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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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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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4-22 ㅣ No.146283

16년 전입니다. 아는 자매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길 하는데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사제로 사는지 14년이 되어 가는데 어떻게 지낼 만 한지요?” 저는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지낼 만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못해서 지내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제 생활이 재미있으면 하고 재미없으면 시장에서 물건 바꾸듯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은 제게 이런 이야길 하였습니다. 둘째 애가 성당에서 복사를 하는데 사제가 되고 싶어 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하였다고 합니다. 참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답도 하기 전에 한 자매님께서 이렇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처자식이 있으면 자신이 맡은 신자들을 열심히 돌보며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친절하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어때요 정확한 답변인가요? 수도자나 사제들의 독신을 단순히 효과적인 사목활동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은 효과주의나 경제마인드로 접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목활동만 잘 한다면 독신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독신생활의 참된 이유는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독신으로 사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을 온전히 내놓으신 주님을 갈림 없는 마음으로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사제가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사목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독신생활에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결과이지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들의 독신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그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입니까!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혈연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가르침을 먼저 생각하고 따라야 한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릴 수 있는 무소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필요하지 않은 것들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주님을 위해서 정말 필요한 것을 버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회심(回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과 함께 지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보고나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무엇이 바오로 사도의 삶을 바꾸었을까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던 체험입니다. 예수님을 체험했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지금 죽는 것도 좋습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 사도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될 수 있었다면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복음의 사도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미사성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 모시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는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최후의 만찬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온전한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면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이루어졌다면, 우리의 회심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매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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