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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자) 2025년 12월 10일 (수)대림 제2주간 수요일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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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대림 제2주간 화요일]

186748 박영희 [corenelia] 스크랩 2025-12-09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마태 18,12-14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오늘 복음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입니다. 루카 복음의 병행구절에서는 목자가 양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내버려둔 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해, 오늘 마태오 복음에서는 목자가 마찬가지 이유로 길을 떠나면서 아흔아홉 마리 양을 ‘산’에 둡니다. 그리고 이 ‘장소’의 차이가 중요한 묵상 거리가 되지요. 척박한 땅 ‘광야’에 머무르는 것이 그 어떤 세속적인 도움에도 의지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을 가리키며 나를 보살피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해야 함을 강조한다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거룩한 장소인 ‘산’에 머무르는 것은 그분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며 지켜주신다는 굳은 믿음 안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뜻을 헤아리고 실천함으로써 그분과 완전히 일치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교회 공동체가 보여주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겠지요. 그래야만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실 수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중에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 양이 길을 잃은 건 세상 것들에 한눈을 파느라 주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 양은 평소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여러가지로 말썽을 일으키며 다른 사람들의 골치를 썩게 만드는데, 굳이 그 양을 찾기 위해 그나마 주님 뜻을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내버려두고 떠나시는 건 공평치 못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주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에 품고 계시는 ‘공평함’은 모두를 똑같은 기준과 방법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손가락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른다면 길 잃고 방황하는 형제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주님 혼자서 그를 찾아다니시게 내버려두지 말고, 나 또한 주님으로부터 구원의 일꾼이자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생각하며 주님과 함께 그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또한 언제든지 그처럼 길을 잃고 헤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길 잃은 양의 입장이 된다고 해도, 그런 나를 찾아 구원하시는 것이 예수님의 ‘의무’라고, 그분의 양떼인 나에게는 나를 찾아 구원해달라고 주님께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것은 주님께서 ‘의무’라 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마음, 즉 그분 ‘자비’에서 우러나와서 하시는 일이지요. 자비는 당연한 듯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실 때까지 간절하게 청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길을 잃은 건 엄연히 나의 잘못인데, 내 쪽에서는 그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 즉, 즉각적이고 단호한 ‘회개’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주님께서 알아서 나를 구해주시기만 기다리는 것은 그분의 자비를 악용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이들은 구원 받지만, 그분 자비를 악용하며 회개를 미루는 이들은 심판 받는다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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