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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순교영성: 이상한 주머니

2356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4-09

[순교영성] 이상한 주머니

 

 

- 권상연(야고보) 복자가 신주를 없애 버렸다는 소식에 관헌들이 그의 집을 수색해 뒤뜰에 묻힌 위패를 찾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탁희성 화백, 절두산 순교성지 제공)

 

 

《사학징의》 끝에 ‘요화사서소화기(妖畫邪書燒火記)’란 글이 실려 있습니다. 1801년 5월 29일 서학 죄인을 사형에 처한 직후, 압수해 온 천주교 관련 책자와 성물을 한데 모아 태우면서 그 품목을 목록으로 작성해 둔 것입니다.

 

대부분 교리서였지만 그중 이상한 주머니들에 관한 기록이 눈길을 끕니다. 한신애의 집 땅속에서 파낸 물건 중 작은 주머니 6개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머리카락과 나무 조각, 그리고 잡분말 같은 요사한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신애의 딸 조혜의는 공초에서 이것들이 몇 해 전 사학을 하다가 사형을 당한 사람의 머리카락과 목을 벨 때의 목침이라고 진술합니다.

 

정섭의 집에서도 작은 주머니 하나가 나왔는데, 역시 자잘한 나무 조각과 머리카락이 들어 있었습니다. 정섭은 그것을 성혈(聖血), 또는 흑진(黑珍)이라 불렀고, 신자들이 늘 몸에 차고 다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794년 12월에 아들이 위독한 것을 보고 윤유일이 자신이 찼던 주머니를 끌러주며 끓는 물에 담갔다가 마시면 금세 효험을 볼 수 있다고 했다던 바로 그 물건이었습니다.

 

그 머리카락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성혈 또는 흑진은 순교자의 피가 응고 되어 검은색으로 변한 것이었을 테고, 나무 조각은 순교자의 목이 얹혔던 목침이 칼에 맞아 조각난 부스러기였겠지요. 1794년 이전에 순교한 사람은 윤지충과 권상연뿐이었으니, 주머니 속 머리카락과 피의 주인공은 이 두 사람이 분명합니다.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두 사람이 사형당하고 9일 만에 장례 허락을 받아 교우들이 그들의 시신 앞에 서니 머리를 얹고 자른 나무토막과 판결문이 적힌 명패 위에 방금 전 흘린 것처럼 묽고 신선한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고 썼습니다. 당시는 엄동설한이라 그릇 속의 물이 얼어붙던 추위여서 사람들의 놀라움이 더 컸습니다. 교우들은 많은 손수건을 순교자의 피에 담가 그중 몇 조각을 북경 주교에게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의사조차 포기했던 환자가 피에 젖은 명패를 담갔던 물을 마시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았고, 죽어가던 사람 여럿이 피 묻은 손수건을 만지는 것만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자주 일어났다고 달레는 적었습니다.

 

윤지충, 권상연의 목이 잘리고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교회 지도자급 인물들은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목침의 나무 조각, 선혈이 묻은 천 조각 등이 든 주머니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순교자의 피 묻은 머리카락과 나무 조각들을 몸에 지니면 그들의 뜨거운 신심이 자신에게 그대로 전해진다고 믿었던 걸까요? 믿음이 나태해질 때마다 그 마음이 정수리 위로 찬물을 끼얹어 준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2025년 4월 6일(다해)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7면,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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