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미사 '24/06/25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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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6-08 ㅣ No.5797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남북통일 기원미사 '24/06/25 화요일

 

우리 말에,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왠지 꺼리고 싫어하는 대상을 피할 수 없는 곳에서 공교롭게 만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서, 잘 안되는 일이긴 해도 누군가와도 항상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에수님께서 그럴리는 결코 없으겠지만, 심술을 부르시는 것인지, 안 될 줄 뻔히 아시니까, 우리에게 함정이라도 파 놓으신 것인지,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싶어서, 왠지 모르게 불평과 한숨이 납니다. 예수님의 오늘 복음 말씀을 듣노라면, 우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한 국토통일을 주님께 청하면서, 남쪽 사람들끼리 마음을 모아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에 사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 아니 원수같이 서로 미워하고 경멸하던 사람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하시니, 애초에 이 기도와 청원이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싶어 그야말로 불평과 한숨이 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이해관계상 서로에게 필요하고 솔깃할 만한 제안이 무엇일지 고안하여 제시해야 하겠지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로서 쓸 수 있는 방법까지도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듯합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화해와 일치에 이르는 방법론을 용서라고 하시며, 몸소 십자가에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 하느님께 우리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해도 될까말까한 용서를 주님께서 거꾸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용서해주심으로써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어쩌면 무상으로 주어진 용서여서,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우리가 감사할 줄 모르고 계속 죄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계와 절벽과도 같은 우리의 밴댕이 소가지 같은 마음의 질곡을 넘어 용서의 첫발을 내디디며, 주님 사랑의 십자가 신비를 통해, 부활의 기쁨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통한 국토통일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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