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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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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과 애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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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paceminterra] 쪽지 캡슐

2007-11-22 ㅣ No.114806

요즘 틈틈이 포담 대학교 (예수회 설립) 웹싸이트에 마련되어 있는 고대 중세 문헌 원문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틴어나 프랑스어 영역본(英譯本)들을 읽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http://www.fordham.edu/halsall/sbook.html.  우리나라는 신학대전도 완역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대부분 라틴어로 되어 있는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여 누구라도 읽을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국에 비해 교세가 크지 않은 일본도 완역된 신학대전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양적으로 성장한 한국 가톨릭 교회에 질적인 성장을 가져오려면 보다 가톨릭 고전(古典)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제는 1170년 12월 29일 켄터베리 성당에서 순교하신 토마스 베켓 주교의 장엄한 순교 장면이 담긴 글을 읽고 감명받았습니다.  당시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과 교회 사이에 분쟁이 있었는데 영국의 경우는 헨리 2세와 교회와 갈등 상황에 있었습니다.  파문을 철회하지 않으면 살해하겠다는 위협에 굴하지 않던 베켓 주교는 기사(騎士)들의 칼 아래 팔과 목을 절단당합니다.  뇌가 튀어나오는 등의 장면이 생경하게 묘사되어 정말 실감이 났습니다.  켄터베리 성당은 제프리 쵸서의 <켄터베리 이야기>에 순례 목적지로 나오는 바로 그 성당입니다.

그 외에도 '쟌 다르크'에 관한 공판 기록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성 미카엘을 보았고 성녀 가타리나와 마가렛의 목소리를 듣고 영국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하는 사명을 받은 성녀의 공판 기록과 관련 공식 서한들을 보고 가슴 뭉클한 무엇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정당방위라 하지만 하느님께서 평화적인 방법이 아닌 '전쟁'으로써 프랑스를 구하시겠다는 메시지는 오늘날의 교회라 하더라도 단죄했을 법한 내용으로 보입니다.  쟌 다르크가 보고 들었다는 환시나 환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게시판이나 여러 가톨릭 게시판들에서 '나주 율리아'에 대해 많은 성토를 하고 계신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주교님의 명에 순명하여 그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애덕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그를 험한 말로 욕하고 단죄하는 태도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저에 대해 어떤 욕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개인적으로 견지하고 싶은 입장은 그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주님께 맡겨 드려야 하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특히 쟌 다르크의 공판 기록과 당시 자문을 맡은 파리 대학교 교수 신학자들이 교황님과 추기경단에 보낸 서한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해가 있을 듯 싶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교님에 순명하는 자세 못지 않게' 애덕을 잃지 않는 '보다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입니다.


쟌 다르크에 대한 공판 상황과 결과를 교황님과 추기경단에 알리는 파리 대학교의 서한입니다.

 


 

 

파리 대학교가 교황과 황제와 추기경단에 보낸 편지 사본들 

 교황 성하, 저희는 거짓 예언자들과 악인들이 퍼뜨리는 오류의 독(毒)이 성교회를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하려는 깨어있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러 나라의 박사들은 이러한 위험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더 이상 건전한 믿음을 견지하지 않고 진리로부터 멀어지며 우화(愚話)들에 빠질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할 수만 있으면 선택된 이들까지 속이려고 표징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승리의 땅의 복된 사람들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다 자랑하는 새로운 예언자들이 나타나 신기하고 특이한 일들을 감행하면서  인간의 생각의 예리함을 넘는 미래와 일을 사람들에게 알릴 때, 사람들이 그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저희의 모든 힘을 다하여 그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목적인 돌봄이 시의적절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靈)들을 확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신기한 일과 이상한 교리들을 너무도 쉽게 믿어 버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승인과 동의 없이 마음대로 초자연적인 계시들을 날조하길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의 권위와 성인들의 지위를 찬탈할 수 있다면, 이러한 속임수로 가득찬 허구를 퍼뜨리는 간교하고 위험한 전파자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감염시키는 것은 진정 쉬운 일일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 성하,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사제와 보봐의 주교와 교황청이 프랑스 왕국에 임명한 이단 오류 종교 대리 재판관이 최근에 그리스도 종교의 보호를 위해 보여준 깨어있는 근면함은 지극히 치하할만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남성의 복장과 갑옷을 입고 있다가 보봐 교구 경계에서 체포되었고 신성한 계시들을 거짓되이 날조하는 정통 신앙을 거스르는 중죄로 그분들 앞에서 사법적 고소를 당한 한 여인을 면밀하게 조사하여 그녀의 행동의 전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상당한 고초(苦楚)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판 과정에서 그분들께서 저희와 접촉하여 그녀가 공인한 특정 진술들에 대한 저희의 의견을 요청한 이후, 정통 신앙을 찬미하기 위한 일을 침묵으로써 덮어버렸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저희가 접수한 내용을 교황 성하께 보고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말씀드린 재판관들께서 저희에게 요청하신 대로, 여러 고위 성직자들이 근면하게 조사하여 저울질하였고 교회법과 세속법에 정통한 박사들과 실무진이 그에 대해 성숙하게 고찰한 자칭 ‘여종 쟌’ (Jeanne the Maid) 이라 하는 이 여인이 공판에서 고백한 많은 진술들이 저희 대학의 결정과 판단에 위임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여러 모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오류를 조장하여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악마를 불러들이며 하느님과 성인들을 모독하는 우상숭배적이고 미신적인 여예언자로 판명되었습니다.  너무도 많은 죄악의 간악한 올가미에 사로잡힌 이러한 비참한 죄인의 영혼에 대한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 찬 재판관들은 그녀가 오류의 길로부터 돌아와 거룩한 어머니 교회의 판단에 자신을 맞길 수 있도록 잦은 경고와 애덕(愛德)의 호소로써 모든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사악한 영이 너무도 그녀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그녀는 굳어진 마음으로 저희의 유익한 훈계를 거절했고 어떠한 고위 성직자나 거룩한 총회에 대한 순종도 거부했으며 하느님 이외에 다른 재판관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말씀드린 재판관들의 인내로운 노고는 그녀의 무엄(無嚴)함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어서 그녀는 그분들의 건전한 조언에 귀 기울여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하는 가운데 자신의 오류들을 단념한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녀는 손수 포기와 철회 각서에 서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이 비참한 여인은 또다시 이전의 어리석음에 빠져 자신이 부정했던 오류들을 다시 고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말씀드린 재판관들은 최종 판결에서 그녀를 재발적(再發的)인 이단자로 단죄하여 세속 권력의 재판에 넘겼습니다.  이제 자신의 몸이 파괴될 날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여인은 자신 앞에 나타났다 진술한 이러한 영들로부터 조롱과 속임을 당했다고 모든 이들에게 비탄에 찬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 뉘우치면서 모든 이들의 용서를 청하며 이 삶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모든 이들은 이 여인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이 날조하여 한동안 이 그리스도교 왕국에 퍼져있던 조작(造作)들에 너무도 경박한 믿음을 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두려운 것인지 분명히 인식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종교의 모든 신자들은 자신의 갈망을 좇아 성급히 행동하지 말 것이며 미신적인 여인의 거짓된 이야기들을 믿기보다 교회의 가르침과 고위 성직자들의 지침에 귀기울여야 함을 그러한 슬픈 사례로써 주의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주님의 권위를 부여받지 않은 마녀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함으로써 경박한 사람들이 일찌기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가서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 명하신 교회의 사목자와 박사들보다도 그러한 거짓 예언을 서슴지 않고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도록 저희가 방조하는 잘못을 하게 된다면 종말이 다가와 종교는 멸망할 것이고 신앙이 부패하여 교회가 짓밟히게 될 것이며 사탄의 부도덕함이 전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천상복락의 행복한 지도 아래 그를 차단하시고 당신의 양떼들을 오류와 오염으로부터 지키려 하실 것입니다.

 

추기경단에 보내는 서한
 
존경하올 추기경님들께,

저희는 이 여인이 이 왕국에서 저지른 추문에 대한 단죄에 대해 저희가 듣고 알고 있는 바를 교황님께 알려드리는 것이 신앙과 그리스도교 종교에 유익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교황님께 “교황성하, 저희는 … 깨어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존경하는 추기경님들이시여,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교황청의 이토록 숭고한 지위에 오르게 하시어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특별히 신앙의 완전성에 관한 일을 살피도록 하시었기에 저희는 이러한 사안을 실상 세상의 빛이시고 아무런 유사(類似) 진리도 감추어 모르고 계시도록 해서는 안될 당신들께 알리지 않는 것이 전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관한 일에서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당신들로부터 유익한 지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당신들을 거룩한 교회의 구원에 이르는 행복 속에 있을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빕니다!

원문읽기: http://www.fordham.edu/halsall/basis/joanofarc-tria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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