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1/08/13

인쇄

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07-29 ㅣ No.4745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21/08/13

 

흔히 성소라고 말하면, 사제와 수도자의 길을 떠 올립니다. 그런데 사제와 수도자의 길뿐만 아니라 가정을 이루고 사회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평신도 사도의 길도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느냐에 여부에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이혼 문제를 가지고 율법을 따르라고 가르치는가의 여부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안 된다고 엄하게 답하십니다. “너희는 읽어 보지 않았느냐?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나서,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고 이르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4-6)

 

바리사이들은 현실의 입장에 비춰 예외 조항을 제시하였던 모세의 조치를 핑계 삼아 재차 묻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 하고 명령하였습니까?”(7)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일반화하려는 오류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다.”(8-9)

 

예수님의 말씀을 곁에서 듣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무거워 부담스럽다고 불평합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러하다면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10) 예수님께서는 혼인하지 않는 것은 비단 개인의 자유 선택일뿐만 아니라, 허락된 이들에게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락된 이들만 받아들일 수 있다.”(11) 그중에는 유전과 사고로 손상되는 일도 있지만, 하느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이들이 있으며, 많은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희생의 길을 선택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12)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 말이 거룩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따지고 보면 자신의 삶을 예수님의 말씀이신 복음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는 선택이고, 결혼하지 않고 교회에서 복음을 풀이하며 선포하고 실현하며 살아가느냐, 가정과 직장과 동네라는 구체적인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실현하며 나아가느냐 하는 또 다른 소명의 구분과 얼마만큼 복음을 실현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정도가 따름의 실제가 되겠습니다. 누구와의 경쟁이나 비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복음을 어느 정도 얼마나 깊이 그리고 그 실현의 동기와 목표가 주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보답에 있느냐가 식별의 기준이랄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내게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생명을 살면서, 주 예수님께서 은총으로 우리 죄를 씻어주시고, 성령께서 우리의 미진함을 채워주시고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리며 복음을 이룸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나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