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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늙은 다윗과 아들 아도니야 / 솔로몬의 통치[1] / 1열왕기[2]

148684 박윤식 [big-llight] 스크랩 2021-07-3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늙은 다윗과 아들 아도니야(1열왕 1,1-9)

 

다윗 임금은 나이가 많아 그의 기력이 예전같이 않았다. 그가 이렇게 늙고 나이가 많이 들자, 젊은 한 때는 불같은 전쟁의 사람이었지만 말년에는 그도 이불을 아무리 덮어도 몸이 따뜻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군이신 임금님께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 드려 임금님을 시중들고 모시게 하였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 처녀를 품에 안고 주무시면 주군이신 임금님의 몸이 다소 따뜻해지실 것입니다.” ‘혼자보다는 둘에 나오는 둘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지지만, 외톨이는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으랴(코헬 4,11 참조)’의 처방에 나오는 말 그대로다.

 

사실 다윗의 몸이 왜 차가웠는가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나이 탓보다는 예루살렘을 파괴하러 온 천사의 손에 든 칼을 보고 겁에 질렸기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이다(1역대 21,16 참조). 아무튼 그는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 말은 대체적으로 일리가 있다. 그것은 이불 자체가 온기를 마냥 갖다 주지 않는다. 돌덩어리나 시신에 아무리 두꺼운 이불을 덮어 두어도 따뜻해지지 않는 것이 그 원리다. 우리 몸에 어느 정도 온기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불은 그 열을 가두어 몸을 덥힌다. 그러기에 몸 자체에 온기가 전혀 없다면야 이불 그 자체는 정말 무용지물이다. 그러기에 다윗의 신하들이 내린, 이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라는 그 처방은 참으로 기발했다. 그것은 처녀의 몸에는 따스함과 촉촉함이 넘치기에 그렇다.

 

이스라엘에서의 사울에 이어 다윗 왕국이 한창 번성할 때인 그 때만 해도, 어쩌면 다윗 주위에는 야밤에 온 몸을 드러내며 목욕하면서 뭇 남정네의 유혹의 손길을 내민 밧 세바라는 여자가 아직 버티고 있었고, 다윗이 손수 고른 여인으로 매우 슬기롭고 용모도 아름다운 아비가일(1사무 25,2-42 참조)을 포함한 여러 처와 첩들도 버젓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여자들마저 다윗의 그 식은 몸을 데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신하들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아름답고 젊은 여자를 찾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찾아내고는 그 처녀를 임금에게 데려왔다. 그 젊은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녀가 임금을 모시며 섬겼지만, 다윗은 그녀와 관계하지는 않았다.

 

아비삭이라는 이름 그 자체는 연륜의 지혜를 가리킨다. 그렇지만 이 수넴 여자는 다윗의 찬 몸을 덥힐 만큼 뜨겁게 달아 있으면서도, 다윗의 욕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거룩하였다. 아비삭이라는 그 이름자 그대로, 그녀는 다윗의 몸을 데우는 데만 온 지혜를 쏟았다. 그만큼 다윗과는 관계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아비삭이 지녔던 지혜 탓도 있었겠지만, 다윗이 아비삭을 향한 욕정의 억제 탓도 한 몫을 했을 수도 있어 보인다. 이는 처녀 아비삭에게 낌새를 드러내지 않은 다윗의 속내는 여자를 향한 욕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마도 이미 많은 여인을 곁에 둔 처지에 말년까지 욕정으로 처녀를 곁에 둔다는 염려 때문도 분명 있었을 게다.

 

이 와중에 하낏의 아들 아도니야는 내가 임금이 될 것이다.” 하면서 다윗이 약해진 것을 기회로 삼아 거만을 부렸다. 그는 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넷째 아들이다(2사무 3,2-5 참조). 압살롬은 물론 솔로몬과는 배다른 형제인 그는, 나이로 볼 때 아버지 다윗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는다 할지라도 자연스레 후계자의 자격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가 탈 병거와 말을 마련하고, 권위를 상징하는 호위병을 쉰 명도 두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평생 한 번도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으며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도니야 또한 용모가 압살롬 다음으로 뛰어났다. 그가 츠루야의 아들 요압과 에브야타르 사제와 의논하자, 그들은 자신을 지지하였다. 그렇지만 차독 사제,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나탄 예언자, 시므이와 레이, 그리고 다윗의 용사들은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는 왕자들인 자기 형제와 임금의 신하들인 유다의 모든 남자를 예루살렘 남동쪽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유다와 벤야민의 경계인 엔 로겔 근처 조헬렛 바위에 불러 놓고,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아 제사를 드렸다. 동물을 잡아 제사를 바치는 것은 새로운 임금의 즉위식에 동반되는 종교 의식이다. 또한 제사에 곁들여지는 식사에 친지들을 초대한 것은 임금의 자격으로서였다.

 

그러나 나탄 예언자와 브나야와 용사들, 그리고 자기 동생 솔로몬은 부르지 않았다.[계속]

 

[참조] : 이어서 ‘3. 나탄과 밧 세바의 계책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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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삭,아도니야,조헬렛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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