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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과 자유

5709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5-28

[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과 자유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령의 신비로움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서는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지만 영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바람은 자유의 상징입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성령께서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내면으로부터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깊은 평화를 느낄 때 비로소 그분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바람은 가둬둘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자유를 속박하는 모든 시도를 반대하십니다. 성령께서 사랑이시란 것도 이 자유로운 바람과 상통합니다. 사랑은 자유로울 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주시는 성령은 율법의 종살이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십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은 이제 속박된 종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녀입니다.

 

영으로 태어난 이들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새처럼 자유롭습니다. 이때 새는 자신의 힘으로 저 높은 창공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순응하여 날아오릅니다.

 

우리는 하늘로 날아오를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날개는 작고 연약합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바로 바람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 바람과 같이 자유롭다고 하십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려하고 미지의 곳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성령의 바람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을 자주 거부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우리의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끄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바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바람이 이끄는 데로 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바람이 원하는 방향과 반대로 날으려 해 봐야 우리는 지상으로 추락할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이 불도록 청하지 맙시다. 기도할 때 ‘내’가 기도하려 하지 말고, ‘올바로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로마 8,26)께서 이끄시는 대로 나를 맡겨야 합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은 바람이시고, 살아있는 불이시며, 생명을 주는 물이십니다. 그러나 바람은 가두면 멈추고, 불은 가두면 꺼지고, 물은 가두면 썩어 버립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바람이신 성령을 우리 뜻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영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리고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바람이 어디로 이끌던지 계산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복자 아기예수의 마리 에우젠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령은 무한한 화로이며,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바다이시다. 성령은 움직임 자체이시며 스스로 확산되는 사랑이시다 ⋯ 성령에 의해 실려 가도록 스스로를 내어 맡겨야 한다. 우리는 이 성령의 움직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성령의 움직임 안으로 뛰어들어 그 바람을 타고 높이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자녀가 됩시다.

 

[2025년 5월 25일(다해)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하성훈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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