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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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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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6-16 ㅣ No.147605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2021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복음 마태 6,1-6.16-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소설책을 읽다가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이곳에 그 내용의 일부를 옮겨봅니다.

소설 속의 아버지가 시험에서

빵점 맞은 아들에게 문제를 냅니다.

“1,000 더하기 0은 몇 일까?” “1,000이요.”

맞아그런데 왜 1,000이지?”

“0은 있으나 마나 한 수니까.”

두 번째 문제, 1,000 빼기 0은 몇 일까?”

“1,000이요.”

맞아왜 1,000이지?”

“0은 있으나 마나 한 수니까.”

마지막 문제, 1,000 곱하기 0

몇 일까?” “0이요.”

“0은 있으나 마나 한 숫자인데 왜 정답이 0일까?”

그러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0은 있으나 마나 한 숫자가 아니야.

빵점 맞아도 빵점을 맞은 게 아냐.

0이 아무 것도 아닌 수가 아닌 것처럼 말이지.”

우리는 종종 있으나 마나 한 행동으로

여기는 것들이 있습니다쓸모없는 행동이라고,

아무런 가치도 없다면서 시간만 낭비한 것처럼

여깁니다그러나 ‘0’이라는 숫자가 아무것도

아닌 전부인 숫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가치 없다고 평가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위해

너무나 필요한 그래서 전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선기도단식과 같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정성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많은 사람이 이 자선과 기도,

단식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인정받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에만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알아줘야 가치 있는 것처럼,

또 그렇게 알아줘야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버려야 한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행동이 아닌,

하느님께 보이기 위한 행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도 모르시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하느님은

숨은 일도 보시기에당신을 향한 그 모든 자선,

기도단식을 기쁘게 받아들이시고 곧바로

커다란 은총과 사랑으로 갚아 주십니다.

‘0’이라는 숫자가 있으나 마나 한 숫자처럼

보이지만모든 숫자를 ‘0’으로 만들 만큼

힘 있는 숫자입니다마찬가지로 자선,

기도단식도 사람들이 모르기에 ‘0’처럼

하나 마나 한 행동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숫자 ‘0’처럼 자신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행동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자선과 기도 그리고 단식에 대해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만약 모든 사람의 충고대로 집을 짓는다면

비뚤어진 집을 짓게 될 것이다(덴마크 속담)

주님을 함부로 판단하지 맙시다.

예전에 전철을 타면,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라는 팻말을 들고 선교하는 개신교 신자를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사람을 보기가 힘듭니다.

사람들이 이런 말을 이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분법으로 신앙을 표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느님 나라에 가고,

믿지 않으면 불붙은 지옥에 가게 될까요?

믿지 않지만 정말로 천사 같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을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믿지 않았으니 너는 무조건 지옥이다!”라고

사랑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성지에서 보았던 광경입니다.

아이가 마구 울고 있었습니다.

아빠가 어르면서 울음을 멈추게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자매님이 아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울지 않아야 착한 아이지.”

곧바로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왜 안 울면 착한 아이일까요?

이분처럼 우리 역시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는

선악을 말하고 판단할 때가 많았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조그만 분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껴안을 정도로 커다란 분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크신 하느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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