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령] 위령기도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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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0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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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위령기도 해설 (1)
“어제는 그의 차례요 오늘은 네 차례다.”(집회 38,22)
1.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히브 9,27)이어서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런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라고 했는데, “기도는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들어 높이는 것이며, 하느님께 은혜를 청하는 것”(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입니다. 또한 “저에게 기도는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그러므로 우리는 늘 살아 있는 사람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주님, ○○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2. 우리도 새로운 삶을!
구약성경에 ‘사라의 죽음’(창세 23,2), ‘사울의 장례’(2사무 2,4) 등이 기록되어 있고, “저질러진 죄를 완전히 용서해 달라고 탄원하며 간청하는”(2마카 12,39-45) 위령기도가 남아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복음에는 예수님의 죽음(마태 27,50)‧염습(요한 19,40)‧안장(마르 15,46) 등을 전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라고 고백하면서 “그날에 주님께서 허락하시어 그가 주님에게서 자비를 얻기 바랍니다.”(2티모 1,18)라는 기도를 남겼습니다.
3. 주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
초대교회는 이스라엘의 전통대로 옷을 찢고(창세 37,34)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우는(2사무 15,30) 이스라엘인의 장례 관습을 따랐고, 사도들이 이방인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한 뒤에는 이교(異敎)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부활 신앙이 중심인 그리스도교 장례를 정착시켰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고통을 이기고 승리해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장례식에서 슬픔과 설움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아리스티데스)라며 부활의 희망 속에서 주님께 돌아가는 영혼을 위해 찬미가와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5세기부터 말씀 전례를 중심으로 장례를 거행했습니다. 죽음은 부활의 시작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표지(標識)로 산 이와 죽은 이가 입을 맞추었으며, 시신에 기름을 바르면서 부활에 대한 희망을 드러냈습니다. 중세에는 선종한 이의 집에서 성당까지 행렬하며 노래했으며, 미사를 봉헌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연상케 하는 시편 113(114-115)‧117(118)편을 부르며 묘지로 행렬했습니다. “천사들이 그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며, 순교자들이 그를 당신 나라로 영광스럽게 맞아들이게 하소서.”라는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죽은 이를 하느님의 나라로 받아주시도록 간청했습니다.
8세기부터 하느님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참회와 속죄가 장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임종하는 이에게 재를 뿌리면서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간청하고, 성인들의 전구(轉求)를 비는 성인호칭기도를 바쳤으며, 운명하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장례미사를 봉헌한 다음 시편을 노래하면서 묘지까지 행렬해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자,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고 Rituale Romanum(로마 예식서)을 반포(頒布)했습니다. 죽은 이의 집에서 성당으로 향하는 운구행렬을 중심으로 거행하는 첫째 예식, 성당 안에서 거행하는 둘째 예식, 묘지로 향하는 행렬을 포함해 묘지에서 거행하는 셋째 예식 등으로 장례를 확립했으며, ‘의로운 분노의 날’과 ‘나를 구하소서’ 등의 속죄 기도와 함께 시편과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부활의 상징인 흰색 대신 참회와 속죄의 상징인 검은색을 사용하고,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 앞에서 죄의 용서를 간구하며, ‘죽은 영혼을 정화하기 위한’ 사도 예절을 거행했습니다.
4. 明(명)‧淸(청) 대의 중국교회와 조선교회의 위령기도
명‧청 대에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이 간행한 서적 가운데 장례 예식서는 주로 부글리오 신부가 편찬했습니다. 그는 루이스 체르퀘이라 주교가 저술한 ‘거룩한 로마 교회 예식에 의한 성사 집행 지침’을 한문으로 번역한 ‘성사 예전’을 발간했습니다. 평소 사제를 자유롭게 만나기 힘든 중국 신자들의 처지를 고려해 평신도만으로 교회의 장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선종예영예전’도 집필해 이 책의 기도들이 ‘천주성교일과’, ‘수진일과’ 등의 기도서에 실렸습니다. 또한 Rituale Romanum(로마 예식서)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 중국교회의 실정에 맞게 편찬한 ‘성교례규’도 펴냈습니다.
조선교회는 신분을 초월한 평등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한문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양반‧중인은 한문 교리서‧기도서로 교리를 익히고 기도했지만, 한문을 모르는 상민‧천민은 교회 지도자들이 우리말로 번역한 교리서‧기도서로 교리를 배우고 기도했습니다. 앵베르 주교가 신앙생활에 긴요한 교리서‧기도서를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이어 다블뤼 주교와 한문에 능한 조선 교우들이 중국교회의 서적을 번역하고 조선의 실정에 맞게 편집한 기도서 ‘텬쥬셩교공과’와 장례 예식서 ‘텬쥬셩교례규’ 등을 발간했습니다. 이로써 모진 박해로 사제를 거의 만날 수 없던 조선교회의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우리말로 된 천주교 예법과 기도로 장례를 거행하고 위령기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장례 예식
20세기가 되자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졌고, 교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고난받는 인류에게 하느님 은총의 전달자로 적극 다가가야 한다는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시대정신을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고,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희망을 드러내는 Ordo Exsequiarum(장례 예식서)을 펴냈습니다. 초대교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반영해 사도 예절을 ‘죽은 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하느님께 죽은 이의 영원한 생명을 청하는 예식’인 고별식으로 바꾸고 화장(火葬)을 허용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따라 ‘텬쥬셩교공과’를 개정한 ‘가톨릭 기도서’를 간행함으로써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맞는 기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례 예식서인 ‘텬쥬셩교례규’를 오랫동안 개정하지 못하다가 2003년 Rituale Romanum(로마 예식서)에 근거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장례 전통과 문화를 반영한 ‘상장 예식’을 발간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7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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