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부활 제5주간 화요일 ’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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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5-06 ㅣ No.5022

부활 제5주간 화요일 ’22/05/17

 

어떤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가지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할 때, 그 채워지지 않는 성취감, 그리고 그에 따른 불만족과 안타까움 때문에, 나 스스로 화가 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일이 잘 풀어지지 않으면, 지금까지 내가 의지하고 중요시해 왔던 신념과 원칙들에 대한 회의감을 갖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사람들은 평화를 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는 평화는 우리 교회가 말하는 평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들은 전쟁이나 질병이나 아무 사고도 없고 살아가는데 특별한 위협이 가해질 정도의 상황이 아닌 경우를 평화로운 상황이라고 합니다. 좋고 잘 되고 아무 일이 안 생겨서 현세에서 안정된 상황이라고도 요약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그냥 일반인이 생각하는 평범하고 안정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시는 평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쟁상황이냐 신분상승이냐 부의 축적 정도가 어느 정도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잘사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잘사는 것을 추구하며, 내가 살기 위해 너를 희생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를 살리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일이 우리 모두가 평화롭게 사는 길이라고 제시하십니다.

 

우리의 상황과 정도와 관계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슬픔과 아픔과 아쉬움과 허전함과 어려움으로부터 건져주시고, 지지해주시며 채워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나를 희생하며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우리 내면에 피어나는 주님의 평화와 잔잔한 기쁨을 간직하며 살아갑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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