼는지! 그러나 겸손한 그는 될수 있는대로 겉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힘썼다.

요한이 바야흐로 사제 서품을 받게 된 것은 1841년 4월 5일이었다. 세라핌적 사랑으로 첫 미사를 봉헌한 그는 점점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높아질 뿐이었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그의 미사에 참여하려고 먼길을 무릅쓰고 찾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첫 미사때, 어머니 마르가리타는 사랑하는 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한 즐거움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훈계했다.

 

"너도 오늘부터 하느님의 것이 되었지만 사제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잠시도 망각하지 말아라. 지금은 이 말을 깨닫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반드시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오늘 부터는 내 일은 염려하지 말고 너는 다만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열심히 일해라. 나는 네가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이제는 만족이다..."

 

이와 같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이 후에 성인으로 공경을 받게된 것도 생각하면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한 그에게는 토리노에 성 요셉 카파소, 성 요셉 베네딕토 코톨렌고는 두 친구가 있었다. 그들은 그의 사명을 재빨리 알아채고 박애 사업에 일생을 바치라고 권고했다. 요한은 그 충고에 순응해 즉시 가련한 고아들을 모아 아버지가 되어 교리를 가르쳐주고, 혹은 기술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아직 고아원도 없어서 그들은 요한과 그의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토리노의 사람들에게 "요한 보스코의 왈패자식들"이라고 불렸지만 덕망이 많은 성인의 감화를 받고서 모두 온순한 아이들이 되었다.

요한 보스코는 또한 토리노에 있는 양로원이나 자혜병원, 형무소까지도 방문하고 거기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며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했다.

 

1864년에 고아원이 건설된 후부터 수용한 아이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요한 보스코는 아이들에게 대하여서는 눈에 보일 정도로 신기한 힘을 가진 것처럼 아무리 왈패인 아이라도 자유롭게 통솔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전에 어머니에게서 들은 말과 같이 사제의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이었다. 정직한 그는 악인의 원한을 사게 되어 전후 일곱 번이나 살해될 뻔했다. 그러나 그럴때마다 어디선가 사나운 개가 나타나서 악인에게 달려드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나서 환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돈보스코-악대와 함께.1870년

 

그의 보살핌을 받는 소년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보스코 신부는 많은 평신도들을 영입하여 자신의 일을 돕게 한다. 특히 보살핌을 받고 있는 소년들 가운데서 보다 성숙한 젊은이들이 보스코 신부를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이들을 주축으로 하여 수도회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보스코 신부는 마음을 매혹시키는 독특한 방법으로 청소년들을 사랑했다.

 

초창기 오라또리오의 600명이 넘는 소년들은 모두가 제각기 자신이 보스코 신부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으며, 자신들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보스코 신부를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느껴지는 각별한 사랑의 친밀감으로 인하여 소년들은 보스코 신부를 ‘돈보스코’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삶을 의지하였다.

 

청소년들 특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기숙사, 기술학교, 주일학교, 야간학교 등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한 요한 보스코 신부는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놀랄만한 작가이고, 사회변혁의 순간에 교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효교론자이며,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교회안에 심은 대영성가이기도 하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라는 확신처럼 돈보스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청소년 특히 보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다 내어주고 1888년 1월 31일에 선종한다. 그리고 1934년 부활절,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으로 반포되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요한 보스코는 그 사업의 계속되는 발전을 위한 한 수도원을 창설해 ’살레시오 성 프란치스코의 신심회’하고 이름지어 1859년 12월 18일 제자 몇명을 데리고 교황 비오 9세를 알현하고 그 인가를 청했다. 다시 1875년 8월 5일에는 살레시오 수녀원도 창설했다.

 

이 두 수도원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베풀어 천국의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하고 또 직업을 줌으로써 현세의 행복까지도 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수도원이 얼마나 사회에 유익이 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았는지 측량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 회는 1859년, 비오 9세로부터 승인을 받았으나, 1884년까지는 공식적인 승인을 받지 못하고 활동하였다. 그의 임종시에는 64개의 살레시오 수도회가 있었고, 유럽과 아메리카로 확대되었으며, 약 800명의 살레시안 사제들이 활동하였다. 1872년, 그는 크리스챤의 도움이신 성모 수녀회를 창설하여 가난한 삶들과 버림받은 소녀들을 돌보게 하였고, 살레시안 협력자들이라 부르는 3회가 뒤따랐다.1934년에 시성되었다. 그는 편집과 교정자의 수호성인이다.

 

교황 레오 13세가 요한 보스코를 향해 ’전 세계 교회는 당신을, 당신의 사업을, 당신의 수도원을 우러러보며 다만 탄복할 따름입니다"하고 말한 것도 결코 과분한 칭찬이 아니다.

 

성인은 1888년 1월 31일 아침 삼종소리가 날 때 교요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많은 공적은 영원히 빛날 것이고, 오늘날도 그 위대한 사업은 그의 애제자인 살레시오 회원의 손으로 훌륭히 계속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수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전문적인 능력과 기술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그들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 가난한 젊은이들의 모임이 전 세계적으로 퍼진 [살레시오회] 의 모체가 되었으며 1874년에는 마리아 동정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요한 보스코는 자신의 구제 사업의 계속적인 발전을 위하여 수도원을 창설하여 [살레시오 성 프란치스꼬의 신심회] 라 이름지었습니다.

 

따라서 돈 보스코를 근대 사제의 이상형으로,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손꼽습니다. 그는 정치적 문제에까지 탁월한 조언을 했으며 교육 부문에 1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정도로 문필가로서도 이름이 높았습니다.

 

돈보스코-고해성사1861년

 

요한 보스코의 교육 이론은 오늘날에도 학교에서 잘 활용될 수있다. 그것은 신체적 처벌을 지양하고 학생들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함으로써 학생들의 행동을 선도하는 예방 조치이다. 그는 고해 성사를 자주 받고 영성체를 자주 하도록 권한다.

 

요한 보스코는 영혼과 육신이 결합된 인간성 그 전체를 교육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즉 일, 공부, 놀이 등 모든 것에 가득히 스며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요한 보스코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주일에 한번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정도로서가 아니라 전적인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이며,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인도하도록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요한 보스코는 재능과 능력을 살리는 직업 훈련과 자신감 그리고 긍지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따라서 그는 장사하는 기술에 관해서도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모든 교육은 하나의 철학을 가르친다. 그것이 독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제안이나 암시 또는 분위기로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의 각 분야는 다른 모든 분야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만일에 그것이 어떤 인생관을 갖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교육이 아니다.(G,K 체스터턴)

 

돈보스코-오라토리오소년들과1861년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

(이) Societa’ di san Francisco Salesio

(영) The Society of St. Francis De Sales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성인은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사도적 사명감과 고귀한 정신에 감명되어 수도회 명칭을 살레시오회로 하였다고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축일 : 1월24일 게시판905번

 

 

♬Haydn-Gloria in excelsis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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