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도란도란글방 / 너희가 바로 내 보물이다 (마태복음 6:19-21)

스크랩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18 ㅣ No.147655

 

(공동번역성서) 2021. 6. 18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도란도란글방

 

너희가 바로 내 보물이다

 

(마태복음 6:19-21)

19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 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땅에다가 그 보물을 쌓는다는 거, 축적(蓄積)한다. 쌓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데사우리조’(θησαυρίζω)인데 데사우로스(θησαυρός)보물이거든요. 그러니까 데사우리조라는 건, 단순히 뭐 쌓다’ ‘축적하다이런 말이라기보다는, 보물이 되게 하다이런 뜻이에요. 어떤 것을 계속 가져서 보물이 되게 하다. 데사우리조라는 말은,

땅에다가 보물을 이제 데사우리조한다는 말은, 자신이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 들을 열심히 축적했더니, 땅이 되더라.’ 이런 말이죠. 그리고 하늘에 보물을 축적한다.’는 말은 진리라는 보물을 열심히 축적을 해서 하늘이 된다.’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 진리의 보물을 담은 하늘이 되어서, 그 하느님의 말씀을, 이제 그 하늘 안에 담으면, 그게 바로 하늘에 쌓이는 보물이 되는 거고, 하늘과 보물이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땅적 존재로서의 그 세계관으로, 그 노미조(νομίζω/법에 따른)하는 마음으로, 그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게 되면, 그 말씀은 이제 율법으로, 땅인 내 안에 쌓이게 되고, 그것 자체가 땅이 되는 거예요. 그들이 모인 곳을 지옥(地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이 되어서, 그 안에 진리라는 보물, 그 생명의 보물을 쌓는 이들은, 그 자체로, 그 빛을 발하는 보물이 되는 거고, 우리 자신이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그런, 저주의 땅으로 돌아가는, 저주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보물(寶物)이라는 단어, ‘데사우리조라는 단어는, ‘티데미(τίθημι/배치.진열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거든요. 그러니까 티데미가 뭐냐면? 하늘의 그 진리, 하늘의 그 보물을, 이 땅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이렇게 횡적으로 배열해 놓은 거 있죠? ‘그렇게 놓아 둔 것그게 성전(聖殿)이죠?

그렇게 놔둔게 율법(律法)이잖아요?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면, 그것 자체가 보물이 되지만, 그것으로 우리가 그 하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게 흙이에요. 티끌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모래 같은~, 비로 내리는데, 모래로 받게 되는, 그러한 저주의 말씀이 되는 거죠.

사실, 그 보물이라는 말은, 다른 곳에서 리도스 티미오스라는 그런 말과 혼용(混用)이 되어서 사용되기도 하는데요. 그 뜻은 가장 귀한 돌이라는 뜻이에요. ‘가장 귀한 돌이렇게 보석(寶石)’이렇게 번역이 되곤 하는데 보석이라는 말이 한문으로도, 그냥 귀한 돌이에요. 그 돌은 그 지성소의 언약의 법궤 안에 들어가 있는, 그 언약의 있죠? 그게 최고 중요한 이거든요. 그게 뭔지를 알면 그게 진리거든요. 그래서 그 가장 귀한 돌! 그게 보물이 되는 거예요. 보석이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진리(眞理)로 오신 그 뜨인 돌!’ 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거죠, 이라는 말이, ‘에벤(אבן/H68/)’이라는 말이에요. 이게 이에요. ‘에벤에셀아시죠? 그런데 에벤,’ 이게 돌인데, 이걸 이렇게 나누면? אב/ן אב 아부가 뭐예요? 아버지죠? 아버지가, 아랫것으로 내려오면, 그걸 이라고 그래요.

א/ב א 이렇게 나누면 벤이 아들이거든요. 알레프가 하느님이니까. 하느님의 아들을, 돌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예수님을 구약에 보면, ‘뜨인 돌’, ‘산돌’, ‘모퉁이 돌.’ 그런데 그 돌이, ‘거치는 돌도 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산돌이 되고, 뜨인 돌이 되고, 그렇게 되면 나에게 보석이 되지만, 그 돌은 나에게, 나를 부서트리는 저주의 돌도 될 수도 있습니다,

, 그 돌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돌이에요. 그런데 그 돌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귀한 진리의 보석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파괴하는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보면, 느브갓네살 왕의 꿈속에 등장하는 그 뜨인 돌하나가,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서 환장하는, 그 세상이라는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상을, 때려 부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역사다! 꿈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꿈을 살고 있는데, 그 꿈이 뭔지도 모르고 내용도 모른단 말예요. 그런데 다니엘(ךניאל/하느님의 재판관), 하느님의 사람이, 그 꿈을 분석 해주는데, 그 꿈이라는 거 이 세상 역사라는 건 뭐냐면, 하느님의 그 뜨인 돌, 말씀에, 의해서 세상이 박살나는 거야~ 어떤 이들은 자기부인이라고 그러죠? 그게 뭔지를 알면 구원이지만, 그게 뭔지를 모르면 그 자체가 박살나는 거예요. 그게 멸망이라는 거예요. 그게 역사의 실체라는 겁니다.

, 아무튼 우리가 우리 안에, 그 진리의 을 마음으로 갖게 되면, 우리가 바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가장 귀한 보물이 되는 거고, , ‘티끌,’ 모래로 받게 되면, 먼지로 받게 되면, 우리 자신이 흙이 되는 것이란 말예요. 그러니까 율법을 흙이라고 한다. 먼지라고 한다. 모래라고 한다. 이건구약 성경을 원문으로 잘 읽어 보면, 전부 그렇게 표현하고 있단 말이에요, 성경이.

그러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보물이 되느냐아니면, ‘저주 받을 티끌로 돌아가느냐,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나는 거예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는 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가장 귀한 !’ ‘하늘의 보석!’ ‘이라는 말 자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니까. 그게 보석이란 말예요. 귀한 돌.

사실 사람들이 그게 가치 있다고 자기들끼리 합의 안 하면, 그게 돌이지 뭐냐고요? 달고 다니는 그게. 어디다 써 먹냐고요? 그걸 배고플 때 먹을 수가 있어요? 뭐로 쓰냐고, 그거를? 그래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입고 들어가는 에봇위 그 보석에, 하느님 백성들의 열두 아들의 이름, 열둘의 이름이 기록 되어 있는 거예요. 어디에? 보석에~. ‘내 아들들이 보석이다.’ 이런 말이에요. ‘가장 귀한 돌이 내 아들이다.’ 출애굽기 289절 보세요.

 

(출애굽기 28:9-12) 9 너는 홍옥수 두 개를 구해서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겨라. 10 나이 순에 따라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새기고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겨라. 11 보석공이 인장반지 새기듯이 이스라엘 아들들의 그 보석에 새겨라. 그리고 금테에 그 보석들을 박아라. 12 이 보석 두 개를 에봇의 양 멜빵에 달아,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 는 보석으로 삼아라. 아론이 이렇게 어깨에 그들의 이름을 달고 나서면 야훼께서 이것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기억하실 것이다.

 

그거 메고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간다니까요. 아들들, 열둘이, 그 보석들이 그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들인 거예요. 그러니까 아들이란 말입니다. 요한 묵시록에 가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요한묵시록 21:1-2, 10-12) 1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2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0 그리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 두 대문이 있었고 그 열 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이게 출애굽기에 나오는 그 이야기와 그냥 똑같은 이야기예요. 그러니까 천국이, 뭐 보석으로 되어 있다. 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보석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천국에 갔더니, 무슨 뭐 화장실 변기도 금으로 되어 있고, 뭐 길도 다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고~. 그거는 자기 환상이에요. 인간들이 꿈꾸는 천국이란 말예요. 그거는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곳이라니까요. 그런 곳은 천국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건 다 사기(詐欺)예요.

하느님의 백성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그 하늘들 안의 보물이 되어 가는 거예요. 내가 하늘들이 되어서 그 진리의 말씀, 그 말씀이 하느님이니까, 하느님을 가지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라니까요. 그걸 가진 나, 껍데기로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 안의 질그릇이라는 보물이 들어 있기에, 옛날 질그릇은 유약도 안 바른 질그릇이란 말이에요.

애들이 장난감 그 소꿉장난 할 때 진흙으로 이렇게 덕지덕지 만들어서 햇빛에 말려놓죠? 옛날 질그릇은. 툭 치면 깨는 거예요. 그래서 토기장이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하느님은 토기장이라는 말은 하느님은 우리를 반드시 다 깨버려야 한다는 그런 의도로 우리를 만들었다는 의도로 쓴 거예요. 당시에는.

, 우리는 그렇게 깨진, 쉽게 깨지는 질그릇인데, 그 안에 하느님이 보물로 담기면, 내가 보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은 그 보물을 ‘(발란티온/βαλάντιον)’ 주머니라고도 표현하세요. 주머니하고 보물이 어떻게 이게~ 섞일 수 있는 개념입니까? 그런데 주님이 보물을 주머니라고 한다니까요. 진리를 담은 그릇! 주머니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루가복음 12:33-34) 33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34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너희 보물, 그게 네 마음이다. 그랬단 말예요. 지금. 그런데 여기 보면, 네 소유를 팔아 주머니가 돼야 되는데, 그 주머니가 하늘에 둔, 다함이 없는~, 이게 영원한 이런 말이죠. 낡아지지 않는, 그게 영원한 보물이다. 주머니가 되어라~ 그게 보물이다. 하늘에 담겨있는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그러면 주머니가 보물이라는 게 무슨 말이냔 말예요.

여기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머니가 될 수 있다고 그래요? 우리의 소유(所有)를 팔아~ 소유라는 건 율법적 행위(行爲), 그것으로 나는 이렇게 괜찮은 존재이고, 이렇게 풍성(豊盛)한 자입니다.’라고 우리가 쌓아 갖고 있는 것을 소유라고 어떤 재화(財貨)로 환산했을 때, 돈이라는 거 자체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생각이나, 지혜, 지식, 이런 것들, 우리의 땀과 노력을 재화로 환산해 놓은 게, 돈이죠

그러니까 재물(財物)이라는 거, 소유라는 거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재물, 소유라는 건 내가 내 힘으로 내 놓을 수 있는, 만들 수 있는, 그래서 쌓아놓을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주님이 팔아라~’하는 소유는.

그런데 그렇게 그 소유를 팔려면, ‘이 소유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그 소유는 당연히 팔리겠죠 팔아서 딴 걸 산다는 게 아니라~ 진리를 갖게 되면, 그걸 내 놓는단 얘기예요. 그렇게 그 진리를 내가 마음으로 담아서, 그 소유를 팔 수 있게 되면, 그러면 내 안에는 진리가 있는 거네요. 진짜 가치 있는 것이.

네 소유를 팔아 네 안에 있는 그 진리로 이제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구제해라~. 그러면 그것이 주머니가 되는 거야~’ ? 내안에 전해 줄 진리, 그 보물이 있으니까, 나는 주머니란 말예요. 그런데 그걸 전해 줄 수 있는 자가 되면 ,그 주머니가 보물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예요. ‘팔라이오.’

그러니까 옛 것의, 구식의 이런 말이죠. 새 것과 대조되는 것의 개념. 새 계약과 대조되는 옛 언약 그렇죠?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라는 건, 새 주머니라는 뜻이에요. 새 주머니! 새 주머니가 되어라! 그러면 그것이 다함이 없는 보물이야! 거기서 하늘들도 복수예요, 그러니까 하늘들 안에 보물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당연히 진리를 담은 성도들 이야기 하는 거죠.

 

그 하늘들 안에 보물이 담겨져 있는데, 영원한 보물이에요. 변치 않고, 낡지도 않고, 영원 그 자체인 보물! 진리의 말씀이신 하느님이에요. 영원이신 분은, 하느님 밖에 없거든요. 그걸 보물이라고 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잡혀 가시던 그 즈음에, 이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그 즈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들 이제 주머니를 가져라~’ 그래요. 주머니를 가져라~’

그 전에는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주머니가 될 수 없죠. 예수가 살아 있거든요. 그 예수가 죽어야 진리가 되어, 당신의 백성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단 말이에요. 안 그러면은, 그들이 주머니가 될 수 없다니까요. 그들은 여전히 자기 밖의 예수를 보고 섬길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능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니까.

그 예수가 내 밖에 있으면, 그러면 그 어마어마한 능력을 행한 그 분의 그 능력 때문에 놀라고, 그것에 경외감을 갖고, 거기에 감사하고, 그 수준이라면, 나는 예수를 믿는게 아니라,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진, 그런 기능을 행하는, 그 분 앞에 쫀 거예요, 나는. 그걸 믿음이라고 하지 않아요.

믿음은, 반드시 연합, 사랑이라는 개념을 동반하는데, 내 밖의 어떤 존재가,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이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니까요. 내 밖의 어떤 분이, 큰 능력을 행하고 있고 대단한 힘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나의 구원까지도 의뢰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저기 있으면, 나는 그 분에 의해 살아날 수도 죽을 수도 있지만, 그 분이 내 밖에 존재하는 한, 나는 그분을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내가 그 밖에 있는 그 존재를 믿는다는 건, 역시 그 믿음에 주체는 나란 말예요. 그건 믿음이 아니란 말예요.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거는 엄청난 힘을 가진 나를 지옥에도 보낼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존재 앞에서 쫄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하기 싫어도 열심히 그냥 해 보는 거고, 하다보니까 보람도 느껴서 계속하고, 이런걸 믿음이고 신앙생활이라고 착각(錯覺)한다니까요. 그건 신앙생활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이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 ‘너희들 주머니 가져야 돼~ 전대 가져야 돼~’ 이게 다 주머니란 말예요. 이게요. 돈 주머니 이렇게 생각들 하시는데, 돈 주머니 맞아요. 그런데 그 돈 아니에요. 그리고 너희들 이제 신 신어야 돼~’ 이렇게 이야기 한다니까요. 한번 볼까요.

 

(루가복음 22:35-38) 35 그리고 사도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낼 때 돈주머니나 식량자루나신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것이라도 있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6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그러나 지금은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가고 식량자루도 가지고 가거라. 또 칼이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서라도 칼을 사 가지고 가거라. 37 그래서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 하신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게 관한 기록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 하셨다. 38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주님,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하였더니 예수께서는 '그만 하면 되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돈주머니라고 번역이 된 그 단어가, ‘발란티온그 루가복음에 산상수훈에 있는 그 주머니예요. 보물! ‘주머니가 되어라~’ 그랬잖아요? ‘포에이오그 단어예요.돈주머니 ! 그리고 주머니라고 번역된 단어 페라, 주머니예요. 그것도 주머니인데, 그건 양식을 담는 주머니예요.

우리가 보물의 이야기하기 전에 먹는 이야기 했죠? 우리가 진짜 양식을 진리로 내가 먹게 되면, 내가 그 진리를 양식으로 먹어 그걸 생명의 에너지로 삼는 존재가 되는 거잖아요? 그때 그걸, 페라,’ 주머니라고 그래요. 그 주머니나, 진리를 보물로 담은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란 말예요.

그 진짜 그 양식! 단식해서는 안 될 그 양식을 보물로 다시 설명해 주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전에는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고, 십자가 지시기 바로 전에는 이제 가져라~ 그런다고요? 예수님이 죽으셔야, 비로소 너희들은 주머니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이 보물이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그 보물을 구제로 엘레모수네나눠 줄 수가 있겠죠? 그러면 신은 뭐예요? 신발. 그것도 같은 의미여야 되잖아요? 신도 주머니예요. 그 신은 바오로가 잘 설명해 주는데.

 

(에페소서 6:15)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전신갑주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신을 신다.’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휘포데오인데요. 그 단의 명사형이 휘포데마신이에요. 여기선 신이라는 단어는 안 나와요. 그냥 신을 신다라는 말만 나와요. 그런데 그 원문을 보면, ‘휘포데오라는 동사 다음에, ‘호프스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신이라는 건 발이라는 걸 감싸는 거죠. 여기에 그렇게 되어 있다니까요. 그 발을, 신이라는 것으로 감싸라~. 이렇게 되어 있단 말예요. 그게 신을 신는 거죠 뭐. , 그러면 발은 뭐예요? 호프스라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는 그 다음 단어들을 원문으로 보면요, ‘헤토이마시아 호 유앙겔리온 호 에이레네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아주 예비한~’이 아니라 정확하고, 적확한그 평화 에이레네라는 유앙겔리온복음! 이런 말이에요. 그것이 발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다시요. 아주 정확하고, 적확한 그 복음! ‘에이레네평화라는 복음! 그 발을 신으로 감싸라! 이런 말이에요.

, 그 평화가 복음이며, 그 복음이 아주 정확한 발! 그 정확한 복음이 발이라고 하는 거예요. 성도는 그 발을 감싸는 신이에요. ! 그런데 히브리어는요. 그 신이라는 단어를요 라는 말로도 씁니다. ! 신발 밑창이 혀같이 생겨서 그런가? 하여튼 혀라고 써요.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발은 진리의 복음을 말하는 거고 그 발을 감싸는 게 신 휘포데마예요. 그러니까 역시 신은 발을 담고 있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나 그 신이 올바른 발을 담고 있을....

따라서 성전은, 발 즉, 진리의 하느님을 담은 그릇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발은 모르면서, 그 발등상에다가 대놓고 맹세하면 뭐 하니~? 이러는 거예요. 발이 뭔지를 알아야지~. 그런 말이잖아요? , 그 발을 담고 있는 그것을 신이라고 하고, 올바른 발을 가진 신을 성도! 보물!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느님이 모세나 여호수아를 불러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게 하시기 전에, 항상, ‘네 발에서 신 벗어~’ 그런 거예요. 고대시대 때에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거는,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라는 뜻이에요. 내가 누구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건 나를 너에게 양도한다. 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진리의 전쟁을 치르러가는 여호수아나 모세에게, ‘여기는 거룩한 아다마그냥 땅 아닙니다. 아다마예요. ‘아다마니까. 이게 거룩한, 깨끗한, ‘아다마니까. 깨끗한 말, 진리니까. ‘너는 네 신을 벗어라~’ 이런 말이에요. 너를 나에게 양도하라는 거죠.

그 신은 곧 혀를 이야기한다고 그랬습니다. 내가 내 혀를 빼앗기는 거예요. 신을 벗는 건, 내가 내 발을 포기하는 거란 말예요. 내 발을 포기하는 거. 그러면 내가 내 발을 포기하고, 나를 다른 이에게 그냥 양도를 해버리면, 누군가 나의 발이 되어줘야 되잖아요? 그러면 그 발이 내게 와서 발이 되면, 내가 그 발을 감싸는 신발이, 신이 되는 거예요.

다시~ 신은 혀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발을 빼앗겨요. 양도됩니다. 너 내 앞에서 신 벗어! 그건 내가 네 발을 차압한다, 몰수한다. 그리고 내가 내 발을 너에게 줄 거야~. 그러면 너는 나를 담은 신, . 나를 담은 혀가 되어 이제 나를 말하고 나를 전하는 자가 될 거라는 뜻이에요. 그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나의 혀가 다른 내용을 담게 되는 거예요. 내가 하느님 앞에서, 그 거룩한 진리 앞에서, 내 신을 벗는다는 건, 내 신이, 내 혀가, 다른 발을 담는다는 거예요. 그게 영적 전쟁이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느님 백성들의 존재 양식 아니에요? 내가 내 내용을 빼앗기고, 하느님이라는 내용을 받아, 그 내용을 영광, ‘독사이렇게 비추는 자로 사는 거! 그걸 성도라고 그래요. 그래서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 이렇게 불렀어요. !

 

(로마서 10:15) 전도자로서 파견 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라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이사야 52:7)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복음)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 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느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 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 구나.

 

그 발이 아름다워요. 복음을 가진 자들은 하느님이라는 진리, ‘레길발이라는 말은 인도하다라는 말도 되거든요. 그럼 발. 하느님의 그 인도하심, 하느님의 이끄심, 그 진리를 담은 신발이 되어서 그 발을 담아, 다른 이에게로 뛰어가는 발이 되는 거예요. 하느님은 그걸 아름답다. 이렇게 칭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아름다운 거예요. 그렇다면 돈주머니나, 주머니나, 신의 역할을 하는 그러한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보물인거죠.

그래서 주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제, 너희는 주머니, 돈주머니, 신 가져라~’ 그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가질 방법이 없다니까요. 그러면 뭘 가져갈까요? 자기들이 생각하는 땅적 차원의 주머니, 돈주머니, 신을 가져가요. 그러니까 껍데기가 부정이 되고, 그 알맹이의 진가가 드러나면, 그 부정된 껍데기를, 알맹이로 여겨 주시는 게 구원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머니, 돈주머니, 신이 되어라!’ ‘가져라!’라기 보다는 신이 되어라!’라고 당부를 하신 거죠.

그러면 그게 ()’의 겉옷을 입은 자죠? 그래서 거기에 겉옷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그들이 하느님이 주신, 하느님이 마련하시고 하느님이 입혀주신, 의 옷을 입은 자들이잖아요 그게 겉옷이죠.

그러니까 반드시 그들은 겉옷을 입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들이 보물이 되었다면, 주머니가 되었다면. 그렇죠? 그런데 그 옷을 자기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예수님처럼 넷으로, 넘겨줘야 되죠 자,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을, 누군가에게 이 세상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충돌이 일어나게 돼 있어요.

그러면 이 겉옷이라는 걸 다른 이들에게 넘겨줄 때, 이 겉옷은 뭐로 주어지게 되냐면, 성령의, 말씀의 칼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겉옷을 칼로 바꿔라!’ 이러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 겉옷을, 이제 내가 없어지고 너희들 안으로 들어가니까,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면 너희들은 그 칼이 되어서 가야지, 너희들만 입고 있으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겉옷을 칼로 바꿔라!’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아 노모스’ ‘노모스가 율법이죠? ‘율법에 지배당하지 않는이런 말이에요. 그거를 여기에서는 불법자라고 그랬나 뭐~ 강도나 도둑놈 이런 거! 그렇게 보이지만. 맞아요. 예수님이 이사야서에서 그렇게 예언이 되었거든요.

예수님이 그러한 자들과, 동일하게 취급이 되어 죽을 거라고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게 무슨 단어냐면, 그분이 이제 율법으로 오셨지만, ‘불법자!’ 율법과 무관한,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가 된다는 건,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육체로 죽어서, 진리로, 영으로, 오신다는 얘기죠? ‘그럴 거니까, 너희들은 이제 주머니가 되어라!’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너희 이제 주머니를 가져! 신을 가져! 돈주머니를 가져야 된다. ? 내가 이제, ‘아노모스율법에 지배를 받지 않는 그 상태로 이루어질 거거든.’ 그래요.

그럼 뭐예요? 내가 이제 죽어서, 율법으로 죽어서, 진리로 너희들 안으로 들어올 거란 뜻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 이제 주머니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들어오게 되면, 너희들은 의 겉옷을 입게 되는 건데, 그러면 이제 너희들이 내 역할을 해야 되니까, 그걸 전해주기 위해선, 그 겉옷을 으로 바꿔야지~. 으로 갖고 있어야지~.

그 겉옷을~. 그런데 너희들이 그걸 끝까지 율법으로 갖고 있으면, 그거는 율법의 헤레브라는 검이 될 것이고, 너희들이 그걸 성령의 칼로 갖게 되면, 너희들은 그걸 구제를 행하는 칼로 갖게 될 거란 뜻이에요. 그래서 두 칼, 도 아니에요. 짝인 칼. 이렇게 이야기해요. 짝인 칼이 등장을 하는 거예요.

그걸 제자들이 이렇게 내놓으니까,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래, 이게 예로 적당하다.’ 그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칼 두 자루면 족하다.’ 어떻게 두 자루면 족해요? 그런 얘기 아닐 거 아닙니까? ‘그게 적당하다.’ 이렇게 이야기 한단 말입니다.

이 땅의 은 두 종류의 칼로 갈린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헤레브, 가뭄이라는 칼이고, 이거는 하느님의 심판의 현장에 항상 등장하는 거예요. ! 이게 가뭄이에요. 가뭄! 그 진리의 비가 오지 않아서, 양식도 될 수 없고, 열매도 맺을 수 없는, 그 상태(狀態). 그건 다른 이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칼이에요. 그렇죠? 그게 율법의 칼이라는 거예요.

심판의 칼! 왜 칼이라는 개념을 쓰냐면, 성령의 칼과 대조시키기 위해, 자꾸 그 가뭄이라는, ‘헤레브라는 칼을 등장시키는 거예요.

율법주의자들에게 있어서는 그 율법이 유일한 공격 무기라니까요. 자기가 행해 놓은, 그러한 많은 열매들! 그게 자기들의 공격 무기예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걸 가뭄이라, 그래요. 저 물도 없는 푸석푸석한 거. 저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루가복음 22:37-38) 37 그래서 '그는 악인들 중의 하나로 몰렸다' 하신 말씀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게 관한 기록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 하셨다. 38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주님,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하였더니 예수께서는 '그만 하면 되었다' 하고 말씀하셨다.

 

아주 좋은, 적당한 히카노스적당한 예구나!’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이거 참 적당한 예네!’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 칼을 엉뚱하게 쓰는 자의 모습이 등장해야 되잖아요? 이 성경의 독자는 우리니까. 그래서 바로 그 다음에 이제 잡으러 와요. 그 중에 말코라는 자가 나온단 말예요. ‘말코가 누구냐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있죠? ‘멜기세덱의 그 멜기예요. 그게 말코예요. 그런데 그게 의의 사자, 의의 왕이라고 그랬죠? 그렇게 사자! 하늘의 왕이 되어야 할 어떤 자가 오는데, 물론 모형(模型)이고 상징(象徵)이죠.

 

그런데 엉뚱한 칼, 베드로가 가진 , 베드로가 어떻게 말렸어요? 주님의 그 십자가로의 행진을, ‘죽으면 안 됩니다. 내가 목숨 걸고 말릴 거예요.’ 그랬어요 목숨 걸고. 그분의 죽음을 말리면, 이 세상은 끝장나는 거예요. 보물로 그 분이 들어와야 되는데, 그게 율법이죠? 그분의 죽음을, 여전히 그래서 살려 놓고 있잖아요? 그리고 계속 빌고 있잖아요? 거기다가. 그분은 죽었다니까요.

죽어서 이 안에 들어와 있는데, 여전히 내 밖에다가 놓고, 뭘 빌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러고 있으니까. 그게 베드로가 보는 예수님이었단 말이에요. 죽으면 안 되는 분! 나를 도와줘야 되는 분! 나를 구원해 줘야 되는 분! 아니 주님은 내가 네 안에 들어가서 내가 생명이 될 거라니까 그랬더니,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아니, 나는 그런 거 모르니까, 그런 거 말고, 살아서 나를 도와 달라니까그랬단 말예요.

그러면 그런 자가 가진 말씀, 그 분에 대한 이해가 뭐겠냐고요, 말씀이, 당연히 율법이잖아요? 그러면 그건 멜기세덱의 그 말라크’ ‘말코라는 그 의의 사자가 되어야 할 이들의, 오른편 귀라고 그러죠? 오른 귀를, 잘라 버리는 거란 뜻이에요. 그러면 큰일 나는 거죠.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라니까요, 이게.

들어야 할 귀를, 내가 가진 잘못된 말로, 닫아 버리고 잘라 버리면, 그건 나쁜 칼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러냐면, ‘그 칼을 가진 자는 그 칼로 망한다.’ 그랬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떤 칼 가지라고? 말코의 귀를 자르는 칼이면, 안 되는 거예요. 성경이 재미있는 게요, 그렇게 귀가 잘린 이들의 일가가, 대제사장의 뜰에서 베드로에게 와서, ‘네가 귀 잘랐지?’ (내 다리 내놔라 이렇게) 쫓아다닌다니까요. 굳이 성경이 말코의 일가가 찾아가서 너 예수 편이지?’ 물어봤다라고 그래요. 큰 일 나는 거예요.

 

(마태복음 26:51-52) 51 그 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의 귀를 쳐서 잘라 버렸다. 52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무슨 말인지 이제 이해가 가시죠, 우리는 진리라는 보물을, 주머니와, 돈보따라와, 안에 담은, 성령의 칼, 그 하느님의 무기! 그래서 우리를 군병이라고 그러잖아요? 그 분을 만군의 주라고 하잖아요. 만군이라는 것은, 만 군대의 대장이라는 뜻이니까, 우리가 성령의 칼이란 말이에요. 그 칼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는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 그러는 거예요. 아주 죽여 버릴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 좋은 말이에요, 그거는요. ‘내 칼 받아라!’라는 거예요. 내 칼! 그 칼은 요한묵시록에 아주 훌륭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요.

 

(요한묵시록 1:13-16) 13 그 일곱 등경 한가운데에 사람같이 생긴 분이 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발끝까지 내려 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14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은 양털같이 또는 눈같이 희었으며 눈은 불꽃 같았고 15 발은 풀무불에 단 놋쇠 같았으며 음성은 큰 물소리(진리) 같았습니다. 16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쥐고 계셨으며 입에서는 날카로운 쌍날칼이 나왔고 얼굴은 대낮의 태양처럼 빛났습니다.

 

날카로운 쌍날칼뭡니까?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에요. , 그 진리의 말씀이 칼이니까, 그 말씀을 이렇게 담고 있는게, 칼집이죠? 그래서 성전을 가리키는 토퍼스라는 단어가 칼집이라는 말로도 쓰여요. 칼집에 칼이 없는 칼집은, 어디다 써 먹어요, 거기는 반드시 ! 말씀! 진리! 칼이 꼽혀 있어야 완성인 거예요. 성전이 칼이 빠져 버리면, 그냥 칼집이에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거!

이렇게 주머니와 돈주머니와 신과 겉옷과 칼! 이건 전부 예수 그리스도가 육으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아나셔서, 하느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오셨을 때, 완성이 되는 그런 은혜의 선물인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너희는 돈주머니와 주머니, 신 이런 거 가지지 마!’ 이렇게 이야기 하신 거예요. 십자가 지기 전에는 못 가지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깊은 뜻이 숨어 있었어요. 하나는,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분명히 제자들을 하느님나라를 전파하라!’하고 보낸단 말예요. 그런데 그 제자들이 뭘 알았냐고요? 자기들도 하느님의 나라가 뭔지 몰랐다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잡혀가는 그 날 밤에, 누가 큰지 쌈박질하다가 예수님한테 혼났다니까요.

누가 영의정 할 건지 싸우다가. 그런 사람들이 무슨 하느님의 나라를 알았어요? 그리고 심지어 주님이 부활했는데, 못 알아봤다니까요. ‘호라호못했단 말예요. 다 도망갔단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을 하느님이 열둘(12)로 그리고 칠십(70)으로 이렇게 파견한 건, 어떤 모형이고, 상징으로 보여준 거지, 그들에게, ‘나가서 너희들 복음 전해서, 한 사람이라도 구원시키고 와!’ 이건 아닐 거 아닙니까? 아무도 몰랐다니까요. 그들도 몰랐다니까요.

그러니까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영적 개념의 돈주머니와 주머니와 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두 번째는, ‘너희들의 그 돈주머니! 너희들이 생각하는 주머니! 너희들의 신! 너희들의 지팡이! 이런 건 절대 복음 전파에 도움이 될 수가 없는 거야!’라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건 가져가지 마! 내가 가지가라고 해 봐야~ 너희는 내가 말하는 그거 아닌,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 주머니! 그 돈주머니! 그 지팡이! 그 돈! 가져갈 거니까, 그거 가져가지 마!

러나 너희들은 반드시 그게 뭔지 알았을 땐, 반드시 그 주머니! 그 돈주머니! 그 돈! 가져가야 한다.’라는 이 두 가지 의미를 메시지를 동시에 담아 놓은 거예요, 거기다가. 그래서 거기 쓰인 단어 자체를, 헷갈리게 집어넣어 놨어요,

 

(루가복음 9:1-4) 1 예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한 자리에 불러 모든 마귀를 제어하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다. 2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병자를 고쳐 주라고 보내시면서 (이게 다 복음을 전하여, 생명으로 완성하라는 의미죠? 그러나 이걸 그렇게 못 보면, 그저 귀신이나 쫓아내고, 병이나 고치고 오는 거예요. 그건 표징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하느님이 뭐라고 그러느냐면, ‘기적을 구하는 자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다.’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그냥 문자적으로 보고, 그런 기적들을 교회에 와서 원하면, 그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거예요.) 3 이렇게 분부하셨다.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지팡이나 식량자루나 빵이나 돈은 물론, 여벌 내의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 4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 제자들에게 하느님나라를 전파하라고 하는데, 이걸 전파복음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전파복음으로는 절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어요. 가르치는 복음! 그러니까 전파복음은 뭐냐면, 예수 천당! 불신 지옥!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뭐 그래, 어떻게 하라고요? 그걸로 구원이 돼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 듣고, 교회에 와서 구원받았는데요.’ 아니요~ 그 때 조금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일이 있어서, 그런 거지~. 그 말이 뭔지를 배워 깨닫기 전에는, 절대 우리자신이나, 호 코스모스의 세상의 죄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니까요. 그러면 그건 구원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반드시 가르치는 자가 있어야 돼요. 그게 뭔지.

그건 과정(過程)으로는 쓰일 수 있어요. 과정으로. ‘, 저 노인네가 도대체 뭐가 있길래 저렇게 저 무거운 걸 짊어지고 다니면서 저렇게 빽빽 1365일 소리 지르나? 한번 가볼까?’ 이거는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고,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니까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뭐 이렇게 하고 마이크로 크게 뭐 설교를 하고 다니는 어떤~ 매주 만나 왜? 그것도 항상 내 앞에, 얼마나 큰지 라디오를 크게 틀어나도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다 들려요. 그런데 그게 쓸데없다는 게 아니에요. 그게 과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그렇게 해 놓고, ‘나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라고는 말하지 말라는 거예요.

제자들이 그렇게 지금 보내진 거예요. ? 뭔가를 이 성경의 독자인,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분명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일은 열심히 하다가 왔어요. 그래서 자기들도 놀랬다니까요. ‘! 귀신이 나가더라~. 병자가 일어나더라~.’ 이렇게 자기들도 깜짝 놀랬다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귀신 들린 웬 애가 찾아왔는데, 변모산 아래에서 아무리 기합을 줘도 안 나가는 거야 얘가~. 얼마 전엔 됐는데. 왜 안 되죠? 주님한테 이렇게 물어봤다니까요. 그렇게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느님은 그걸 구원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니까요.

하느님은 그러한 표징들을 통하여, 하느님나라와 영생이라는 진리를 전파하시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어요. 그러나 그 일은, 식량자루와 돈주머니와 양식과 돈, 돈이라는 단어가 그 은이라는 뜻이거든요. 은 항상 속전입니다. 그냥 돈 지폐 아니에요. 그리고 두벌 옷이죠. 두벌 옷이 뭐냐면, 짝으로서의 옷 겉옷, 속옷 이야기 하는 거예요. 가져가야죠. 겉옷을 주려면 내가 속옷밖에 없는데. 아래에는 성경, 율법밖에 없는데. 어떻게 겉옷을 주냐고요. 속옷을 줘야, ‘이게 그거예요?’라고 알면, 그게 겉옷이 되는 건데.

그러니까 두벌로 반드시 가져가야지. 식량자루 반드시 가져가야지. 돈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지. , 양식 반드시 가져가야지. 지팡이 반드시 가져가야죠. 그런데 왜 가져가지 말라고 그러냐고요?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그걸로서 그걸 못 가져갈 거라는 거예요. 아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라는 그 어구가 메데이스 아이로인데요. ‘아이로라는 말이 가져라, 취하라라는 말도 있지만 치워버려라라는 말도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무덤에 돌이 이렇게 치워줬죠? 그 때 쓰이는 말이 아이로예요. 그러면 메데이스절대 부정이거든요. 그걸 무덤의 돌이 저렇게 치워진 거, ‘절대 치워지지 않게 해라!’메데이스아이로일거 아니에요? ‘치워라라고 쓰인 게, ‘치워졌다라고 쓰인 게, ‘아이로니까. ‘메데이스가 절대 부정이 붙으면절대 치우면 안 돼이렇게 번역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단어는 절대로 취하면 안 돼라고 번역해도 돼요. 동일하게 쓰인다니까요. 그렇게 이단어가요. 그러니 어떻게 번역해야 되냐고요?

그 원문을 번역한 이들이, 영어 성경이나 뭐 한글 성경을 번역한 이들이, 어떻게 해야,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그 도덕과 윤리 혹은 인간들의 가치나 아니면, 그 열심을 이렇게 풍성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어서, ‘, 전도하러 가는데, 뭘 가져가? 하느님이 다 들어주시지이런 의미를 담고 싶었기 때문에, ‘너희들 절대 가져가지 마! 내가 다 알아서 해줄 게이런 의미로 번역한 거예요.

그런 의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맞아요. 그런 거 가져가지 않아도, 하느님이 알아서 해줘요. ? 다른 주머니, 다른 돈주머니, 다른 지팡이, 다른 돈, 다른 떡이 있거든요. 그것만 가지면, 그까짓 거 안 가져도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성도는, 진리를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 단순히 ~ 하느님이 선교는 자비량으로 하라는 거구나~’ 이렇게 읽고, 그냥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가서 남 등골 빠지게 하는, 이렇게 이해하는 게 아니라, 준비를 하고 가세요. 왜 그냥 무작정 가서, 남들 등골 빠지게 하냐고~. 선교는 다 준비해서 계획 세워서 가야 돼요.

그런 말이 아니라고요. 내가 그냥 막 가면, 알아서 다 해 줄 거야~. 이런 말이 아니라니까요. 어디에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면 나중에 예수님이 돌아가시면서, ‘너희들 돈주머니, 지팡이, 주머니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런 말 하고 가면 안 되죠. 그런 거는 쏙 빼 먹고 말이죠. 반드시 가지라고 그랬다니까요.

그러니까 진리 깨달은 이들은 이런 구절이 읽으면서, ‘~ 그렇지 그 아래의 그 주머니 그거는, 아니지~. 그러니까 메데이스 아이로가지지 말라~. 맞아! 그러나 없애버리지 말아라, 치워버리지 마라 라고도 읽을 수 있는 게 뭐냐면, 그거 안가지고 어떻게 가서 복음을 전해? 여기까지 알아야 된다니까요. 루가복음 10장으로 가면, 70으로, 그 제자들을 70으로 보낼 때도, 역시 똑같이 헷갈리는 단어를 써 놨어요.

 

(루가복음 10:1-5) 1 그 뒤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 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2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4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 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 5 어느 집에 들어 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여기에 돈주머니, 식량자루, 신 앞에, 가지지 말며 이게 메 바스타조인데요. 이게 제거하지 말아라~’ ‘너희들 전대, 주머니, 신 반드시 가져가야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고요. ‘너희들 전대, 주머니, 신 절대 가져가면 안 돼!’ 이렇게 해석해도 맞아요. ‘바스타조라는 단어 자체가. ‘아이로와 똑같이 쓰인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께 여쭤 보게요. 복음 전하기 위해서 돈주머니와 식량자루와 신으로 대표되는, 지팡이, , 양식, 두벌 옷, 이런 것 가져야 되는 거예요? 가지지 말아야 되는 거예요? 마태오는 아무것도 가지지 마!’ 그랬죠? 분명히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 그런데 마르코는 지팡이하고 신만 가져가!’ 이렇게 썼어요. 어떤 사람 말을 믿어야 돼요?

 

(마르코복음 6:7-9) 7 열 두 제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8 그리고 여행하는 데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9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두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여기는 신은 가져가라고 그러네요. 그죠? 지팡이도 가져가라 그러고.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누구 말을 들을까요? 누가 더 높아요? 마태오하고 마르코 하고. 성경이 이렇게 어긋나게 기록을 하고 있는 건, 돈주머니나 식량자루나 신이나 지팡이나 두벌 옷이라는 것이, 이 역사 속 아담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님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것 갖고 헷갈리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 건, 가져도 되고 안 가져도 된다는 거예요. 이 역사 속 그것들은. 가지면 좀 편하고, 안 가져간다고 전해질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신 안에 담긴 발, 주머니 안에 담긴 보물, 주머니 안에 담긴 돌, 보석, 식량자루 안에 담긴 양식! 이건 반드시 가져가라는 거예요.

주님이 말씀하시죠? ‘내가 그런 것 없이 너희들 보냈을 때, 너희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랬더니 제자들이, ‘아니요,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것도 우리가 두 가지 메시지로 이해를 할 수 있어야 돼요.

그 첫 번째가, 그 유물론적 개념의 그 아래의 땅적 개념의 그런 것들은,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가르침이에요. 그런 것들은 안 가지고 간다고 그래서, 아무런 복음이 전해지는 데에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없다는 거예요. 없어도 돼요.

그러나 두 번째는 그와 반대로, 진리로서의 돈주머니와 식량자루와 신이 없이, 아무런 결핍이 없는 자들에게, 무슨 열매가 맺히겠니? 그러니 가서 귀신이나 쫓아주고 왔지~. 그런 말이란 말이에요.

어떻게 너희들은 그것이 없이 결핍을 못 느끼고, 귀신이나 쫓아주고, 병이나 고치고 와서, 어떻게 그걸 자랑하고 있니? 이런 말임과 동시에, ‘그래, 아래의 그 돈주머니, 식량자루, 신이라는 건, 복음이 전해지는데 있어서, 아무런 결핍을 초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런 두 가지 메시지가 같이 들어 있는 거란 말이에요. 여기에요.

그래서 주님이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러나 이제는 반드시 돈주머니와 식량자루와 신을 가져라. 겉옷 칼로 바꿔!’ 이렇게 이야기한 거예요. 이제는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아 노모스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육체에 매이지 않는 ,그 존재로 너희에게 갈 거야~ 보물로, 양식으로, 발로, 너희 안으로 갈 거다.’라는 것입니다.

 

, 쉽게 말해, 이 땅의 보물은, 절대로 하늘에 쌓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진리가 사랑으로 흘러가는데도, 전혀 무익한 거란 그런 말이에요. 따라서 자신이 하늘들 안에 그 보물이 되지 못한 자들은, 그 어떤 훌륭한 도구들을 동원하고, 멋진 외모로 치장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의 복음 전파의 도구로는, 절대 사용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마치 일구이언 하신 분처럼, 어디에서는 이런 것들을 가져가지 말라고도 하셨다가, 어디에서는 반드시 가져가라고 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구절들을 표피적으로만 이렇게 이해를 해서, 엉뚱하게 뭐, 하느님이 다 해주셔.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돼요. 진짜 가려거든 제일 먼저 그 진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이가 돼야 되고, 그리고 재정적으로도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멋지게 떠나는 거예요. 잘 준비해서.

어디 가서 전도를 할 때, 성경을 펴 놓고, 그에게 충분히 성경을 봐가면서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으면,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그래요. 함부로 가서 엉뚱하게 예수 믿으면 이렇게 됩니다. 저렇게 됩니다. 이딴 소리 하지 말라고 그러죠. 그거는 침공이에요. 뭐하는 짓이에요, 그게요?

그 지팡이라는 단어, ‘마켈/מקל/’이라는 히브리어는, ‘진리를 아래의 것으로 가르치다라는 뜻이에요. 지팡이라는 뜻의 그 단어 문자가, ‘라메드거든요. 그것도 지팡이에요. ‘가르치다, 인도하다이런 뜻이에요. 그런데 그 지팡이라는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뭔지 아세요? ‘싹트다.’라는 뜻이에요. ‘싹트게 하다.’ 지팡이는 반드시 싹트게 하는 역할을 해야 돼요.

마른 나무에, 저주받은 나무에, 싹이 트게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튼 거예요. 그게 진짜 지팡이에요. 다른 지팡이는, 죽은 지팡이에요. 지팡이를 생나무로 가지고 다니는 거 보셨어요? 잘 말려서 딱딱하게 해서 가지고 다녀야 돼요. 그거는 싹이 틀수가 없는데, 진짜 지팡이는, 반드시 싹이 트게 하는 가르침의 지팡이여야 되는 거예요.

지팡이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한시도 놓아서는 안 되는 진리의 말씀이요. 그게 나에게 가르침이고, 나를 인도 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고 가르치는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거예요. 지팡이!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너희들 지팡이, , 진리의 띠는 반드시 갖고 오라고, 그리고 그 재물을 먹어, 마음으로 갖고 나오라 그래요. 애굽에서 나올 수 있는 자는 지팡이, , 띠 반드시 가져야 되고, 그 재물을 먹어, 네 안에 품고 나와야 된다. 이런 말이에요.

 

(출애굽 12: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나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

 

그러면, 거기서 나와야 하는 자들은 전부 이렇게 먹어야 되는 거죠. 그러면 전부 지팡이를 갖고 나와야 되는 거예요? 그럼 한 200만이 전부 지팡이 짚고 다녔겠네요. 그런 말이겠어요? 그들이 다 죽었을 때 지팡이 200만개? 그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럼 옷이 해지지 않고 신이 낡아지지 않았다는 말도 그런 말이겠어요? 생각을 해 보세요.

 

(시편 23:4) 4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인도(안위)하여, 어디로 끌고 가죠? 쉴만한 안식의 물가로 끌고 가요. 물이 있는 곳으로. 지팡이는 그런 거예요. 그러니 반드시 지팡이는 가져가야죠. 아니, 내가 지팡이로 가야죠. 그래야 그들을 인도하죠. 이 지팡이가! 그런데 왜 주님은 어떤 곳에서는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의 육신을 의지하는 지팡이! 그게 뭐냐면 자기의 행위이기도 하고, 자기의 스펙이기도 하고, 뭐 이 세상의 물질이기도 하고, 그게 우리가 의지하는 지팡이잖아요? 그걸 가져가서, 그걸 근거로 내 나라를 전파할 생각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지팡이 가져가지 말라는 거예요.

어떤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싹 트이는 지팡이!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지팡이! 그 지팡이 가져가라는 거예요. 육적 지팡이가 있는 이들이 어떻게 그 영적 지팡이인 진리를 의지 하겠습니까? 의지 안한다니까요. ‘그 지팡이 치워라!’ 그러는 거예요, 어디에서는. 어디에서는 지팡이 가져야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애굽 마술사들이 똑같이 지팡이를 가졌는데, 그 지팡이가 뱀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어서, 그걸 먹어 버리죠? 애굽 마술사들이 가진 지팡이, 그런 지팡이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마르코가 지팡이는 가져가야지이렇게 기록 한 거예요.

그러니까 가져가라’, ‘가져가지 말라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위의 것이냐 아래 것이냐가, 중요한 거예요. 어디서는 지팡이를 가져가랬다가, 어디서는 가져가지 말랬느냐~ 그런 질문 할 게 아니라니까요, 그거는. 그건 유치원 수준의 질문인 거예요. 대단한 거 발견한 것처럼 말이지~ 어디 성경에 이렇게 모순되는 것들이 적혀 있다고. 전혀 모순될 거 없어요.

그러니 당연히 영적 의미의 지팡이와 주머니는 가져가야죠. 그리고 귀하고 귀한 보물 같은 즉 그리스도로 해석된 예수라는 도 가져가야죠. 그 돌이 뭐예요? 양식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속전이니까. 그런 주머니 속의 그 양식!

주머니 속의 그 돌! 그 보물! 그거 가지고 아무도 물리치지 못한, 철옹성 같은 장군 하나를 물리친 존재가 있으니, 다윗이죠? 다윗이 몇 번째 아들? 일곱 번째 아들이에요. , (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팔(8)이 됩니다. 그게 다윗이에요. 다윗이, (7)이 기름 부음을 받으면, 완성이 되는데, 그게 샬롬이에요.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성전이 완성 되는 거거든요. 런데 오늘은 이제 다윗 이야기하는 거니까. 다윗이 그 누구도 무너트릴 수 없는, 호 코스모스(κόσμος)’의 그 세상, 그 뜨인 돌이 부셔버린 그 신상 있죠? 그것과 같은, 골리앗있죠? 그걸 갖다가 박살을 내는데, 뭘로 박살내는지 아세요? 지팡이! 주머니! ! 이걸로 부수는 거예요.

 

(사무엘상 17:39-51) 39 그리고 자기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것을 입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것을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하고는 그것을 모두 벗어 버렸다. 40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집어 들고 개울가에서 자갈 다섯 개를 골라 목동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돌팔매 끈을 가지고 그 불레셋 장수 쪽을 걸어갔다. 41 불레셋 장수도 방패당번을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윗에게 다가 왔다. 42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보고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 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43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리고 불레셋 장수는 다윗에게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나 다윗은 불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네가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46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불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47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야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 나가다가 49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50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 51 다윗은 달려가서 그 불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불레셋군은 저희 장수가 죽는 것을 보고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 골리앗, (야트/גּלית) 이 말이 벌거벗다.’ 이런 말이에요. ‘벌거벗은 포로’, ‘수치스런 포로’, ‘선악과 먹고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그 이야기 하는 거죠. 발가벗은 자 하나가, ‘내가 이세상의 왕이고, 나를 이길 자는 없다.’ 하느님처럼 되어 있는 거죠. 그것을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 주머니! 그 보물! 그 신! 그 지팡이가 되어, 그 앞으로 가는 거예요. 가서 그 돌을, 물매! 그 다섯으로 그의 머리를 쳐 죽여 버리는 거죠. 그리고는 그의 칼을 빼어, 내가 진리의 성령의 검으로 갖는 거죠. 그죠? 그것으로 그 상대의 목을 자르는 게, 여러분의 역사 속 인생인 거예요.

그게 칠(7)의 사람들의 인생이에요. 그러면 그를 팔(8)이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노아의 방주에서 나온 사람들이 (8)’인 거죠. 그리고 그들을 팔(8)의 날에 할례 받은 자라고 하는 거예요. (왜 난지 팔일 만에 할례하는 지 아세요? 거기까지 하면, 또 밤새워야 되니까 나중에~)

, 그렇게 죽은 율법주의자들은, 공중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주머니와 지팡이와 돈보따리와 보물! , 가장 귀한 돌을 담는 그릇임과 동시에, 보물인 것이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지면, 그게 양식인 거고, 그게 바로 이웃의 죄를 대속하는 속전! 돈이라고 번역 되었지만, ‘!’, 속전인 거고, 그리고 그것이 속옷과 겉옷 즉, 짝으로서의 옷인 거죠.

그러니까 지팡이! 주머니! 돈주머니! ! 양식! 두벌 옷! 이건 반드시 가져가야 되는 거죠. 그러나 아래의 것은 아닌 겁니다. 그래서 가져가지 마라도 맞고 가져가라도 맞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그게 그건지 알죠? 누가 뭐라고 그래도~.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아래의 것들로 가지고 가면, 자신의 능력과 재주만을 자랑하면서, 실컷 자기의 의만 쌓다가 오는, 엉뚱한 일만 하게 되는 거예요. 따라서 말씀을 땅에 쌓은 보물로 가지고 있는 이들은, 평생 자기의 의만 열심히 쌓다가, 멸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거고, 말씀을 하늘의 보물로 쌓아서, 그 보물을 가진 주머니가 되어, 보물이 되는 이들은, 그 주머니 안의 보물, 그 신발 안의 발, 칼집 안의 검, 주머니 속의 양식을, 올바로 전하면서, 하느님의 귀한 보물로 살게 되는 거예요. 그게 보물이에요.

그래서 요한 묵시록에 우리를 보석으로, 보물로 그려놓은 거예요. 하느님이 그러는 거예요, ‘이게 내 보물이야내가 보물인데, 내 밖에, 내 환경이 그까짓 거 보물 좀 아니면 어때요? 내 하느님이 나보고 가장 귀한 돌, 가장 귀한 보물이라는데. 그 의식이 없으니까, 내 밖의 것을 자꾸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내 껍데기를 귀한 보물로 만들어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닌 겁니다. 우리가 보물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보물입니까? 아니면 티끌로 돌아갈 땅입니까? 잘 고민해 보세요.

 

 

 

  



7,223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