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영화관: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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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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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특집] 희망 영화관 :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
그날 오후 늦게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접했습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상실한다는 감각은 바삐 일상에 임하도록 강요받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감수성이기도 했거니와 저도 큰 차이가 없이 그저 먹먹함으로 잠시 가던 길을 멈추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다음 날에야 비로소 아주 소중한 내 마음속의 누군가를 상실했다는 슬픔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진실한 감각은 어떤 사태를 맞이했을 때 반응하는 감정으로 말미암아 평상시 그가 견지했던 그 대상과의 인격적 관계의 정도가 드러납니다. 전례력으로 부활 팔일 축제를 보내고 있을 무렵이었던 그날, 저는 어떤 ‘넘어섬’의 가닿을 수 없는 신앙을 경험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던”(루카 24,5) 그분의 제자들이 천사들의 선포로 “여기에 계시지 않는”(루카 24,6) 그분의 존재를 온 마음으로 벅차게 받아들인 그 사태가 파스카 신앙의 시발점이었듯이 저에게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잃은 슬픔이 더 이상 ‘여기’에 머물게 하지 않고 무언가를 넘어서게 하는 신앙으로 저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희망’이었습니다. 명확한 인간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그 신비스러운 신앙의 보고인 희망의 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간직했던 그의 말, 곧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한,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로마 5,5)라는 말씀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삶은 지긋지긋한 부조리와 점철된 삶의 고통으로 충분히 주눅 들어 있지만, 우리는 이 넘을 수 없어 보이는 경계를 넘어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그리
스도인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등장하는 마르타는 더 이상 희망할 수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한 라자로를 찾으신 예수님 앞에서 2천 년 교회의 역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넘어서는 희망’을 노래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지금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사실을.”(요한 11,22;필자 직역)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삶은 마르타가 고백한 바로 이 언어, 이 말, ‘그러나 지금도’를 상기하게 합니다. 이 세상이 함부로 규정한 모든 경계를 넘어서서 반어적으로 그 경계를 부수고 지금 이 순간 도래하는 하느님 섭리와 은총을 신앙하는 태도가 우리 믿음의 전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가장 잘 다룬 영화는 독일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의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2018년)입니다. 이 영화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 교회의 희망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자신의 안위에만 매달리느라 병든 교회보다는 가난한 거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느라 멍들고, 상처 나고, 흙먼지에 더럽혀진 교회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잃었지만, 죽은 이들 가운데 그분을 찾는 것이 아닌, 희망 안에서 그분을 볼 수 있게 되었음을 함께 기뻐합니다. 그 희망은 우리를 재촉합니다. 우리가 선명하게 그어 놓은 어떤 안위의 경계를 넘어 ‘그러나 지금도’ 우리 자신을 향해 격려하러 오시는 성령을 기다리며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주는, 바로 그 희망 말입니다.
[2025년 5월 25일(다해)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서울주보 4면, 김상용 도미니코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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