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랩]6월29일 성베드로와 성바오로사도 대축일 ♬시편1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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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99 최인숙 [church21] 200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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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6월29일 성베드로와 성바오로사도 대축일(교황 주일)♬시편150장 출 처 인창동성당 게시판 작성일 2005-08-28 스크랩/조회 0 / 1 
Apostles Peter and Paul-GRECO, El
1592.Oil on canvas, 121,5 x 105 cm.The Hermitage, St. Petersburg
축일: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교황 주일)
St.Petrus(Pietro) St.Paolo(Paulus)
Solemnity of Saints Peter and Paul
성 베드로와 성바오로는 공동체를 위한 일치의 표지이며 구원의표지입니다.
두 분은 로마시의 보호자이다.
베드로 성인는 어부였고 이름이 시몬이었다. 네로 시대에 십자가에 머리를 밑으로 하고 거꾸로 순교 하였다.
바오로 성인은 제일의 선교사도이며 가장 중요한 선교사로써 67년 로마에서 머리를 잘려 순교하였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각각 64년과 67년에 순교하였으며, 그들의 무덤은 바티칸과 로마 성밖 오스티아로 나가는 길가에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며 주님께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는 약속을 듣는다.
그는 형제들을 굳세게 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거친 인물에게 그토록 중요한 일을 맡기시는 하느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는 시험을 이겨 내지 못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베드로였기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걸려 넘어지는 형제들의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바오로는 그리스도께 늦게 부름 받았지만,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활기있고 놀라운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주님의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어떤 시련도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씨 뿌리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었다.
서로 대조적인 두 인물이 똑같이 위대한 공헌을 하여 교회가 커 나가는 데에 주춧돌이 되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주님의 신비이다.
로마 교회는 두 사도를 같은 날에 기념해 왔다.
두 사도는 교회의 두 기둥으로 공경을 받아 왔으며, 옛 성화에도 함께 등장한다.
보편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에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정하여,
성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께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전세계 모든 신앙인을 훌륭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성 아우구스띠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5, 1-2. 4. 7-8: PL 38, 1348-1352)
이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전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의 순교는 이날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퍼져 나가고, 그들의 말은 땅 끝으로 번져 갔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전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의의 길을 좇아 진리를 고백하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이요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한 복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이 말씀은 이보다 앞서 베드로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 즉, 네가 고백하는 신앙을 내가 이 반석위에 세우리라.
네가 나더러 "주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했으니 내가 그 고백 위에 내교회를 세우리라.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서 나오지 않고 반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이름도 ’베드라’(반석)라는 말에서 연유하지 베드라가 베드로라는 이름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만이 거의 어디서나 온 교회를 대표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를 대표할 책임을 맡은 베드로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쇠는 한 사람만 받은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탁월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에게 열쇠를 주겠다."라고 하실 때, 모든 이에게 주실 것을 베드로에게 위탁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하늘 나라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온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모든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역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칠 과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 혼자서만 주님의 양 떼를 쳐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하십니다. 사도들 중 으뜸인 베드로에게 먼저 말씀 하십니다.
"베드로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한번, 두번, 세번까지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경솔한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세 번이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당신은 사랑의 고백도 세 번 해야 합니다.
세 번 묶은 것은 역시 세번 풀려져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묶은 것을 사랑으로 푸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번, 세번까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맡기셨습니다. 이 두 사도들의 순교는 같은 날에 기념합니다.
이 두 분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날에 순교했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가고 바울로가 뒤따랐습니다.
사도들의 피로 우리에게 거룩하게 된 이 축일을 경건히 지내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 그들의 수고와 고난, 그리고 그들의 증거와 복음 전파를 공경하도록 합시다.


성 베드로 사도( St. Petrus Ap)AD 64년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신 “스스로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라는 말씀은 특히 성 베드로 사도에게 잘 맞는 말씀이다.
그는 원해 비천한 어부에 지나지 않았으나 주님께 친히 사도들의 으뜸, 모든 교회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주님의 대리자가 되었고, 그 권한을 상속한 로마 교황은 교통(敎統) 연면(連綿)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보살피는 대업을 수행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티베리아 호수와 인접한 베사이다 출신으로서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의 아들이며,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였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마이어로 베드로 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였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첫번째 기적 을 행하신 가나의 혼인잔치를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기적 등 등 예수의 주요 제자로서 항상 그분을 수행하며 중요한 일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을 하였을 때 주님은 그에게 "당신은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
그리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교회는 이 말씀으로 베드로가 첫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빌라도의 궁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 한 사실이 있지만, 빈 무덤을 보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던 최초의 증인들 중의 한 분으로 꼽힌다.
그리고 주님의 승천 이후 베드로는 신도들의 우두머리로 처신하고, 유다 자리에 마티아를 사도로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번째 사도이며,
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고, 성령강림 때에 설교하여 3,000명에게 세례를 베푼 분이다.
43년에 그는 헤로데 아그리바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를 주재하였다.
초기 전승에 따르면 그후 베드로는 로마로 가서 초대 주교가 되었으며, 네로 치하에서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순교 얼마 전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발현이 있었다고 전해온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그의 복음 전반부를 승리의 절정에서 끝맺는다.
그는 예수께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심과 오해와 반대를 기록 했으며, "당신은 메시아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 고백을 기술했다 (마르 8.29).
그것은 베드로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질을 하다가 예수님을 위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날로부터 시작된 영광스러운 순간들 가운데 하나이다.
신약 성서는 베드로가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도록 선택되어 사도들의 지도자가 된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그는 예수님의 얼굴이 변하는 장면을 목격하였고 죽은 아이의 소생과 겟세마네의 고통에 참여하는 특전을 받았다.
그의 장모는 예수님에 의해서 완쾌되었다. 예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파스카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요한과 그를 파견하셨다.
그의 이름은 모든 사도들의 명단에서 맨 첫머리에 나온다.
그리고 그에게만 해주신 이런 말도 있다.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그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너는 복이 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마태 16,17-19)
그런데 복음은 베드로에 관하여 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닌 내용도 상세하게 덧붙임으로써 복음 자체의 진실성을 입증하기도 한다.
그는 결코 선전가가 아니었다.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서까지도 인간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범하게 죽어야 할 인간들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는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하였지만 어린이 같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버렸으니 무엇을 얻겠습니까?" 하고 묻기도 했다.
그는 고통당하는 메시아의 개념에 반대하다가 그리스도의 심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려 애쓰고 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지만 일곱 번이란 제한을 내세웠다.
그는 신앙으로 물 위를 걸었지만 의심을 했기 때문에 물에 빠졌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어 주는 것을 거부했지만 다음에는 온몸을 깨끗이 씻어 달라고 했다.
그는 절대로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최후의 만찬에서 맹세하였지만 결국은 절대로 그 사람을 모른다고 여종에게 맹세했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실 때 말코스의 귀를 자르면서 충성스럽게 저항했지만 끝에 가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그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시고 용서해 주셨다. 그는 밖으로 나가서 비통의 눈물을 흘렸다.
그는 다혈질이고 성격이 급하면서도 주님을 참으로 사랑했다.
주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적에 누가 그보다 더 열심히 들었는가? 누가 그보다 더 주님의 몸에 대해 염려했는가?
예수께서 게세마니 동산에서 배반자 유다에게 잡혔을 때 스승을 생각하는 열정에서 상대에게 달려든 자는 누구였던가?
주님께서 재판소에 끌려가실 적에 매우 근심하며 맨 처음으로 그 뒤를 따라가 밤새도록 그곳을 떠나지 않은 자는 누구였던가?
이런 점을 생각할 때 그의 예수께 대한 사랑은 다른 사도들과 제자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다른 사도들보다도 베드로에게 더 쉽게 고해 성사를 보러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성덕의 단순한 사실에 대한 좀더 뚜렷한 실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
베드로야, 네가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인간적인 지혜가 아 니라 내 아버지의 계시이다.
네가 아니라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여러분은 스스로 낮추어 하느님의 권능에 복종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여러분을 돌보십니다.
정신을 바짝 치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 아시다시피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교우들도 같은 고난을 당해왔습니다.여러분은 잠깐 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에게 당신의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불러 주신 하느님,
곧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 하게 하여 주시고 든든히 세워 주시고 힘을 주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1베드 5,6-10)


The Conversion of St Paul - ESCALANTE, Juan Antonio Friasy
Oil on canvas.Museo Cerralbo, Madrid
성 바오로 사도(St. Paulus, Ap)
이방인의 사도.순교. 타르소 67년(?)
벤야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성바오로는 저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바리사이파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독실한 바리사이파였으며, 모세의 율법학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그가 그리스도께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크리스챤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런데 이제 그가 이방인들을 환영하는 이단자로, 배반자이며 배교자로 자기 형제인 유대인들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바오로의 근본적인 확신은 하느님만이 홀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단순하고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어떠한 인간적인 노력-가장 철저하게 율법을 기키는 것까지-도 죄에 대한 보상과 은총의 대가로서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인간의 선행을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죄로부터, 악마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구원되기 위하여 인간은 온전히 에수님의 구원 능력 앞에서 자신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 없는 율법의 쓸모 없음에 대하여 유대인들과 평생을 두고 논쟁했지만 자기 형제인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적은 없었다.
그는 아직도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약속의 자녀들인 유대인을 원줄기로 하여 이방인들에게 접목된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스테파노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그가 또 다른 크리스챤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체험한 일은 (서기34-36년사이)
교회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었던 그 어떠한 그리스도의 사절보다도 더 열성적이고 박력이 있으며 용감한 일꾼으로 만드는 데 힘이 되었다.
이 환시는 극적인 그의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다음,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커스로 돌아오면서부터 그의 파란만장한 선교사 생활이 막을 올린다.
그는 39년경에 바르나바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고 공식적으로 크리스찬 공동체에 입적한 후, 43년경에 안티오키아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교회의 교사가 되는데,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그의 대 전교활동의 서막을 올린 결과가 되었다. 그 이후로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 여행을 한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하여 키프로스 섬에 머물렀고 그다음 지금의 터어키를 통과했다.
사도들의 예루살렘회의 후에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여행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명백하게 ’12 사도들의 파견’이라고 표현한다(사도 15,36-18,22).
터어키를 다시 횡단하여 프리기아와 그가 아팠던 갈라디아(갈라 4,13)에서 복음을 전한다. 그 다음 루가와 함께 유럽으로 들어와서 필립비 공동체를 세운다(희랍 남부).
한 동안 감옥 생활을 한 후 희랍에서 복음을 전한다. 아테네에서의 복음 전파는 철학자들 앞에서 좌절된다.
고린토에 가서 공동체를 세우는데 그 교회는 바오로 사도를 매우 성가시게 하였다. 그후 안티오키아에 되돌아 왔다.
제3차 여행 동안 바오로 사도는(사도 18,23- 21,17) 현재 터어키 지역에 속하는 교회, 특히 에페소 교회, 그 후 희랍에 속하는 교회와 고린토 교회를 두루 다녔다.
밀레도스를 지나면서 바오로 사도는 장로들에게 자기가 당한 고난을 말해준다.
이 말 그대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어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사도 21장). 그는 로마 시민이므로 로마에 항소하였다.
이렇게 로마를 향하여 4번째 여행이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사도21-26장). 60년 아니면 61년에 도착하여 63년경까지 감옥에 갇혔다.
한편 좀 자유스런 몸이 되면서 로마의 그리스도 신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옥중 서간’을 쓴다.
63년경 감옥에서 해방되어 아마도 스페인을 향하여 마지막 여행을 했는지도 모른다(로마 15,24-28).
아니면 다가올 자기 운명을 편지로 써서 알려준 디모테오와 디도의 공동체를 향하여 갔을지도 모른다. 그후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67년경 칼로 참수, 순교를 당하신다.
바오로는 양극으로 대립된 유대 교회와 이방 교회를 일치시키기 위하여 타협 없이 최선을 다하였다.
그의 가장 위대한 행동 가운데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모교회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돕기 위하여 이방 교회에서 벌인 모금 운동이다.
그것은 우선 그들의 물질적 결핍을 구제하는 방법이었으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루어진 공동 연대성을 상징적으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바오로는 아마도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의심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실패가 어떠한 것이든 율법의 노예에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도구이며,
유대인들의 고귀한 유산에 새로이 접목된 이방인들의 가지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도구였다.
바오로의 순교 장소에는 오늘날 한 성당이 건립되었고 그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그의 묘지위에는 미(美)의 극치를 드러내는 대성전이 웅장하게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성 바오로 대성전이다.

성 바오로는 생존시에 친히 세운 교회나 제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14통이나 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신약성서로 인정받아 지금도 예수의 가르침을 증명하는 귀중한 문헌으로 되어 있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크리스챤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고린토에서 57년-58년), 고린토 1서(에페소에서 54년), 고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디아서(에페소에서 54년),
골로사이와 필립비, 에페소,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 Ⅰ-Ⅱ(고린토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디모테오서와 디도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듯 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 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바오로의 활동은 다른 사도들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수많은 나라에 가서 전교하며 갖은 환난을 당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도 말한 바와 같이 종종 감옥에도 갇히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냉대와 학대를 받았다.
그는 유다인들에게서 40대에서 하나 모자라는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로마인들에게서도 태형을 세 번 당하고, 세 번 파선을 당해 일주일 동안 바다 위에서 표류한 적도 있었다.
또한 그에게 가끔 닥쳐온 죽음의 위험, 병고, 기갈, 단식, 추위, 노고, 영적 고통 등, 그는 일체를 그리스도를 위해 인내했다.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몽둥이로 맞은 것이 세 번,돌에 맞아 죽을 뻔한 것이 한 번,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표류한 일도 있습니다. 자주 여행을 하면서 강물의 위험,강도의 위험,동족의 위험,이방인,도시,광야,바다의 위험,가짜
교우의 위험 등의 온갖 위험을 다 겪었습니다.
그리고 노동과 고역에 시달렸고 수없는 밤을 뜬 눈으로 새웠고 주리고 목말랐으며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은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2고린 11,24-27;12,10)
박해와 천대와 나약함은 매일매일 짊어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였으며 더욱 승화될 수 있는 요소였다.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있었으며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이방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일하다가
로마 황제 네로라는 이방인 권세자에 의해서 순교하게 되었다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예수야 말로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라 2, 20)하신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가장 열렬히 원했다.
그 희망은 성취되어 그는 지금 성스러운 사도, 영광스러운 순교자로서 천국의 영복을 누리고 있다.

♬시편150장.알렐루야.야훼를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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