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사순 제1주간 금요일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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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0-03-05 ㅣ No.4165

사순 제1주간 금요일 3/6

 

코로나19 현상 중에 요즘 여러 가지 연유로 장례미사나 적절한 장례예절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나시는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 왜 어떤 경로로 감염되었는가를 두고 감정을 혼란케 하는 경우도 많다고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교황님께서 기자들로부터 성소수자들에 대한 논평을 부탁받았을 때, 내가 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를 평가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세상에 이러저러한 환경과 처지 및 여러 피조물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불림을 받았고,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처럼 그렇게 살도록 조건 지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내신 주 하느님께 마련하여주신 여건에 그저 감사드리며 받아드릴 뿐, 가타부타 이것저것 탓하고 불평하며 거절할 권리가 없습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22)

 

우리가 싫으면 함께 어울리거나 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될 뿐, 서로 다른 삶의 처지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다른 이들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비난이나 원망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만족할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타인에게 폐해를 끼치지 않는 한에서 나에게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환경을 계발하고 처지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이루어서 살아나갈 뿐입니다. 설사 그 누군가가 같은 취지로 노력했지만 의도치 않게 타인인 제삼자에게 폐해를 끼쳤을 경우에 그에게 수정하도록 요청할 뿐 그를 원망하거나 단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도 같은 경우에 가끔 탐욕에 빠져 실수와 죄악을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23-24)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사람들은 선의보다 고의나 악의로 저지를 때조차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를 말씀하시는가 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25-2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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