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다해 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다부활4주일> righteousness rectitude 1689_

2464 . [121.190.18.*] 2022-05-06

다해 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 온라인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묵상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묵상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464.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게시자 주: 성경공부에 필수적인 복습용 묵상 자료들은 아래의 <<부록>>에 있습니다.

 

 

<다부활4주일> 다해 주님 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


요한 복음서 10,27-30; 사도행전 13,14.43-52; 요한 묵시록 7,9.14ㄴ-17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요한 복음서 10,27-28)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사도행전 13,47)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요한 묵시록 9,17)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에서 교재 본문 중의 특정 주제(topic)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부분들:

 

*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03:28-21:28
* 성경/교리 용어인 착한/선한/좋은(good, 善)의 의미/정의(definition): 03:28-08:42

* 잘못된 자유 의지의 행사는 나쁜 인과 관계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이다: 18:20-21:28

* 오늘의 복음 말씀 입분: 21:37-24:29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24:29-25:02-28:28

* 제1독서 입문: 28:32-31:58

*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최초로/처음으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였다 외: 31:58-32:56

*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의 제1차 선교여행 당시의 소아시아 지도에서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등 위치 파악: 32:56-35:10

* 미사성제의 전반부 말씀 전례의 모델인 1세기 안식일 회당 예배의 구성 등: 35:10-36:19

* 강조의 표현인 명제 'p only if q', 즉, 명제 p only when q' 는, 명제 'p implies q'와 논리적으로 등가이다: 36:19-37:40

*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예수님의 구속/속량 위업의 역할 등(사도행전 13,17-42): 27:40-44:20

* 은총(grace)이란?: 44:24-45:54

* '시기'(jealousy)와 '질투'(envy)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45:54-49:10-52:36

* 제2독서 입문: 53:31-54:31

* 요한 묵시록 7,9에서 '야자나무' 대신에 '대추야자나무'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55:15-55:58

* 회심, 회개, 그리고 세례: 56:28-57:06; 59:20-01:00:51

* 3분 복음/교리 묵상: 01:00:51-01:03:46

* 성경공부에 필수적인 <<부록: 복습용 자료들>> 안내: 01:04:12-01:04:28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성경/교리 용어인 착한/선한/좋은(good, 善)의 의미/정의(definition): 03:28-08:42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orally_good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3:28-08:42 [즉, 03분28초-08분42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morally_good_2464"]   

A.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윤리적 처신’과 관련하여 영어로 ‘good’으로 번역되는 성경/교리 용어의 번역 용어들인 ‘착하다’, 즉, ‘선하다(善)’, 즉, ‘좋다’라는 용어들의 속(屬)적(generic)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 즉, ‘착한 사람들’, 즉, ‘좋은 사람들’, 즉, ‘선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ighteousness_vs_justice_2312.htm <----- 필청/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ustice_2367.htm <----- 필청/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0.htm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제목: 의로운 자 vs 의롭게 된 자; 게시일자: 2008-06-19] <----- 꼭 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8.htm [주: 종(種)적(special) 정의(definition)]

 

(ii)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판토하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4년에 그 초판이 출판된 한문본 천주교 수덕서인 "칠극"은 1990대 중반 이후에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는데, 그런데 이 우리말본 "칠극"은 중국어로 번역이 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을 한, 소위 말하는, 중역(重譯, 이중번역, double translation, secondhand translation)이기 때문에, 중국어본의 원 서양 언어 번역대본과의 정밀한 대조 작업이 선행되지 아니한 경우에, 자칫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번역 오류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며, 따라서, 특히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윤리적 처신을 주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의 특정 용어들의 의미/정의(definition)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햑 대전"의 사고의 틀 안에서 제대로/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라.

 

예를 들어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의 본문에서 "선한"이라는 번역 표현과 "착한"이라는 번역 표현 둘 다는, (a) 오늘의 전례성경의 묵상 동영상 중의 유관 부분에서 및 (b) 바로 위의 제(i)항에서 이미 명확하게 지적하였듯이, 그 전후 문맥 안에서 윤리적 처신에 관한 한, 정확하게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을 마련한 번역자들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 번역본 책을 학습하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천학초함", 제759쪽에 포함된 한문본 "칠극" 본문의 우리말 번역문 중의 한 개의 단락 안에서 "착한 사람"이 사용된 한 개의 문구와 "선한 사람"이 사용된 가까이에 배치된 또다른 한 개의 문구을 읽었을 때에, 왜냐하면 제(i)항에 제시된 바는 한문본 "칠극"의 본문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지금 본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를 전혀 알 수 없어, "착한 사람"의 의미/정의(definition)와 "선한 사람"의 의미/정의(definition)가 다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의 이해 오류의 문제 및 판단 오류의 문제가 있는데, 아무쪼록, 위의 제(i)항에 제시된 바들이 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을 학습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글을 작성하여 게시할  생각을 하고 있다.

 

(iii) 바로 위의 제(i)항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사실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임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에 수록된 "just (justice)"의 설명을 읽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에는, 매우 기이하게도, "righteous"(의로운) [및 "righteousness"(의로움)]이 표제어로서 수록되어 있지 않은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래의 발췌문에서, "just"(정의로운)"righteous"(의로운)교체하고 그리고 "justice"(정의)"righteousness"(의로움)교체한 후에, 읽도록 하라. 그러면, 그 근거들로서 제시되고 있는 해당 성경 본문들에서의 영어 번역문들 및 우리말 번역문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게 된다:

 

출처: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

(발췌 시작)

just (justice) <----- 오류의 표제어

 

The just man is one who is virtuous, faithful to God and to the law of Moses (Mt 19,17-20). In the New Nestament the "just" man is one who does the will of God (Mt 7,21). In the teachings of St. Paul, the terms justice and justification appear often: God makes man "just," free from sin and pleasing to God through grace (grace attested by faith) (Rom 3,20-30).

 

의로운(rrighteous) [의로움(righteousness)] <----- 바로잡은 표제어

 

의로운(righteous) 자는 덕이 있어(virtuous), 하느님 쪽으로 및 모세의 법 쪽으로 충실한(faithful) 자(man)를 말한다 (마태오 복음서 19,17-20). 신약 성경에서 "의로운"(righteous) 자는 하느님의 의지/뜻(will)을 행하는 자이다 (마태오 복음서 7,21). 성 바오로의 가르침들에서 의로움(righteousness) 및 의화(justification)는, 다음과 같이, 자주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은총(grace)을 통하여 (은총에 의함이 입증되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및 하느님 쪽으로 기쁘게, 사람을 "의롭게"(righteous) 만든다(makes) (로마 3,20-30).(*)  

 

-----
(*) 번역자 주: 특히, 추가적으로 "새 번역 성경", 로마서 3,20-30을 읽되, 또한 "주석성경", 로마서 20,24의 길다란 주석을 반드시 읽도록 하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많이 부족한 죄인인, 일천한,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위에 발췌된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에 표제어로 수록된 just (justice)와 그 설명에서, 용어들의 선정에 있어 심각한 오류는, 이 설명을 제시한 자가, 번역 용어들로서 유관 성경 본문들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영어 단어들인 "righteous"(의로운), "righteousness"(의로움)를 또한 이 표제어 및 이 표제어에 대한 서술에서 선정하여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 작업 이전에, 예를 들어, 이어지는 제(iii)항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 중의 유관 부분(들)을 또한 전혀 학습하지 않은 자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iv)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유관 자료들을 또한 추가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라:
* http://www.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Summa_Theologiae/Part_IIa/Q55#q55a4ad4 [주: rectitudo[rectitude(프랑스어)_righteousness(영어)]_vs_justitia[justice(프랑스어)_justice(영어)]_in_Summa_Theologica_Ia_IIae_ q55a4ad4] <----- 필독 권고

* http://docteurangelique.free.fr/bibliotheque/sommes/2sommetheologique1a2a.htm#_Toc79330103 [주: 프랑스어본 신학 대전, Ia IIae, q55, a4]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제목: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안에서만 오로지 의화가 가능하다; 게시일자: 2016-04-21] <----- 꼭 필독 권고

(이상, A 끝)

 

F.
(i)
 ‘의롭게 된다’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착한 사람이 된다’, 즉, ‘좋은 사람이 된다’, 즉, ‘선한 사람이 된다’와 논리적으로 등가(logically equivalent)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새 번역 성경"에서 발췌된, 가해 연중 제11주일 제2독서(로마 5,6-11)에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를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0.htm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제목: 의로운 자 vs 의롭게 된 자; 게시일자: 2008-06-19] <----- 꼭 필독 권고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잘못된 자유 의지의 행사는 나쁜 인과 관계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이다: 18:20-21:2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잘못된_자유의지의_행사는_나쁜_인과관계를_야기하는_주된_원인이다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20-21:28 [즉, 18분20초-21분2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잘못된_자유의지의_행사는_나쁜_인과관계를_야기하는_주된_원인이다_2464"]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뜻/의지에 대적할 수도 있는, 따라서 대단히 잘못된, 자유 의지의 행사를 회피할 것을 적극 권고하는 성 바오로의 스승 가말리엘의 예(example)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o_that_may_2453.htm <----- 필청/필독 권고

 

%%%%%%%%%% 

C. ‘솔로몬의 주랑’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본 해설서의 다해 부활 제2주일 제1독서(사도행전 5,12-16) 해설의 각주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440.htm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24:29-25:02-28:2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substantiality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4:29-25:02-28:28 [즉, 24분29초-25분02초-28분2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substantiality_2464"]     

D. 복습 6: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위격 결합 신비’에 의하여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예를 들어, 요한 복음서 10,29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처럼, 왜 성부 하느님과 하나이신가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7.htm <----- 필독 권고


E.
(i) 다음에 있는 성 바오로의 세 번째 선교 여행 및 로마로의 여행 지도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MedActsEps3.htm

 

(ii) 다해 부괄 제4주일 제1독서 입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신약 성경의 지역들에 대하여서는, 다음에 있는 성 바오로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선교 여행 지도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MedActsEps2.htm

 

(iii) 또한 본 해설서의 다해 연중 제5주일 3분 복음/교리 북상 직전에 있는 당시의 소아시아 지역 지도를 참조하라.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미사성제의 전반부 말씀 전례의 모델인 1세기 안식일 회당 예배의 구성 등: 35:10-36:19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abbath_synagogue_service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5:10-36:19 [즉, 35분10초-36분1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abbath_synagogue_service_2464"]     

F.

(i) 미사성제의 전반부 말씀 전례의 모델인 1세기 안식일 회당 예배의 구성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청/청취할 수 있는, 본 해설서의 다해 연중 제3주일 복음 말씀(루카 1,1-4; 4,14-21) 중의 제16절 해설을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37.htm <----- 필독 권고

 

(ii) 예를 들어, 다음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인 2002년 6월 2일자 강의, "EUCHARIST, COMMUNION AND SOLIDARITY"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rc_con_cfaith_doc_20020602_ratzinger_ec_en.htm

(발췌 시작)

LECTURE BY H.E. CARDINAL RATZINGER
AT THE BISHOPS' CONFERENCE OF THE REGION OF CAMPANIA
IN BENEVENTO (ITALY) ON THE TOPIC:
"EUCHARIST, COMMUNION AND SOLIDARITY"

 

Sunday 2 June 2002

 

[...]

 

Liturgy of Word, Prayer of Thanksgiving, Words of Institution

 

Thus the Church, assuming her own specific configuration, progressively freed the specific gift of the Lord, which was new and permanent, from the old context and gave it its own form. This took place thanks to the connection with the liturgy of the word, which has its model in the synagogue; and thanks to the fact that the Lord's words of institution formed the culminating point of the great prayer of thanksgiving - that thanksgiving, also derived from the synagogue traditions and so ultimately from the Lord, who clearly had rendered thanks and praise to God in the Jewish tradition. But he had emphatically enriched that prayer of thanksgiving with a unique profundity by means of the gift of his body and his blood.

 

Through this action, the early Christians had come to understand that the essence of the event of the Last Supper was not the eating of the lamb and the other traditional dishes, but the great prayer of praise that now contained as its centre the very words of Jesus. With these words he had transformed his death into the gift of himself, in such a way that we can now render thanks for this death. Yes, only now is it possible to render thanks to God without reserve, because the most dreadful thing - the death of the Redeemer and the death of all of us - was transformed through an act of love into the gift of life.

(이상, 발췌 끝)

 

(iii) 그리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시절에 출판한 "The Spirit of the Liturgy"(전례의 정신), Chapter 2(제2장)을 추가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라.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은총(grace)이란?: 44:24-45:54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4:24-45:54 [즉, 44분24초-45분54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2464"]    

G.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성경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 필청/필독 권고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시기'(jealousy)와 '질투'(envy)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45:54-49:10-52:36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5:54-49:10-52:36 [즉, 45분54초-49분10초-52분3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nvy_2464"]  

H. 복습 5: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猜忌, 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嫉妬, envy)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340.htm <----- 필청/필독 권고

 

(ii)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오로지 사랑(love)안에만 열의(zeal)가 있을 수 있고, 오로지 열의(zeal)안에만 경쟁(rivaly)이 있을 수 있으며, 그리고 오로지 경쟁(rivalry, emulation; 라틴어 aemulatio)안에만 시기(猜忌, jealousy)가 있을 수 있고, 오로지 나쁜 시기(bad jealousy) 안에만 질투(嫉妬, envy)가 있을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I.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면 신약 성경에서 인용되고 있는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모든 구절들 모두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으며, 마소라본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해당 구절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또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eptuagint/sptableNT.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eptuagint/spindex.htm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요한 묵시록 7,9에서 '야자나무' 대신에 '대추야자나무'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55:15-55:5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ate_palm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15-55:58 [즉, 55분15초-55분5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ate_palm_2464"]  

J.

이집트 및 중동지역의 오아시스에서 자라며 그 열매가 식용이며 ‘생명의 나무’로 알려져 있는, 대추야자나무(종려나무, date palm, Date)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 해설서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입성 복음 해설의 각주를 참고하라.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ate_palm_2410.htm <----- 필청/필독 권고

 

%%%%%%%%%%

다해 부활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8/다해부활제4주일.mp4 <----- 회심, 회개, 그리고 세례: 56:28-57:06; 59:20-01:00:51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version_vs_repentance_2464.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6:28-57:06; 59:20-01:00:51 [즉, 56분28초-57분06초; 59분20초-01시00분51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version_vs_repentance_2464"]  

K.
(i)
성경 용어들인 ‘회심’(conversion)‘회개’(repentance)의 차이점에 대하여서,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본 해설서의 다해 사순 제2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을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version_vs_repentance_2377.htm <----- 필청/필독 권고

 

(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들인 ‘회심’(conversion)‘회개’(repentance)의 명확한 차이점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4.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3-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conversion(회심)" 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www.catholicreference.net/index.cfm?id=32806 [주: 옛 주소]

출처 2: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c/c547.htm
(발췌 시작)
CONVERSION

Any turning or changing from a state of sin to repentance, from a lax to a fervent way of life, from unbelief to faith, and from a non-Christian religion to Christianity. Since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 term is not used to describe a non-Catholic Christian becoming a Catholic. The preferred term is "entering into full communion with the Church." (Etym. Latin conversio, a turning, overturning, turning around; turning point; change.)  

 

회심/귀의(conversion)

죄(sin)의 한 상태로부터 회개(repentance) 쪽으로, 삶에 있어서의 느슨한 방식으로부터 열렬한 방식 쪽으로, 불신/회의(懷疑)(unbelief)(*)로부터 믿음(faith) 쪽으로, 그리고 비그리스도교 신앙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쪽으로, 임의의(any) 방향 전환(turning) 혹은 변화(changing)를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이 용어는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신가가 가톨릭 신자가 됨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되지 않습니다. 선호하는 용어는 "교회와의 충만한 하나 됨(communion, 통공) 안쪽으로 들어옴" 입니다. [어원. Latin conversio, a turning, overturning, turning around; turning point (돌아섬/방향 전환, 전복/뒤집음, 방향을 바꿈; 반환점); change (변화).]

-----
(*) 번역자 주: "불신/회의(unbelief)" 라는 신학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3.htm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version_vs_repentance.htm <----- 필독 권고  

 

%%%%%%%%%% 

L.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east_4.htm <----- 필독 권고 

 

M.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east_4.htm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The Good Shepherd! This is the symbol of Jesus Christ that today’s liturgy emphasizes. He is the Good Shepherd who knows his sheep and gives his life for them (Gospel). He is the Good Shepherd who wants to save all, both the sheep and the pagan women, and who offers his life to everyone (first reading). He is the Good Shepherd who feeds his sheep not only on this earth, but also in heaven, leading them to springs of living water (second reading).

 

착한 목자!(*) 바로 이것이 오늘의 전례가 강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양들(sheep)을 알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제공하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복음 말씀). 그분께서는, 자신의 양들(sheep) 및 이방인 여자들 이들 둘 다, 모두를 구제하는(save) 것을 원하시고, 그리고 모든 이들 쪽을 자신의 목숨을 제공하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제1독서). 그분께서는 자신의 양들(sheep)을, 바로 이 세상에서 뿐만이 아니라, 또한 하늘에서, 그들을 생명수의 샘들 쪽으로 인도하심으로써, 먹이시는(feeds) 착한 목자이십니다 (제2독서).

 

-----

(*) 번역자 주: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윤리적 처신’과 관련하여 영어로 ‘good’으로 번역되는 성경/교리 용어의 번역 용어들인 ‘착하다’, 즉, ‘선하다(善)’, 즉, ‘좋다’라는 용어들의 속(屬)적(generic)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 즉, ‘착한 사람들’, 즉, ‘좋은 사람들’, 즉, ‘선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ighteousness_vs_justice_2312.htm <----- 필청/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ustice_2367.htm <----- 필청/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0.htm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제목: 의로운 자 vs 의롭게 된 자; 게시일자: 2008-06-19] <----- 꼭 필독 권고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8.htm [주: 종(種)적(special) 정의(definition)]

 

(ii)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판토하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되어 1614년에 그 초판이 출판된 한문본 천주교 수덕서인 "칠극"은 1990대 중반 이후에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는데, 그런데 이 우리말본 "칠극"은 중국어로 번역이 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을 한, 소위 말하는, 중역(重譯, 이중번역, double translation, secondhand translation)이기 때문에, 중국어본의 원 서양 언어 번역대본과의 정밀한 대조 작업이 선행되지 아니한 경우에, 자칫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번역 오류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으며, 따라서, 특히 바로 이러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윤리적 처신을 주되게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의 특정 용어들의 의미/정의(definition)들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햑 대전"의 사고의 틀 안에서 제대로/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라.

 

예를 들어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의 본문에서 "선한"이라는 번역 표현과 "착한"이라는 번역 표현 둘 다는, (a) 오늘의 전례성경의 묵상 동영상 중의 유관 부분에서 및 (b) 바로 위의 제(i)항에서 이미 명확하게 지적하였듯이, 그 전후 문맥 안에서 윤리적 처신에 관한 한, 정확하게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을 마련한 번역자들 뿐만이 아니라 또한 이 번역본 책을 학습하는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천학초함", 제759쪽에 포함된 한문본 "칠극" 본문의 우리말 번역문 중의 한 개의 단락 안에서 "착한 사람"이 사용된 한 개의 문구와 "선한 사람"이 사용된 가까이에 배치된 또다른 한 개의 문구을 읽었을 때에, 왜냐하면 제(i)항에 제시된 바는 한문본 "칠극"의 본문 어디에도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지금 본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를 전혀 알 수 없어, "착한 사람"의 의미/정의(definition)와 "선한 사람"의 의미/정의(definition)가 다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심각한 수준의 이해 오류의 문제 및 판단 오류의 문제가 있는데, 아무쪼록, 위의 제(i)항에 제시된 바들이 이 우리말 번역본 "칠극"을 학습하는 독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는 별도의 글을 작성하여 게시할  생각을 하고 있다.

 

(iii) 바로 위의 제(i)항에서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사실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임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에 수록된 "just (justice)"의 설명을 읽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에는, 매우 기이하게도, "righteous"(의로운) [및 "righteousness"(의로움)]이 표제어로서 수록되어 있지 않은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래의 발췌문에서, "just"(정의로운)"righteous"(의로운)교체하고 그리고 "justice"(정의)"righteousness"(의로움)교체한 후에, 읽도록 하라. 그러면, 그 근거들로서 제시되고 있는 해당 성경 본문들에서의 영어 번역문들 및 우리말 번역문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게 된다:

 

출처: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

(발췌 시작)

just (justice) <----- 오류의 표제어

 

The just man is one who is virtuous, faithful to God and to the law of Moses (Mt 19,17-20). In the New Nestament the "just" man is one who does the will of God (Mt 7,21). In the teachings of St. Paul, the terms justice and justification appear often: God makes man "just," free from sin and pleasing to God through grace (grace attested by faith) (Rom 3,20-30).

 

의로운(rrighteous) [의로움(righteousness)] <----- 바로잡은 표제어

 

의로운(righteous) 자는 덕이 있어(virtuous), 하느님 쪽으로 및 모세의 법 쪽으로 충실한(faithful) 자(man)를 말한다 (마태오 복음서 19,17-20). 신약 성경에서 "의로운"(righteous) 자는 하느님의 의지/뜻(will)을 행하는 자이다 (마태오 복음서 7,21). 성 바오로의 가르침들에서 의로움(righteousness) 및 의화(justification)는, 다음과 같이, 자주 나타난다: 하느님께서, 은총(grace)을 통하여 (은총에 의함이 입증되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및 하느님 쪽으로 기쁘게, 사람을 "의롭게"(righteous) 만든다(makes) (로마 3,20-30).(*)  

 

-----
(*) 번역자 주: 특히, 추가적으로 "새 번역 성경", 로마서 3,20-30을 읽되, 또한 "주석성경", 로마서 20,24의 길다란 주석을 반드시 읽도록 하라.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많이 부족한 죄인인, 일천한,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위에 발췌된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서 주어져 있는, Bible Dictionary, 제425쪽에 표제어로 수록된 just (justice)와 그 설명에서, 용어들의 선정에 있어 심각한 오류는, 이 설명을 제시한 자가, 번역 용어들로서 유관 성경 본문들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영어 단어들인 "righteous"(의로운), "righteousness"(의로움)를 또한 이 표제어 및 이 표제어에 대한 서술에서 선정하여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이 작업 이전에, 예를 들어, 이어지는 제(iii)항에 발췌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 중의 유관 부분(들)을 또한 전혀 학습하지 않은 자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iv) 다음의 주소들에 있는 유관 자료들을 또한 추가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라:
* http://www.logicmuseum.com/wiki/Authors/Thomas_Aquinas/Summa_Theologiae/Part_IIa/Q55#q55a4ad4 [주: rectitudo[rectitude(프랑스어)_righteousness(영어)]_vs_justitia[justice(프랑스어)_justice(영어)]_in_Summa_Theologica_Ia_IIae_ q55a4ad4] <----- 필독 권고

* http://docteurangelique.free.fr/bibliotheque/sommes/2sommetheologique1a2a.htm#_Toc79330103 [주: 프랑스어본 신학 대전, Ia IIae, q55, a4]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제목: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안에서만 오로지 의화가 가능하다; 게시일자: 2016-04-21] <----- 꼭 필독 권고

-----

 

DOCTrinal MESSAGE


오늘의 교리 메시지

 

The mirabilia of the Good Shepherd. In the history of Israel, there are many references to the mirabilia Dei, the great wonders that God worked for his people. It is also valid to speak of the mirabilia Boni Pastoris. Let us look at some such wonders indicated in the liturgical texts.

 

착한 목자의 이적(mirabilla, wonders)들.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하느님의 이적(mirabilla Dei),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노동하셨던/일하셨던(worked) 위대한 이적들, 쪽으로 많은 언급들이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이적(the mirabilia Boni Pastoris)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도 또한 적법합니다(valid). 오늘의 전례 본문들 안에 암시된(indicated) 일부 그러한 이적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1) I know my sheep. The communitarian and social nature of faith in no way diminishes the personal natur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od Shepherd and each one of his sheep. "Knowing" in the Hebrew language also implies "loving", wanting the good of the person, feeling affection for that person. In other words, one can get to "know" another person only within the realm of a close personal relationship.

 

1) 나는 내 양들을 안다. 신앙의 공동체적(communitarian) 및 사회적(social) 본성은 이 착한 목자와 자신의 양들(sheep)의 각 한 명 사이의 관계의 상태(relationship)의 인격적 본성(personal nature)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줄이지(diminishes) 않습니다. "앎의 행위"(knowining)는 히브리 언어에 있어, 해당자의 선(good)을 원하는(wanting), 바로 그 해당자를 위한 정의(情意, affection)를 느끼는(feeling), "사랑의 행위"(loving)를 또한 의미합니다(implies). 다른 말들로, 한 인격(One)은, 어떤 가까운 인격적 관계의 상태(personal relationship)의 영역 안에서만 오로지 다른 인격(another person)을 "알게" 될(get to "know") 수 있을 입니다.

 

When people are "known" by Jesus Christ in such a way, they also enter the world of Jesus Christ’s closeness, they listen to him with attention and follow him with faithfulness, joy and gratitude.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어떤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식별될"/"알게될"(known) 때에, 그들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가까움의 상태(closeness)라는 세상 안쪽으로(within) 들어가, 그들은 주의깊게(with attention) 그분 쪽으로 귀를 기울이며 그리하여 충싷하게(with faithfulness), 기쁨(joy) 및 감사의 태도와 함께, 그분을 뒤따릅니다.

 

I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on the other hand, knowing is almost equivalent to believing. Jesus Christ has confidence in, he trusts, his sheep because he loves them and feels loved by them. And above all, the sheep trust Christ, and recognize him as their Lord and Savior. 

 

요한에 따른 복음 말씀에서, 다른 한편으로, 앎의 행위(knowing)는 믿는 행위(believing)와 거의 등가(almost equivalent to)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양들 쪽으로 확신을 가지고 있고, 신뢰하는데(trutts) 왜냐하면 그분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들 위에, 이 양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며(trusts), 그리하여 그분을 자신들의 주님(Lord, 통치권자)이시고 그리하여 구세자(Savior)이심을 인정합니다.

 

2) I give you eternal life. The greatest gift that God has given us is life. But this life lasts only a few years, after which… Will death overcome us? Will we go back to the nothingness from which God took us when he created us? This is a question that finds its answer in the risen Christ. He is the Lord of Life, the Living One. And since he is the Lord of Life, he may dispose of it and give it to those who love and trust him.

 

2) 나는 너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제공해 오신 가장 커다란 선물(gift)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생명은 몇 해들 동안만이 오로지 지속하며, 그 이후에 ... 죽음이 우리들을 장차 정복할 것인지요? 우리들은 장차,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창조하실 때에 바로 거기로부터 우리들을 데려오섰던, 아무 것도 없음/무(無)(nothingness) 쪽으로 되돌아가는 것인지요? 바로 이 질문은 되살아나게 되신(risen) 그리스도 안에서 그 해답을 발견하는 한 개의 질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생명의 주님(the Lord of Life), 살아계신 분(the Living One)이십니다. 그리고 왜냐하면 그분이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을 처분하실(dispose of) 수도 있고(may)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자들 쪽으로 생명을 주실(give) 수도(may) 있으신 분이십니다.

 

Christ lets us share in his very life, the life that is not subject to the dominion of death: eternal life. In the Book of Revelation we read, "The Lamb (the dead and risen Christ) who is at the heart of the throne will be their shepherd and will guide them to springs of living water!"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지배(dominion) 쪽으로 종속하지 않는, 당신의 바로 그 생명, 즉,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에 우리들이 함께 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우리는 다음을 읽습니다: "어죄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죽은 그리고 되살아나게 된 그리스도)이 그들의 목자가 장차 되실 것이고 그리고 생명의 샘 쪽으로 그들을 장차 이끌어주실 것이다" (요한 북시록 7,17)

 

Eternal life is the same life as that of Christ, which is already present in us through baptism and grace, and will acquire its fullness in the hereafter of our earthly existence. Since our earthly life is a precious gift of the Father, eternal life is a wonderful gift of the risen Christ.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바로 그것과 동일한 생명인데, 이 생명은 세례(baptism)은총(grace)을 통하여 우리들 안에 이미 현존하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들의 지상에서의 존재의 내세(herefater)에서 그 충만함을 장차 획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지상에서의 생명(earthly life)이 성부 [하느님]의 한 개의 고귀한 선물이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은 되살아나게 되신 그리스도의 한 개의 경이로운 선물(a wonderful gift)입니다.

 

3) No one can take them away from me. No human, angelic or diabolical power is above the power of the risen Christ, a power he has received from the almighty Father. To want to take Jesus Christ’s sheep from him would be tantamount to taking them away from God, the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It would be absurd! People may make a clean break with this life, but they cannot snatch eternal life from God’s hands. As the Catechism teaches us, angels are at the service of God: "With their whole beings, the angels are servants and messengers of God" (CCC 329), and at the service of man, "From infancy to death human life is surrounded by their watchful care and intercession" (CCC 336).

 

3) 아무도 그들을 나로부터 빼앗을 수 없다. 인간의, 천사의 혹은 악마의(diabolica) 힘 어느 것도, 그분께서 전능하신 성부로부터 이미 받으신 한 개의 힘인, 되살아나게 되신 그리스도의 힘 위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을 그분으로부터 빼앗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을, 우리들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부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빼앗는 행위에 상당할(tantamount to)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는 터무니없을(absurd)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이 세상에서의 삶과의 관계를 완전하게(clean) 끊을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손들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낚아챌 수 없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가 우리들에게 가르치듯이, 천사들은, 다음과 같이, 하느님에 대한 봉사에 있으며: "천사들은, 그들 전체 있음들과 함께, 하느님의 종들이고 전령들입니다" (CCC 329). 그리고, 다음과 같이, 사람에 대한 봉사에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유아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지켜보는 돌봄(care) 및 전구(intercession)에 의하여 둘러쌓여 있습니다" (CCC 336).

 

Finally, although the devil is a powerful figure, for he is a pure spirit, he cannot prevent the building up of the Kingdom of God, he cannot take God’s sheep away, because "the power of Satan is, nonetheless, not infinite" (CCC 395). We alone, with our freedom, can escape from Christ’s flock and flee from the Father’s good hands.

 

끝으로, 비록 악마(the devil)가 한 명의 힘있는 형상(a powerful figure)이나, 그가 한 명의 순수한 영(a pure spirit)이기에, 그는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증대 행위(building up)를 막을 수 없고, 그는 하느님의 양들을 빼앗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사탄의 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하지 않기" (CCC395) 때문입니다. 우리들 홀로(alone), 우리들의 자유로움(freedom)과 함께, 그리스도의 무리(flock)로부터 빠져나갈(escapte) 수 있을 뿐이고 그리하여 성부의 선한 손들로부터 도망갈(flee) 수 있을 뿐입니다.

 

The text of the Acts of the Apostles bears witness to this: "When they saw the crowds, the Jews, filled with jealousy, used blasphemies to contradict everything Paul said." What tremendous power is the power of freedom, that can render useless the mirabilia of the Good Shepherd!

 

사도행전의 본문은 바로 이 [대단히 잘못된] 도망 행위 쪽으로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그 군중을 보았을 때에, 유다인들은, 시기(jealousy)와 함께, 바오로가 말하였던 모든 것을 반박하기(contradict) 위하여 신성모독의 말(blasphemies)들을 사용하였다" (사도행전 13,45)참으로 무시무시한 힘(What tremendous power)이란 바로, 착한 목자의 이적(the mirabilia of the Good Shepherd)들을 쓸모없게 만들 수(can) 있는, 자유로움의 힘(the power of freedom)입니다!

(이상, 발췌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66. 교회는 왜 ‘보편적’이라고 불리는지요?
CCC 830-831, 868


교회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기 때문에, 보편적(catholic)입니다, 즉, 일반적(universal)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습니다.”(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교회는 이 믿음의 충만함(fullness) 및 전체성(totality)을 선포하고, 교회는 [(성경, 성전 및 교도권으로 구성된) 사도전승, 기도들, 은총들, 일곱 성사들, 미사, 성무일도, 전례, 교황, 주교들 및 사제들, 성인들 등을 포함하는] 구원의 수단(the means of salvation)들의 충만함을 지니고 있고 및 관리하고, 그리고 교회는 인류 전체 쪽으로 선교/전교/복음화를 위하여(on a mission to) 그리스도에 의하여 파견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east_4_c830.htm

 

CCCC 172. 왜 교회는 전체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까?
CCC 849-851 

 

교회는 그렇게 하여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마태오 복음서 28,19). 주님의 바로 이 선교 명령(missionary mandate of the Lord)은 당신의 아드님(즉, 성자) 및 성령을 파견하셨던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의 행위](eternal love)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1티모테오 2,4)가 그 이유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east_4_c849.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부록: 복습용 묵상 자료들 >>

 

%%%%%%%%%%

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복습 0부터 복습 3까지 매우 간략한 복습: 01:05-10:33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views_0-3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1:05-10:33 [즉, 01분05초-10분3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views_0-3_2377"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복습 2: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2:38[즉, 32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한문 문화권 안에는 없는 개념인 것으로 파악되기에,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

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의로움/올바름의 근거인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 03:08-04:20-05:37; 10:31-14:30; 47:26-51;15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ctitude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3:08-04:20-05:37; 10:31-14:30; 47:26-51;15 [즉, 03분08초-04분20초-05분37초; 10분31초-14분30초; 47분26초-51분15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ctitude_2401"]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즉,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영원한 법에 순응/부합하는, 마지막 끝 쪽으로 최적의 방향성 및 기울어짐과 함께 움직이도록 (어떤 방식, 시간, 혹은 정도에 있어) 합당하게 명해지고 있는 바(that which is being duly ordered to the last end, conforming to the eternal law)의 수용(受容)이라는 올바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제1689번 글 및 제1690번 글의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titude.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시기(jealousy), 질투(envy): 15:48-16:4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48-16:48 [즉, 15분48초-16분4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nvy_2340"]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 

복습 6: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ii) 교의적으로 ‘하느님의 외 아드님(성자, Son of God)’ = ‘(유일하신) 말씀(the Word)’ = ‘(영원한) 지혜(eternal Wisdom)’ = ‘로고스(Logos)’이 성립함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 해설의 각주에 주어져 있으니 참고하라. 혹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7.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

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구속/속량(redemption)은 구원(salvation)과 결코 논리적으로 등가인 개념이 아님: 07:10-08:40; 21:03-22:1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7:10-08:40; 21:03-22:16 [즉, 07분10초-08분40초; 21분03초-22분1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demption_2401"]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303.htm <----- 필청/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ix)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aled_character_23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22[즉, 55분22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aled_character"]

 

(a)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personal)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영혼(soul)을 그 형상(form)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훼손된, 자신의 형상인(formal cause)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 함이며, 그리고 바로 이 형상인의 완미한 회복(perfect recovery)을 위하여,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인호’(印號, the sealed, character)를 받아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b)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신성적(divine) 인과 관계의 지속적 형성에 있어, 인간/사람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자신의 형상인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만 비로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에의 참여자 및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자연계의 물리 법칙에서처럼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resonance)이, 하느님과 사람/인간 사이에 ‘영적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spiritual resonanc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라는 한 개의 기적(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또한 은총(grace)이라는 도움에 의하여 ‘악습(vices)들’이 ‘덕들’(virtues)로 교정되는 습관에 있어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어, 하느님 쪽으로 ‘회심’/‘윤리적으로 변화’(‘conversion‘ to God)라는 한 개의 윤리적 기적(a moral mi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유관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eakness_229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5/다해연중제5주일.mp4 <----- "은총"의 정의(definition): 12:00-12:41; 47:10-48:58; 50:50-56:0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04:11과 18:59에서 "팔삭둥이"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칠삭둥이"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18:59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형이하학적"으로 교체합니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2:00-12:41; 47:10-48:58; 50:50-56:06 [즉, 12분:00초-12분:41초; 47분:10초-48분:58초; 50분:50초-56분:0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2343"]

 

복습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인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출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1.htm [출처]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꼭 필독 권고 :

 

%%%%%%%%%%

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영광은 단계적이고 예수님의 부활 시점에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더해지는 영광은 곧 '새 창조'의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14:30-16:05; 51:15-52:2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6:05; 51:15-52:26 [즉, 14분30초-16분05초; 51분15초-52분2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lory_2401"]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번역 표현의 정의(definition),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i)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영광(glory)이 단계적임과 (ii) 예수님의 부활 시점에 성부 하느님에 의하여 예수님께 더해지는 영광이 곧 ‘새 장조’의 매우 중요한 원리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제 2017번 글을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

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필리피서 3,11에서 [그리스도교] 희망이란, 곧, 당사자인 나를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을 말한다;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이란 무엇을 말할까?: 16:05-17:47; 47:26-52:26-54:46-57:09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ivine_love_for_myself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6:05-17:47; 47:26-52:26-54:46-57:09 [즉, 16분05초-17분47초; 47분26초-52분26초-54분46초-57분0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ivine_love_for_myself_2401"]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필리피서 3,11에서 바오로가 말하는 바로 이 초자연적 희망(hope, 망덕)이 당사자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임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 

복습 14:

가.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4/나해그리스도왕대축일.mp4 [오류 정정: 이 동영상 중의 육성(肉聲) 설명에서, (i) 18:29-18:36[18분29초-18분36초] 사이에 말해진 "하스모니아 왕조""셀레우키드 왕조"로, (ii) 31:26-31:29[31분26초-31분29초] 사이에 말해진 "예수님께 제몰로"를, 교재 본문과 동일하게, "하느님께 제물로"로, 그리고 (iii) 33:50-35:23[33분50초-35분23초] 사이에 말해진 "순음력""태음력"으로, 바로 잡습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일_전례성경_학습자들을_위한_입문자료_모음_2007-10-09.pdf]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2305.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0-39:15[즉, 36분:30초-39분15초]를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 (*)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2305"]

 

%%%%%%%%%%

나.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4:31[즉, 04분31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

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그리스어 성경 용어인 '새'(new"의 두 가지 의미들: 06:37-07:10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wo_meanings_of_Greek_new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6:37-07:10 [즉, 06분37초-07분1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two_meanings_of_Greek_new_2401"]   

A.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wo_meanings_of_Greek_new_2387.htm <-----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교만(pride): 14:30-15: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ride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5:13 [즉, 14분30초-15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ride_2340"]

 

복습 22: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 
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허영(vainglory): 15:13-15:48; 기적, 망망, 허영: 30:08-37: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vainglor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13-15:48 30:08-37:13[즉, 15분13초-15분48초 30분:08초-37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vainglory_2340"]

 

(ii) ‘교만’의 딸(daughters)들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로는 소죄(venial sin)로 분류되는, ‘허영(vanity, vainglory)’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2_vainglory.htm <----- 필독 권고 

 

%%%%%%%%%% 

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복습 24: 나해 연중 제30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9/나해연중제30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1:00[즉, 11분0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cupiscenc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사욕편정’(慾偏情, concupiscence)이 죄가 아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사악할 사; 주: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수록된 옛 발음은 ) 낱글자를 사용하는 ‘慾偏情’이라는 한자표기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heresy)으로 단죄된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 동의하여, 바로 이 ‘사욕편정’이 죄임을 말하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부제: 죄가 아닌,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등에 대하여;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cupiscence_229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upiscence.htm

 

%%%%%  

복습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5,3; 루카 복음서 6,20에서, "복되도다" 혹은 "복되어라" 대신에, 1970년대"공동번역성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행복하여랴!"로 번역된 표현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임을 지적하는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essed_are_2350.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464.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0 300 2

추천  0

TAG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