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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은 자기 뜻이 들어있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다.

156934 김글로리아7 [gloria7] 스크랩 2022-08-14

 

 

 

 

 

 

 

 

 

 

 

 

2022년 다해 성모 승천 대축일

 

 

 

 

<사람은 자기 뜻이 들어있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다>

 

 

 

 

복음: 루카 1,39-56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천재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마지막 작품이고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힙니다.

그는 1600년경에 귀족들의 그림을 도맡아 그리던 가장 유명하고 실력도 완벽한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술만 취하면 욕설과 폭행 등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귀족들은 돈을 대어 그를 빼내 주고는 했습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횟수가 열다섯 번이나 됩니다. 

 

 

    자기 실력을 믿고 그렇게 자만하던 중, 1606년 5월 사소한 말다툼 끝에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고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가 다시 후원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번엔 모두 등을 돌려버리고 맙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탈옥에 성공하여 이태리 가장 남쪽의 섬 몰타로 도주하여 몸을 숨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너무 커서 칼을 차고 신발을 신고 잠을 잘 정도였다고 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이 너무나 지긋지긋한 나머지 유일한 사면권이 있었던 교황을 설득해보려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1610년 세계 처음으로 조명을 사람에게 직접 비추는 기법을 이용해 어린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들고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들어 올리는 그림을 완성해냅니다. 

    이 그림은 교황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그림 속의 다윗은 어렸을 때의 순수하고 겸손했던 자기 모습을 의미하고 목이 잘린 흉측한 골리앗의 머리는 지금의 자신을 상징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성직자들의 말에 불순종하여 끊임없이 범죄를 저질러왔던 자기 자신을 죽였음을 의미하는 회개의 증거품이었던 것입니다.

 

 

    카라바조는 그 완성품을 들고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올랐으나 중간에서 경찰들이 카라바조를 연행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를 도둑으로 오인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그만 그림을 배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경찰들은 카라바조가 도둑이 아닌 것을 알고 놓아줍니다. 그러나 그림을 가지지 않고서는 교황에게 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 배를 쫓아 걷고 또 걷습니다. 그러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길거리에서 사망하고 맙니다.

 

 

    카라바조는 왜 그 그림에 그렇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그 그림이 아니면 교황을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그림 안에 자기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넣기 위해 피땀을 흘렸습니다. 그러니 소중한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뜻이 들어있는 것을 사랑합니다. 

 

 

    부모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기를 사랑했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기가 점점 커감에 따라 부모의 뜻이 아기 안에 더 들어갑니다. 아이를 위해 피땀을 흘리며 부모의 뜻을 아이를 통해 실현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주시는 부모에게 감사해서 그분들 뜻을 따라줍니다. 그렇게 두 발로 걷고 말도 하고 공부도 하고 좋은 사람이 되어갑니다. 부모는 그 아이 안에서 자기 살과 피로 넣어준 그 뜻, 그 보석을 보며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피 흘리고 고생한 자녀가 더 사랑스럽습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 아니실까요? 인간이라고 해서 다 천국에서 살게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면 가리옷 유다도 지옥으로 보내면 안 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리옷 유다 안에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넣어주시기는 하였지만, 자신을 죽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그 뜻이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불이 났을 때 내가 들고 나오는 것이 내 피가 가장 많이 섞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체를 영해도 그분 뜻을 실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께 귀하게 쓰일 수 없습니다. 

 

 

    ‘시몬과 페로’라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나이 든 시몬은 감옥에 갇혀 젊은 여인의 가슴에서 젖을 먹는 음란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젊은 여인은 시몬의 딸 페로입니다. 페로는 아사형을 받은 아버지를 위해 아기에게 주어야 하는 젖을 아버지에게 먹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삶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성모님을 부러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

성모님을 육체적으로 칭송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모님께서 칭송받으셔야 할 더 큰 의미를 말씀해주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모님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때 주님의 종으로서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를 서약한 것입니다. 그렇게 페로처럼 비난받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이런 분에게 영광이 주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있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커다란 귀걸이를 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한 영화에서는 이 소녀가 가정부로 묘사됩니다. 아버지가 아프셔서 젊은 나이에 남의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그 집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것은 가난한 화가뿐입니다. 그 화가도 능력이 부족하여 아내 집에 얹혀삽니다. 아내와 딸, 장모님은 화가가 그 여자와 빠지지 않도록 빈틈없이 감시합니다. 소녀는 그들에게 지쳐갑니다.

 

 

    그 소녀를 노리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 화가에게 돈을 대는 부자입니다. 그는 그 소녀를 그리면 돈을 내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소녀를 그리는데 화가는 아내의 진주 귀걸이를 귀에 걸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어찌 될지 뻔합니다. 그리고 소녀를 좋아하는 연인도 그 집에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 연인은 그 화가는 그림을 그려놓고 임신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소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하는 행동으로 그 화가만이 자신을 인정해주고 인간적으로 사랑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기로 합니다. 화가는 그 그림으로 매우 유명해집니다. 덕분에 소녀는 쫓겨나고 연인과도 사이가 안 좋아집니다. 몇 년 뒤 화가의 하녀가 그 소녀에게 선물을 전해옵니다. 그 진주 귀걸이입니다. 화가는 자신의 영광을 그 소녀에게 돌린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도 이런 희생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모든 뜻이 성모님 태중에 잉태되시고 그분의 피 흘림으로 실현되었습니다. 따라서 진주 귀걸이의 영광을 받아도 당연합니다. 그렇게 성모님께서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내 뜻이 아니라 주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갑시다. 그 피 흘림이 영원한 승천과 영광의 유일한 길입니다. 

 

 

 https://youtu.be/00nx-whkOYY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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