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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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7주간 토요일 복음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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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1-05-22 ㅣ No.147031

 

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두 가지의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흥미로운 건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두 개의 다른 언어가 명사의 의미로, 의미적인 측면에서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건 사실 희박한 경우입니다. 먼저 길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대표적인 의미입니다. 그다음으로는 방법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길이라는 의미는 추상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나의 길이라고 했을 때 길은 어떤 의미인가요? 바로 자기가 걸어가야 하는 방향이라든지, 인생의 향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의미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과정을 보면 이해가 좀 잘 될 것입니다.

 

처음엔 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납니다. 그런 자격을 계속 유지하면서 가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하느님께 자신의 존재를 봉헌하기 위해서 신품성사를 통해서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머지는 혼인을 하거나 아니면 독신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 정해져 있다면, 사제가 되어서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서 다시 환속을 하는 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해져 있다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도 하느님의 소관은 아닌 것으로 해석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린 인간은 어떤 경우에서도 하느님께서 자유의지를 태초에부터 부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만 지면 될 일입니다. 불교에서는 책임을 다른 표현으로 과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비슷한 의미이지만 조금 뉘앙스가 차이납니다. 과보는 마치 사필귀정처럼 거의 당연히 그렇게 될 경우가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실한 불자는 자신이 한 행위에 따라 어떤 과보가 따를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이미 어떤 일은 선택할 때는 과보를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대개 보면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는 그걸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이미 결과가 나왔을 때, 그냥 그때 인정하고 수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주교에서 대세를 줄 때도 기본적으로 알려주는 교리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상선벌악입니다. 이건 머리로 다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히 벌이라는 수단이 따른다는 걸 알지만 말입니다. 왜 그걸 알면서 그런 선택을 할까요? 이미 그 벌이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유혹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혹은 순간이지만 고통은 영원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혹에 넘어가는 게 사람이라는 탈을 쓴 나약한 인간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베드로 사도를 향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요지는,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은 신경을 쓰지 말고 자기가 갈 길이 있으면 자기의 길만 잘 가면 된다는 그런 요지로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사용된 것일까요? 남이야 죽든 말든, 내 갈 길만 가면 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남도 생각해야 하지만 우선은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을 제대로 가면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은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남의 길, 여기서는 문맥적인 의미로 봐서는 신앙의 길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신앙의 길은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길이 있을 거라서 목적지는 같아도 가는 루트가 다 다르기 때문에, 굳이 남의 그 루트가 어떤지는 알 필요도 없다는 그런 의미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다만 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은 저마다 다 다릅니다. 이처럼 신앙의 길은 자기가 가야 하는 자기만의 길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가야 할 길만이라도 잘 이탈하지 않고 가는 게 우선일 것입니다.

 

적십자 활동을 중학교 때부터 성인이 되도록 하면서, 특히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인명구조 활동에 봉사를 하면서 교육을 받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남의 생명도 구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 자신의 생명에 안전조치를 제일 우선해야 하는 것을 교육을 통해 많이 습득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생명도 안전해야 남도 구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도 완전히 이와 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를 한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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