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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주님보시기 좋은 자매님의 십자가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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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9.*]

2006-03-13 ㅣ No.4014

 

   † 찬미예수

 

    안녕하세요? 디나 자매님, 동생과 어머니가 자매님의 작은 십자가인듯 하군요.

    잠시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묵상해 보았습니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이지요?

    성 바오로께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갈라, 5장 : 새성경 431쪽)을 통하여 묵상하실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도 살펴보자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람의 좋치 않은점을 보지 말고 그사람의 훌륭한(하신)점을 보고 배우라고 권고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분명, 자매님께서는 주님 보시기에 좋도록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의 수확을 위하여 즐겨 매진하시는 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두려움 모른채 하느님을 흠숭하고자 하시려는 의지가 아름다워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자들끼리도 가끔 기가 막히거나 빠져나가 자매님의 경우처럼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는것 같습니다. 역시 결론은 무조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의 경우는 조금 더 하느님의 품에 깊이 안기려는 그 의지로 첫째도 침묵, 둘째도 침묵, 셋째도 침묵의 전략을 권면하고 싶군요. 위의 해당 성경을 묵상하면서 주님께 더욱 내어 맡기는 것은 어떨런지요?

 

아마도 자매님께서 지금 주님 보시기 좋도록 삶의 이정표 관리를 즐겨 하시기에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수난을 닮으려는 그 의지는 지금의 저에게도 부끄러움을 안겨주시고 계시기도 합니다.

 

제가 그동안 집착형으로 한달에 한번씩 고해성사를 해치우다가 삼개월째 궐하고 있는데, 당장 돌아오는 주일 독서 당번으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이러한 와중에 무언가 허전하여 매일 미사책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사적계시(공적계시=믿을 교리로 가는 여정일 수도 있슴)로서 주님께서 "아이고, 이 말썽꾸러기야, 좋타, 내가 졌다. 대신 일주일동안 잘먹고, 잘살도록 해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요즘, 전능하신 주님께 잘 내어맡기지 못하고, 혹여 이날까지 부활 판공성사도 하지 못한채, 감히 제대로 올라 독서를 할 수도 있겠다는 분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고해후 독서를 하면 좋긴 한데...^-^; 요즘 별의 별 수단을 다 강구하면서 주님께 땡깡을 부리기도 합니다.

 

나는 도민고다! 묵주기도의 수호천사를 모시면서 고리로 무식하게 연결해서 단 하루라도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며 매번 악과 싸우기는 커녕 기권!을 외치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매님의 달란트는 성실성 자체이신듯 합니다. 잘 가꾸시길 바랍니다.

 

하여 저는 오늘 아침의 경우는 매일미사 맛들이기를 통하여 목욕재개로 이끌어주셨으며, 그 옛날 즐겨 일할 때의 그것처럼, 꿈꾸는 백수로써의 방청소와 설거지 준비와 먼지털기와 컴퓨터 청소와 돌아오는 주일 성가 다운등을 즐겨 초관리로써 한방으로 나누는, 모처럼 말끔하게 이룰 수 있는 은총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못난 남편으로써 말씀이지요.

 

부부가 웬수라는 말이 있지요? 요즘 저는 자주 아내로부터 스스로 외로움을 타는 경우가 빈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조건 아내의 장점만 보리라 하고 정신무장을 하려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행복이 무릎밑에 있기에 주님 안전에 무릎꿇고 기도하는데에 인색하기에 이처럼 정신없이 스스로 고생을 사서하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한두마디만 따듯하게 해줘도 서비스가 만점일텐데 말씀이지요.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요즘 사회처럼, 악해진 시대에 자매님의 어머니와 동생의 경우는 착하신 경우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제 저는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미사전 제대위에 최근의 아픔을 봉헌하는 과정에서 '주님, 이 아픔을 당신께 염치 불구하고 의탁하나이다...저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당신 안에서 당신의 권능으로 이웃의 장점만을 보게 해주소서'라고 청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에 잠시 신문을 살펴보니, 어느 청년이 홀로 사는 결혼 삼개월전의 잠든 자매를 유린하고 살해한뒤 다음날 태연히 면접시험에 응하였다는 사건을 접하면서 가슴 아픔을 느껴야 했습니다.

 

졸지에 같은 고향친구인듯한 자매가 칼에 찔려, 공포에 질린가운데 죽은척하며 친구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했던 그 아픔에 비하면 우리의 아픔(상대의 장점만을 보려는 태도조차...)은 아마도 사치일 수도 있겠다는 자성을 해봅니다. 초월사랑의 주님께 더 내어맡깁시다...

 

죄송합니다. 말씀을 잇다보니, 더 아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군요. 결론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믿으려는 자매님의 그 자세로써, 우리 천주교인의 최대의 특전인 그리스도의 제대위에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의탁하면서, 성체를 더욱 경건히 영하고, 다만 전능하신 주님과 함께 그것을 나누려는 자매님의 의지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하셨다 하니, 완전하신 주님의 사랑에 의탁하면 의탁할 수록, 즉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지향할 수록 성령의 열매를 향하여 걸어갈 수 있음을 잘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자매님께서 저와 상호간의 도움을 나누어주시는 취지로서 이 페이지가 또한 주님의 제대위에 바쳐지는 그것으로 여겨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왜냐면 주님은 완전하신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밤새 잠못이루신 자매님의 그것을 바라보며 무언가 제가 어제 봉헌한 그 아픔으로써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매님께서도 주님을 따르는 고통이 가장 큰 은총임을 묵상하시리라 믿습니다.

 

자매님은 아마도 주님의 은총만을 믿을 수 있는 달란트가 엿보이기도 합니다. 물 흐르듯이 말씀입니다. 힘드실 때는 위선적(불우한 그를 무시하는) 침묵이라도, 계산적(손해볼것 같은 사심같은 것등의 이유로) 침묵이라도, 바보같은 침묵이라도, 아니면 움직이는(사랑이 담긴 자매님 특유의 고운 성가같은) 침묵이라도 더욱 아낌없이 봉헌하시기를 청합니다. 자매님 역시 티없으시기에 지상에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에 어느 분이 지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거룩한 침묵을 구가하시는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는 도민고에게는 말잘하고 노래잘해서 몇백억을 주무르는 아름다운 자매와 요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15차 사무장 낙방, 나태, 세상속 광고 디자이너로써의 재기냐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이러한 염치불구의 죄인이 도무지 말로는 화려하게 의탁한다 하지만 복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죄송한 일이지요. 그러나 다시한번 그 고리들을 이어 다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가 편안하게 산다는 것을 바라봅니다.

 

우리 함께 좀더 귀를 열 수 있도록, 어머니와 동생의 애환을 좀더 겸손으로 들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그 표정속에서도 자매님의 사랑이 함께 숨쉴 수 있도록 다시한번 시도해봅시다.

 

저도 어머니, 아내, 교회안에서 수많은 죄가 많기에 염치 불구하고 주저리 말씀을 잇게 되었습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좋은 한주간 되십시오.

 

 

마음을 내게 모으려 하지 말고 다만 주님안에 맡기십시오

 

봄을 시샘하는 차가운 바람도 따듯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주머니로 들어온 손끝을 에이는 추위도 고마움을 나눌 것입니다

 

바람속의 주님을 뵈올 것입니다

 

너는 노래할 것입니다

 

세배의 기도인 그레고리오 송가로 울려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람의 호흡도

 

지쳐 넘어진 송가의 아픔도

 

다만 성령의 열매를 향한 은총이었기에

 

예수님의 마음(깊은나)으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상에서의 인간중 가장 착하다는

 

소리(성 요한)로 부르는 노래는

 

한편의 노래가 되고

 

한편의 글씨가 되고

 

한편의 그림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정화되지 못한 죄인이오나

 

다만 당신 평화의 도구로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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