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희망(부활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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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5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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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희망(부활 신학)
현재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고통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때 ‘더 나은 미래’는 희망이 됩니다.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이 올 거라는 희망만 있으면 현재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할 수 있지요. 따라서 희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이며 목적을 위한 동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다계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인간의 희망을 철학적으로 깊이 사유했습니다. 그는 희망을 ‘아님(Nicht)’에서 ‘아직-아님(Noch-Nicht)’으로 전환하는 운동이라고 말했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시민들의 ‘참정권’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주어졌습니다. 당시 평민들과 여성, 노예들에게 참정권은 없었지만, 이들은 이를 ‘아직-아님’으로 받아들였고, 투쟁과 저항을 통해 그것을 현실로 이뤄냈습니다. 이처럼 블로흐에게 희망은 가능성을 무(無)의 상태가 아닌 열린 상태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좌절하거나 포기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발생합니다. 죽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죽음도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죽음 앞에서 우리가 꿈꾸는 모든 성취, 소유, 성공은 멈춰 버립니다. 한 개인의 죽음은 모든 가능성의 종말이며 존재의 소멸이기 때문입니다. 필연적으로 죽음을 앞둔 인간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까요?
죽음은 ‘아직 아님’이 될 수 없기에, 그 극복은 부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에, 부활이 사라지지 않는 영원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활이 주는 희망을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부활을 체험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떠올려 봅시다. 그들은 부활을 경험한 이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부활의 경험은 영원한 삶이라는 미래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이 변화는 삶 전체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시대처럼 보이지만, 현대인들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소멸할 세속적 미래에서 희망의 근원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활의 미래를 희망의 근원으로 삼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블로흐가 말한 것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이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할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실재하는 희망이며, 손에 닿지 않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새롭게 하는 힘입니다.
부활의 약속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미래를 보장받은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현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에게 다가와 영원을 향한 희망을 열어 주고,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2025년 5월 25일(다해)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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