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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6년 5월 25일 (월)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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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절두산의 사람들!~순례길117처(절두산순교성지)

100544 이명남 [agnes536] 스크랩 202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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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북로변 절두산성당을 지나칠때마다 ......

색색의 장미꽃들 쟁여진 박스들 잔뜩 싣고 양재동 꽃시장을 달리던

정시복베드로 형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십자성호를 긋는다했다.

 

수도없이 오가던 꽃시장길을 리노할매도 절두산을 지나칠때면 절로 경건해지는

그림속 한장면을 찰나에 지나쳐 버리며 때론 아쉬워 했는데...

 

한강변에 우뚝 선 신앙의 파수꾼!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피로 물들인 대표적 순교성지 절두산!....

 

우뚝 솟은 봉우리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기도 하고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 해서 잠두 또는 용두로 불리던 서강 밖의 봉우리가

절두산이 된 데에는 가슴 시린 아픔이 있다.

대원군이 자신의 쇄국 정책을 버티어 나가기 위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함으로써

당시 절두산에서만 무려 1만여 명의 교우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되지만

그 수가 맞는지 틀리는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한다.

 

‘먼저 자르고 본다.’는 식으로 무명의 순교자들이 아무런 재판의 형식이나 절차도 없이

광기 어린 칼 아래 머리를 떨구었고, 그래서 29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록도 없다 또한 전한다.

 

원래 잠두봉 또는 용두봉은 예로부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객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으로. 도성에서 김포에 이르는 나루터 양화진을 끼고 있어

더욱 명승을 날렸던 곳으로,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꼭 유람선을 띄웠다고 전해져 온다.

하지만 병인년인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입해 오자 대원군은

"오랑캐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의 무리들 피로 씻어야 한다.”며

광기 어린 박해의 칼을 휘둘렀고... 당시 대원군은 일부러 천주교도들의 처형지를

이전의 서소문 밖 네거리와 새남터 등에서 프랑스 함대가 침입해 왔던 양화진 근처,

곧 절두산을 택함으로써 침입에 대한 보복이자 ‘서양 오랑캐’에 대한 배척을 표시했다.

고 기록된 역사적 배경이 있다한다.

 

꾸르실료회관이 있는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꾸르실료 회관앞 강변을 내려다보고 계신

성모상께 인사드리고, 오늘도 성령의 불칼로 우리의 보루로 서계신 사도바오로의 늠름한 상과

저쪽 한켠에서 그날의 역사를 증언하고 계신 이승훈 베드로님의 상앞에 고개숙여 인사하고

강변 가까이 있는 순교자 기념탑을 걸어가본다.

큰칼 모양의 중심탑과 잘라진 머리가 올려져 절두탑으로 불리는 우측탑.

오벨리스크형식으로 제작되어 수많은 무명의 순교자를 조각해 넣은 좌측탑으로 이루어진

순교자 기념탑은 참으로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으로 한강변 그날의 역사를 품어안고 있다..

 

어마어마한 큰 바위돌을 깍은 뒤벽에는 27명의 순교성인들의 이름과 무명의

순교자 한분이 새겨져있어 더욱 새로운 감동으로 가슴에 스며든다.

성당을 찾아가는 길 왼편에 서있는 한국순교성인 시성기념 교육관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오늘도 실제모습으로 성모님곁에서 어서오라고

우리를 반기시고, 곁에는 푸른망토의 성모님께서 하트모양의 성심과함께

예수님을 안고 계신다. 엎드려 깊은절하고 다시나와....

저 꼭대기 성전을 찾아 넓디넓은 광장길을 가는 길에는 묵상의 거리가

참 많기도 하다.

시대의 성녀였던... 마더 데레사님의 인자한 얼굴과... 팔마가지를 손에든 예수님 상과...

반짝반짝 금그물망의 모습으로 서계신 또다른 예수님상....은

마치도 캄캄한밤 호수위의 예수님처럼 환하게 제자들을 비추시며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하시는 듯하다.

성 김대건 신부의 동상, 오타 줄리아의 묘, 박순집 일가 16위 순교자 현양비,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일행이 앉아 쉬었던 ‘오성바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 흉상, 십자가의 길 등이 마련되어 있어 모두를 알현하고 돌아오다보니

전날... 풍수원성당을 구석구석 돌아보던 3시간의 발품팔이 순례가 생각난다.

 

박순집(베드로)은 순교자를 모시는 일에 일생을 바친 신앙의 증거자로...

부친 박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치명한 범주교, 샤스탕, 모방 신부의 시신을

목숨을 걸고 노고산에 매장하였다가 4년 후에 자기 문중 산인 관악 삼성산에 안전하게 이장하기도 하였다한다.

 

박바오로는 10월 17일 이곳 절두산에서 순교하였고,. 박순집은 아버지의 성업을 이어

부친 일가족 6명의 순교자는 물론 무명의 순교자 그리고 성인 베르뇌 장주교와 신부 4명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찾아 왜고개에 안장, 순교자 모시는 일에 헌신하였다는 글을 보며

구약속 토빗의 삶과 어찌 그리도 닮았을꼬!..싶어 말씀의 가르침이 가슴에 와 박혀든다.

 

오성바위. 복자 바위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블뤼 안주교, 오매트리 오신부, 위앵 민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의 사연이 깃든 바위로 다섯 분의 성인을 기리는 뜻으로

오성 바위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한다.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될 때와 충남 보령 갈매못 형장으로 끌려갈 때

쉬었다 간 바위로 이 다섯 성인들이 여기서 쉬는 동안 포졸들이 포승을 풀어 주어서

안 주교는 교우들을 만나 격려하고 함께 기도한 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고 한다.

 

"반석아부지~ 이 바위 기억안나요? 그 왜 괴산연풍성지 갔더니 거기서 만났던

바위 아닌교? 다섯분이 커다란 바위위에 서서 하늘보고 기도하고 있던...

그 바위말이제~~!! 제천 베론성지서 본 장주기요셉님도 함께 가고 있더만요.."

 

그 옆의 돌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다블뤼 주교가 21년간 숨어 살던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밟고 다니던 문지방돌이라한다.

가는데 마다 안계실수가 없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상께 절하고...

길고긴 십자가의 길을 오늘은 마음모아 정성으로 기도하며 걸어간다.

지난주에 못걸은 길 기워갚기라도 하는 마음으로...ㅋㅋ

        

가는길에... 남종삼 선조께도 깊고 반가운 인사드린다.

강화 일만위순교자 현양동산에서 처음 뵌 성인은 전국 어느 성지서나 참

자주 많이도 만나게 되는 성인이시다.

 

조선 최고의 관직에 있으면서 대원군과 천주교의 가교역활을 하느라

애쓰다 순교하신 고고한 분을 여러곳에서 만날때 마다 반가워 인사드린다.

서소문 밖, 새남터, 당고개 등 큰 소리로 부르면 화답할 수 있는 순교성지들은

도시의 소음에 묻히고 아파트 그늘에 가려 그 옛날의 아픔도 함께 가려진 듯하다.

하지만 유유히 흐르는 한강물과 같이 고요함 속에서도

우리에게 굵고 강한 목소리로 소리 높여 꿋꿋한 신앙을 가르치고 있다

기도의 은혜가 풍성하다고 소문난...

동굴속 성모님앞에 꿇어앉아 신비의 한단을 바쳐드리며 오늘도

촛불 열개로 감사와 청원의 향 하늘높이 피워올린다.

 

성모상앞 한켠 벽면에 수없이 많은 묵주들이 전시되어 있어 리노할매

그냥 필요한 사람 한개씩 가져가라고 있나 싶어 다가가니..

성모상앞에서 기도하며 받은 은혜의 감사로 전국각지의 사람들이

봉헌한 묵주알들 이라고 적혀있더라...~ㅋ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도 다 돌아 간후에야 성전으로 올라간다.

참으로 오랜세월만에 이 성전 돌계단을 올라본다.

30년도 훨씬전.... 성경철야공부에 빠져있고... 가평 작은예수회

철야기도도 열심히 다니던 시절...

 

안수길 곤라도님의 철야기도 가르침과 안수가 있다고 능곡성당 식구들과

어울려 몰려왔던 어느날 밤의 일이 떠오른다..

그날밤...미사후. 한사람 한사람.. 꿇어앉아 안수를 받는순간 부드럽고 따스한

성령의 바람이 나를 편하게 눕혀주던 성전바닥은...

아! 내가 천국의 정원에 누워있구나! ......!! 잠깐의 영원속 머뭄자리였었지...

 

참으로 오랜시간이 지난후에야 오늘은 리노할매 혼자 그자리에 앉아

닳아지고, 빵꾸난 믿음의 옷자락 기워달라고... 주님앞에 앉아 성모님께

도움청하며 신비의 한단 또 바쳐드리며 간구한다.

성전지하에 모셔진 순교성인들의 유해는 그놈의 코로나때문에 또

출입금지 팻말로 돌아서게 한다

내려오는 길 아래층에 열려진 순교박물관을 관람하며 다시한번

순교선열들의 삶을 기억하며 숙연해지는 마음에 담아 돌계단 내려오다

성전입구...

고난의 길에서 만난 머리잘린 넋들에게 다시한번 깊고 아픈 절로

존경과 감사의 예를 드리며....

오호~! 통재의 절두산 순교성지를 빠져나온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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