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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봉 신부의 짧은 오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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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달현 [dalbong6] 쪽지 캡슐

2003-06-17 ㅣ No.2168

어제는 부제님 학사님과 함께 부제품과 사제품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러 다녔습니다. 오랜만에 셋이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품식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면서 제가 서품을 준비하던 때가 생각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의 설레임과 순수함이 말입니다. 지금도 그런 모습을 지니고 있는 지 잠깐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한 분의 사제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와 기도가 필요했는 지 모릅니다. 신자분들의 정성과 염려와 기도에 부응하는 사제 부제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물론 두 분은 아주 잘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 5,43-4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또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오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들은 지레 걱정부터 합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데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오늘의 복음 말씀을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나는 상대방에게 원수가 되지 않도록 해야지’하고 결심합니다. 능동적으로 원수를 사랑할 자신이 없으니까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원수가 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 말씀을 소극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키지 못 할 계명을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보여주셨고 우리도 그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용기를 주십니다. 사실 저는 우리 부모님에게는 ’웬수’였습니다. 제가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엉뚱한 짓을 할 때 저희 부모님을 저를 보고 "쟤는 자식이 아니라 웬수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두 분이 서로 싸우실 때도 서로 웬수가 됩니다. 때로는 자식이, 때로는 남편이나 부인이 웬수가 됩니다. 하지만 웬수라고 하면서 우리들은 누구보다도 자식을 남편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웬수를 사랑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이나 남편을 웬수로 부르면서도 사랑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웬수로 생각되는 이들도 자식이나 남편처럼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지레 안된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요. 어렵기 때문에 주님께서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수 사랑 이제 시작해 봅시다. 하루 아침에 원수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자꾸 연습하다보면 잘 될 것입니다. 오늘이 원수 사랑의 첫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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