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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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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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2-07-04 ㅣ No.156103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가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고, 복음을 전하셨고, 죽으셨지만 부활하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입니다. 성모님의 순명과 요셉 성인의 순명이 만나서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곳입니다. 나자렛은 어린 시절 예수님께서 부모님께 순명하며 꿈을 키운 곳입니다. 요르단 강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으로부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선포하신 곳입니다. 광야는 예수님께서 40일간 단식하시고,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았지만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친 곳입니다. 가나는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청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표징을 일으킨 곳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곳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곳입니다. 많은 표징과 가르침으로 새로운 권위를 드러내신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입니다. 무참하게 굴욕을 받으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곳입니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신앙인들에게는 기쁨입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입니다. 성지를 순례했다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면 좋겠습니다. 백견이 불여일행이기 때문입니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곳은 솔뫼입니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청청하다는 뜻을 지닌 송산(松山)의 우리말입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고 했던 솔뫼는 김대건 성인이 태어난 생가 터일 뿐 아니라 증조부 김진후(비오, 1814년 순교)를 시작으로 4대에 걸쳐 순교자 11위를 낸 성지입니다. 한국을 방문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솔뫼를 방문하셨습니다. 성지는 2004년에 복원한 성인의 생가와 함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관, 소나무 그늘 아래 서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및 기념탑 등으로 조성됐습니다. 기념관은 성당을 비롯해 성인의 생애와 사목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김대건관, 대전교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내포교회관, 기증 유품실, 소영상관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김대건 성인의 삶과 신앙을 보고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솔뫼에서 태어난 성인이 순교로 생을 마감한 곳은 서울 새남터입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분은 김대건 신부님뿐만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순교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이곳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1명 가운데 8명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와 성 모방샤스탕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새남터에는 현재 이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전통 한옥 양식으로 세워진 새남터성당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은 2006년 문을 연 '새남터 기념관'입니다. 모두 4개 공간으로 이뤄진 기념관에서 '도입 공간'(입구)은 새남터성지 역사와 103위성인 성화를, '전시 공간'은 천주교 수용과 창설, 박해 및 순교과정 유물들을 전시했습니다. '추모의 장'은 김대건 신부 등 성직자 14인의 흉상과 부조 및 추모대가 있습니다. '체험 및 교육 공간'은 김대건 성인 유해를 모신 조배실과 영상물 상영실, 박해 체험 공간 등으로 꾸며졌습니다.

 

경기도 안성 산골짜기에 있는 미리내는 성인이 묻힌 곳입니다. 당시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 신부님의 유해를 거둔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성인이 순교한 지 40일이 지난 후 목숨을 걸고 성인 유해를 거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민식 빈첸시오(18291921)입니다. 미리내는 다름 아닌 이민식의 고향입니다. 성인이 미리내에 묻힌 사연입니다. 미리내(은하수의 우리말)는 박해를 피해 숨어 살던 신자들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이 달빛 아래 냇물과 어우러져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경당 앞에 있는 네 개의 묘 가운데 성인의 묘는 왼쪽에서 두 번째입니다. 성인의 왼쪽은 강도영 신부, 오른쪽은 차례대로 페레올 주교최문식 신부의 묘입니다. 묘역 위편에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술라와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있습니다.

 

성인이 사제품을 받고 조선에 들어와 붙잡힐 때까지 활동한 기간은 반년 남짓입니다. 짧았던 만큼 성인의 자취가 남은 곳은 많지 않습니다. 나바위와 용수리 포구는 성인의 조선 입국과 관련된 성지입니다. 나바위는 성인이 1845년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함께 서해를 통해 귀국하면서 첫발을 디딘 곳입니다. 이곳에는 성인 일행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을 기념해 세운 나바위성당이 있습니다. 일행은 나바위에 도착하기 전 바다에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표류하던 일행이 도착한 곳이 바로 제주도 용수리 포구입니다. 일행은 이곳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배를 수리하고 먹을 것을 구한 뒤 다시 뱃길에 올랐습니다. 제주교구는 이를 기념해 용수리 해안에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관과 기념 성당을 세웠고, 성인 일행이 타고 왔던 라파엘호를 복원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옥중에서 신자들에게, 주교님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신부님의 굳은 신앙과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의 편지 중에서 최양업 신부님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머지않아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서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모든 공경하올 신부님들께도 인사드려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로 하여금 모든 혹독한 형벌을 끝까지 용감하게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여, 잘 있게. 이후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그리고 내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기를 그대에게 부탁하네.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조선 선교지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편안하고 쉬운 길보다는 어렵고 힘든 길 그러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길은 때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을 줍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키워주고 그러한 끈기는 영원한 삶을 갈망하는 희망을 낳습니다. 또한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또한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 걸어가신 신앙의 길, 희생의 길, 순교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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