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0일 (토)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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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사계 '겨울' _ 클라라주미 강 & 드레스덴슈타츠카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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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원 [lion77] 쪽지 캡슐

2022-07-06 ㅣ No.32361



 

 


album,comment,  

 

클라라 주미 강,

 

어렸을 때의 기억은, 연주할 때 행복했어요.

다섯 살부터 협연을 했고, 독일에서 방송도 많이 타고,

분더킨트라는 타이틀로 큰 주목을 받았죠. 아버지는 유럽에서 유명하셨으니까

그 딸이 바이올린을 잘 켠다더라 하면서 유명세를 탔어요(강주미는 1987년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바그너 전문가수로 유럽에서 활약했던 현 서울대 음대 교수인 베이스 강병운, 어머니는 소프라노 한민희 씨다).

다만 싫었던 건, 가족 전체가 다 음악을 하는 점.

저는 언니ㆍ오빠 밑에 셋째로 태어났고,

제 아래로 나이차가 나는 남동생이 있어요.

언니는 첫째라서, 오빠는 남자라서, 동생은 아기라서 더 챙김을 받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난 바이올린밖에 없어’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부모님의 음악적 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건 저고,

 

아버지가 서울대에서 가르치게 됐을 때 나머지 가족이 미국, 줄리아드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된 것도

저 때문이었는데 말이에요. 음악을 하니까 또래랑 놀지 못하는 것도 싫었지만,

너무 많은 코멘트가 있다는 게 제일 싫었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성악을 하셔서 그림이 크세요.

표정부터 제스처까지,

무대 위 모든 것에 대해 ‘좋은 잔소리’가 많으셨죠.
 
결국은 소리, 깊이에 관한 주문이었어요.

저는 두세 살부터 바이로이트에 가서 엄마 무릎에 앉아

아버지가 등장하는 세 시간짜리 바그너 오페라를 들으며 컸어요.

 

그때 무겁고 깊이 있는 음악을 들었던 게 지금까지 영향을 끼쳐요.

내고 싶은 소리가 너무 많은데, 바이올린 하나로는 부족하단 생각을 해요.

화려하고 깊은 소리를 다 내고 싶어 하니까,

 

가끔은 선생님들께 “너무 많아, 조잡해”라는 얘기를 듣곤 했죠.

소리에 집착하는 건 템포에도 영향을 끼쳐요.

곧 일본에서 발매될 음반의 에디팅을 어제 들었는데,

비에니아프스키 폴로네즈가 너무 느린 거예요.

 

이 음도 선명하게, 이 음도 깊게…

그렇게 한 음 한 음 집착하며 녹음을 해서인지

평소 연주의 두 배는 느리게 들렸어요.

어제 또 충격을 받았죠. 이 집착증이 또 오는구나….
 
독일에서 발레리 그라도프와 자카르 브론에게 배우고,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에서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습니다.

리고 다시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음대로 와서 크리스토프 포펜,

이후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입학해 김남윤 선생에게 배웠죠.

 

지금은 뮌헨에서 다시 포펜과 공부하고 있고요. 숨차네요.
네 살에 그라도프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너는 통통하고 목도 짧으니까 어깨받침은 좋지 않아”라고 하셔서,

어깨받침 없이 시작했어요. 1950ㆍ1960년대 대가들의 마인드이죠.

 

사실 바이올린에 어깨받침이 도입된 지는 오래되지 않았거든요.

그라도프에게 기본기를 남자처럼, 어깨와 목 사이에 바이올린을 단단히 낀 채 배웠고,

딜레이와는 일곱 살부터 3년간 공부했어요.

 

그때 버르토크 이전의 바이올린 레퍼토리를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아홉 살에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을 했으니까요.

일주일마다 다른 협주곡을 배웠고, 덕분에 초견이 정말 좋아졌어요.

 

딜레이 이후에, 열 살부터 열네 살까지는 다친 손가락을 치료하느라

바이올린을 잠시 놓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반 년 정도는

다니엘 바렌보임 집에 머물면서 코칭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와 바렌보임은 오랜 친구 사이였어요.

두 분은 1988년부터 5년간 바이로이트에서 사이클을 함께 했는데,

그때 바렌보임의 식구들과는 가족처럼 지냈어요.

 

제가 손가락을 다친데다가 선생님도 정하지 못하고,

아버지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와 서울대를 오가시느라 베를린에는 이렇다 할 집도 없고,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바렌보임이 그러면 뭔가 결정될 때까지 주미는 우리집에 있으라고 한 거였어요.

오빠들(바렌보임의 두 아들)은 학교 가고,

 

사모님도 피아노를 하시니 바쁘고,

바렌보임은 슈타츠카펠레로 출근하고…

그렇게 종일 혼자서 심심해하다가 바렌보임이 퇴근하면 저는 그때부터 신이 났어요.

 

“악기 갖고 와서 오늘 연습한 것 해봐” 하면 신 나서 연주했어요.

그럼 바렌보임은 이래라 저래라 별말 없이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한 프레이즈야”라고 말하며

악보에 프레이즈를 길게 그려주고, 그럼 저는 프레이징을 달리 해가며 다시 연주를 했어요.

그렇게 스스로 느끼며 변할 수 있는 법을 배웠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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