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교황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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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5-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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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4세 교황 성하의
2025년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
(2025년 10월 4-5일)
이주민, 희망의 선교사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선임 교황님의 바람에 따라 ‘이주민들의 희년’과 ‘선교 분야의 희년’에 맞추어 지내게 된 제111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은 우리에게 희망과 이주와 선교의 연관성에 관하여 성찰할 기회를 줍니다.
오늘날 지구촌의 상황은 안타깝게도 전쟁과 폭력, 불의, 극심한 기상 이변으로 얼룩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피난처를 찾아 고향을 떠나도록 내몰리는 실정입니다. 한정된 집단의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만연하여 책임 분담, 다자 협력, 공동선 추구, 온 인류 가족의 선익을 위한 국제 연대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군비 경쟁 가능성과 핵무기를 포함한 신무기 개발, 계속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악영향에 대한 성찰 부족, 그리고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의 여파로, 현재와 미래의 도전 과제는 점점 더 막중해지고 있습니다.
위협적인 시나리오와 지구 황폐화의 가능성에 직면하여, 평화가 넘치는 미래, 모든 이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미래를 향한 갈망이 사람들 마음속에 점점 더 자라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미래는 인류와 다른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 계획에서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이는 예언자들이 미리 내다본 메시아 시대입니다. “나이가 많아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든 남녀 노인들이 다시 예루살렘 광장마다 앉아 쉬리라. 도성의 광장마다 뛰노는 소년 소녀들로 가득 차리라. …… 정녕 평화의 씨앗이 뿌려지리라. 포도나무는 열매를 내주고 땅은 소출을 내주며 하늘은 이슬을 내주리라”(즈카 8,4-5.12). 이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마르 1,15; 루카 17,21 참조). 우리는 그 미래가 완전히 실현되리라 믿고 희망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약속에 성실하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희망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넣어 주신 행복을 바라는 덕[입니다]. 희망은 사람들의 활동을 고취시키는 갈망을 받아들[입니다]”(1818항). 더 나아가, 행복의 추구 그리고 출신 지역 밖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전망은 분명 오늘날 사람들이 이주하는 주된 동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주와 희망의 이러한 관계는 우리 시대의 많은 이주 경험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많은 이주민, 난민과 실향민은 희망의 특권적 증인입니다. 실제로, 온전한 인간 발전과 행복의 가능성이 언뜻 비치는 미래를 찾아 나선 그들은 역경에 맞닥뜨려도 다시 일어나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날마다 이 희망을 입증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긴 여정을 걸어간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이 그들의 삶에서 반복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당신 백성에 앞서 나아가실 제, 당신께서 사막을 행진하실 제, 땅이 뒤흔들리고, 하늘마저 물이 되어 쏟아졌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시나이의 그분,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당신께서는 넉넉한 비를 뿌리시어, 메마른 당신 상속의 땅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당신의 무리가 그 위에 살고 있으니, 하느님, 당신께서 가련한 이를 위하여, 호의로 마련하신 것입니다”(시편 68[67],8-11).
전쟁과 불의로 어두워진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조차, 이주민과 난민은 희망의 전령으로 서 있습니다. 이들의 용기와 강인함은 신앙에 대한 영웅적 증거입니다. 신앙은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것 너머를 보고 이들에게 현대의 다양한 이주 경로에서 죽음을 이기는 힘을 줍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보호를 신뢰하며 온갖 위험을 직면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던 그 경험과의 뚜렷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새잡이의 그물에서, 위험한 흑사병에서, 너를 구하여 주시리라.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시편 91[90],3-6).
이주민과 난민은, 교회가 궁극적 본향을 향하여 영원한 여정을 떠나며 대신덕인 희망으로 지탱되는 자신의 순례적 차원을 상기하게 해 줍니다. 교회가 ‘안주하고픈’ 유혹에 굴복할 때마다, ‘순례하는 도성’(civitas peregrine), 곧 천상 본향을 향하여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이 되기를 멈출 때마다(성 아우구스티노, 「신국론」[De Civitate Dei], 14-16 참조), 교회는 더 이상 ‘세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하게’ 됩니다(요한 15,19 참조). 이러한 유혹은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안에 만연하여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교회에 이렇게 상기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0-21).
특히 오늘날 가톨릭 이주민과 난민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나라에서 희망의 선교사가 되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가닿지 못한 곳에서 믿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수도 있고 일상의 삶과 공동의 가치 추구에 바탕을 둔 종교간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의 영적 열성과 활력으로, 영적 사막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경직되고 침체된 교회 공동체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존재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진정한 복으로, 당신 교회에 새로운 힘과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마음을 여는 기회로 인식되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복음화를 위한 첫 번째 요소는 증거입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이를 강조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증거를 보이도록 부름받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은 참된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주해 간 나라에서 이주민들이 져야 할 책임을 생각합니다”(권고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 21항). 이것이 바로 이주민들이 수행하는 선교 사명, 곧 참다운 ‘이주민 사명’(missio migratium)입니다. 이 선교 사명을 위해서는 교회들 사이의 효과적인 협력을 통한 적절한 준비와 지속적인 지원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공동체들 또한 희망의 생생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지닌 존엄성을 인정받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입니다. 그리하여 이주민과 난민은 한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이며 형제자매로 인정받아, 공동체 생활에 온전히 참여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가 모든 이주민과 난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이번 ‘이주민들의 희년’을 맞이하여, 저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든 이와 그들을 동반하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는 이들을 이주민들의 위로이신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 보호에 맡겨 드립니다. 동정 마리아께서 그들 마음속에 희망이 살아 있도록 지켜 주시고, 우리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는 참된 본향인 하느님 나라를 더욱 닮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헌신하도록 그들을 북돋워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바티칸에서
2025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레오 14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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