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광장

'체념'과 '포기'의 차이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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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선 [delltapose] 쪽지 캡슐

2005-10-08 ㅣ No.947

한 때 장안의 화제였던 개그 코너 ‘블랑카’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어느날 아내가 남편에게 잠자리를 강력히 요구하며 말한다. “하면 된다.” 그러자 남편 왈. “되면 한다.”

수준 있는 말 장난의 재미야 재론의 여지가 없겠으나, 곱씹어 볼 수록 더욱 맛이 우러나는 글을 접할 때의 기쁨 또한 비오는 날의 삽겹살과 소주에 비할 바 아니다. 가령 “두려움 없는 희망은 없고, 희망 없는 두려움도 없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용석 영산대 교수로선 스피노자의 이 말 만큼 ‘희망’의 본질을 잘 꿰뚫은 표현이 없다. 희망이 없다면 삶의 의욕을 잃게 되지만, 희망은 곧잘 이루지 못한 꿈의 안타까움으로 남기 때문이다. 희망의 엑스터시 이상으로 희망의 스트레스도 엄연히 존재한다.

신작 ‘두 글자의 철학’에서 김 교수는 이렇듯 생명·행복·유혹·안전·복수·질투·아부 등 두 글자로 이뤄진 개념 26개에 대한 상념을 아주 자유롭게 풀어 놓고 있다. ‘자유롭게’라 함은 철학적 저작물은 물론 문학작품·영화를 거쳐 최백호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까지 끌어다 쓰고 있는 까닭이다. ‘고통’이란 항목은 아예 영화 ‘터미네이터’와 ‘A.I.’로 푼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의 비인간성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속 편한 대로 잡념을 나열했다고 보면 오산이다. ‘생명’에 대해 쓰기 위해서 저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르빈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그 후 50년’(마이클 머피·루크 오닐) ‘파이돈’(플라톤) ‘형이상학’(아리스토텔레스) ‘생명의 원리’(요나스) ‘코스모스’(칼 세이건)를 읽었고, 영화 ‘E.T.’와 ‘에일리언’ ‘어비스’ ‘공각기동대’를 다시 봤다.

그 이유는 저자의 눈에 우리는 문명사적 ‘혼합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아닌 ‘혼합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철학자들의 빛나는 금언과 당대 대중문화 이면에 깔린 사회학적 의미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아주 흥미로운 저작물이 나오게 됐다. 무엇보다 쓸데없이 사변적이지 않아 좋다. 앞서 말한 곱씹을 수록 맛이 더하는 문장은 아무데나 열어 줍기만 하면 될 정도로 널려 있다.

예를 들어 ‘체념’이란 항목. 체념은 한마디로 달관한 자의 미덕이다. ‘포기’가 하던 일을 중도에 그만 두어버리는 것으로 ‘항복’과 유사한 의미라면, 체념은 상황과 사물에 대한 깊은 깨달음 끝에 스스로 거두는 것이다. 체념은 매우 성숙한 인간행위다.

그렇다면, 질문 하나. 아이가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자마자 우는 이유를 철학자 칸트는 무엇이라 봤을까. 답은 “자유를 상실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끼기 때문.”(수긍하시는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어디서든 사슬에 매어 있다”고 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닌 ‘그리고’를 사용한 것이다. 그 이유는? 정답이 궁금한 분은 당연히 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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